‘붕세권’, ‘붕어빵 지도’에 대해 알고 있는가? 겨울마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단어들이다. ‘붕세권’은 역세권과 같이 붕어빵을 파는 지역을 뜻하고, 붕어빵 지도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붕어빵을 파는 위치를 표시한 지도이다. 어렸을 때는 붕어빵의 인기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집이나 학원 주변에 늘 트럭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었고, 먹고 싶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게다가 점점 종류도 다양해졌다. 집 앞 트럭 사장님께서 기본인 팥, 슈크림 붕어빵에 이어 고구마맛, 피자맛, 심지어 딸기맛 소를 넣은 붕어빵도 출시하셨고, 집에 누워있다가도 동생과 함께 천 원짜리 한 장을 가지고 붕어빵 트럭으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만큼 붕어빵 사장님이 많지 않으셔서 그런지, 겨울만 되면 모두가 틈만 나면 붕어빵을 노리는 사냥꾼이 되는 듯하다. 중고 장터에도 종종 붕어빵 어디에 파냐는 질문이 올라오는 걸 보면 말이다. 또 붕어빵만큼 겨울에 빠질 수 없는 간식은 찐빵이다. 손끝, 발끝까지 시린 겨울에 하얀 김을 내뿜는 찐빵통을 보면 찐빵의 하얗고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다. 특히 왕찐빵을 갈랐을 때 팥으로 꽉 찬 찐빵 속은 감탄할 만하다. 호호 불어가며 밖에서 먹는 왕찐빵도, 집에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간편 찐빵도 내겐 추억이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겨울 간식이었다. 그렇다면 무더운 여름날, 반차를 내고 집에 누워있으면 생각나는 간식은? 누가 뭐래도 빙수다. 차가운 얼음과 토핑으로 아삭, 시원한 매력에 빠져있다가, 슬슬 씹을 거리를 다 먹어가면 촉촉한 우유 얼음과 달달한 연유를 곁들여 슬러쉬 느낌으로 마무리하는 흐름이 완벽하다. 이날은 평소처럼 별생각 없이 SNS 어플의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한 장의 사진이 나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곳에서 처음 보지만 처음이 아닌 듯한, 조화로우면서 조화로운가 싶은 조합의 음식을 만났다. 바로 붕어빵 빙수다. 붕어빵이라고 하면 호호 입김이 나오도록 시린 겨울에 몸을 녹이며 후후 불어가며 머리부터 먹어줘야 제맛인 것에 비하여, 빙수는 지구로 따지면 그 반대편에 있는 음식이 아닌가. 하지만 빙수의 대표 주자가 팥빙수인 것을 생각하면, 팥앙금이 들어간 붕어빵은 나름 팥빙수의 친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마침 붕어빵 빙수가 본가가 있는 지역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부연 설명을 읽고 바로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붕어빵 빙수 같이 먹을래?’ 그렇게 붕어빵 빙수를 만나게 되었다. 이 메뉴를 주문하기 위해서는 선택할 것이 많았다. 어떤 얼음과 토핑을 얹을 것인지, 어떤 아이스크림과 붕어빵을 추가할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기본인 우유 얼음을 선택하려다가, 팥과 말차의 궁합이 최상임을 떠올렸고, 어디에도 피해를 주지 않는 기본 중에 기본인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추가했다. 그리하여 아주 칭찬할만한 조합인 말차 실타래 빙수에 팥 붕어빵을 얹어 주문하였다. 하지만 팥 붕어빵만큼이나 슈크림 붕어빵도 사랑하여, 슈크림 붕어빵을 추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팥과 말차의 조합은 옳았다. 딱 상상하던 그 맛이라 더 맛있는 그 맛이다. 하지만 붕어빵은 길거리에서 겨울에 파는 것과는 달랐다. 아무래도 촉촉한 얼음 주변에서 눅눅해지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다 보니 빵이 두껍고 단단한 편이었고 팥은 그에 비해 적었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먹기에는 디저트 배가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배가 둥글게 빵빵해짐을 느낄 수 있다. 붕어빵을 더 추가한다면 브런치와 같은 식사로 즐겨도 좋을 듯한 양이다. 게다가 붕어빵을 포크로 찍어 칼로 스테이크 썰 듯 써는 모양새가 스스로도 신기했다. (하지만 붕어빵을 포크로 찍으니 팥이 한 움큼, 칼로 썰려고 하니 팥 세 움큼이 빠져나오려고 해서 그만두었다. 붕어빵 나름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었을까?) 평소 먹던 음식만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볍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날이라면 도전할 수 있는 신선한 음식이 아닐까 싶다. 본가에 간 김에 뒹굴거리며 휴식을 제대로 즐기던 와중에, 동생이 많이 심심했는지 김제 당일 여행을 추진했다. 여름이라 돌아다니긴 어려우니 가족 모두 갈만한 카페를 찾다가, 동생의 멋진 검색 능력으로 만나게 된 간식, 차가운 찐빵이 내 여름을 지배해 버렸다. 팥찐빵이 세상의 전부였던 나는 얼마나 조그마한 세상을 살고 있었던가. 세상에는 우유찐빵, 쑥찐빵, 소보로찐빵, 고구마찐빵, 게다가 아이스크림 찐빵도 존재하는 것을! 이 찐빵 가게에 들어갔을 때 찐빵의 반은 냉장고에, 반은 나무 매대 위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냥 빵인가 보다 했는데, 찐빵이었다. 냉장보관 찐빵이라니! 혼란스러운 상태로 계산하고, 차가운 찐빵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가장 먼저 우유 찐빵을 갈라 한 조각 먹어보았다. 첫 입을 씹었을 때는 쪼온득한 찐빵의 식감이, 두세 번 더 씹었을 때는 최대한 곱게 갈아낸 앙버터 같은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팥만 있는 것보다 팥과 우유 크림이 조화를 이루니 부드럽고 시원했다. 겨울 간식으로만 찐빵을 떠올렸던 나는 어리석었다. 찐빵은 사계절 간식이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아이스크림 찐빵이다. 몇 년 전, 모든 것을 와플 기계에 눌러 먹던 한국인의 광기를 기억하는가. 이곳에 있었다. 찐빵을 와플 기계로 눌러,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은 아이스크림 찐빵. 아이스크림 호떡도 나오는 마당에 아이스크림 찐빵이 못 나올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찐빵이 납작하게 눌리고 차가워져서 쫀득한 매력보다는, 쌀과 팥의 고소한 매력이 있는 간식이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찐빵을 시도해 보았지만 마음속 1위는 역시 우유 찐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창의성에 감탄할 때가 많다. 엄청난 IT 기술과 화려한 광고들에도 그런 면이 잘 드러나지만, 음식에 있어서 ‘이 사람들... 진심이구나...’라고 감탄하게 된다. 붕어빵 빙수와 우유 찐빵, 비빔밥 와플, 떡볶이 돈가스, 초콜릿 치킨,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고 있을 깜찍한 혼종들이 기대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것에는 감동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미 경험한 것을 다시 경험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더 큰 자극을 받고, 경험하는 것이 많아지며 새로운 것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음식에 있어서는, 특히 한국에서는 새로움을 찾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한 충격을 평생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