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공원 투어 ④ 아웃도어의 메카 모압
큰일을 하고 나서는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 법이다. ‘나’라는 세상의 헌법쯤 된다.
우리가 찾은 곳은 술탄Sultan이라는 지중해식 레스토랑. 구글맵 평이 좋았고 미국 음식에 좀 질린 상태였어서 고고. 양갈비Lamb Chop와 연어 아티초크Salmon Artichoke를 시켰다.
바스마티 쌀밥(‘향기 나는 쌀’이라는 뜻을 가진 벼의 한 품종이라고), 구운 토마토와 애너하임 고추(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지역에서 나는 고추로 미국에서 가장 흔한 고추 중 하나란다)가 곁들여진 양갈비는 맛있었다. 육질이 부드럽고 양념도 잘 배어 있었다.
양갈비가 지중해식이라 하나 지극히 아는 맛, 알아서 더 좋은 맛이었다면 연어 스테이크에 딸려 나온 퓨레가 의외로 맛있었다. 코코넛 밀크 비트 아티초크 퓨레라는 긴 이름의 퓨레는 사랑스러운 딸기 우유 색깔이었다. 맛은 새콤달콤한 것이 연어와 먹기에도, 야채샐러드와 먹기에도 딱 좋았다.
아치들 이름이 너무 귀여웠어. 누가 어떻게 짓는 걸까? 국립 공원 직원들이랑 과학자들이 모여서 여기엔 이런 이름 붙이자, 회의를 하나? 이건 창문 같으니 윈도우로 합시다, 이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으니 밸런스드락이라고 하고요. 아치 사진을 보면서 뭐라고 부를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거, 상상하니 귀여운데. 델리키트 아치 직전에 있던 트위스티드 도넛 아치Twisted Doughnut Arch 같은 건 고민할 게 없잖아. 그냥 딱 봐도 꽈배기 모양이잖아. 그거 말고 뭐라고 불러. 한국에 있었음 꽈배기 아치라고 불렀을 거야.
다크 엔젤은 표면이 검은 빛이라 다크라고 한 건 이해가 되는데 왜 데블이 아니라 엔젤일까? 데블스 가든에 있는데 말이야. 데블스 가든이니까 다크 데블보다는 다크 엔젤이 더 나은 것 같기도? 멋지잖아. 악마의 정원에 들어선 다크 엔젤. 그러네.
쓰리 가십스Three Gossips는 그냥 기둥 세 개인데 그걸 보고 상상들을 한 거잖아. 서로 귓속말을 하며 가십을 전하고 있는 모습으로. 어떻게 그런 상상을 했을까? 무슨 사연이 있으려나? 가만 보면 과학자들 은근 사랑스러운 데가 있어. 그 너드스러움이 자아내는 귀여움이랄까, 그런 게 있다고.
그나저나 지질학자 같은 사람들은 이런 델 보면 너무 신나겠지? 연구할 거 천지잖아. 이미 연구할 게 많은데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어, 연구할 게 계속 생겨! 얼마나 행복할까.
그나저나 여기 손님 많다. 우리가 맛집을 잘 찾았나 봐.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 근데 지중해면 정확히 어딜 말하는 거지? 그리스? 또?…… 응?
근데 아까 데블스 가든 거기, 정말 식빵 같이 생기지 않았어? 갈색빛이 완전 초코 식빵. 음, 나는 시나몬 식빵. 초코보다는 시나몬이 좋으니까. 초콜릿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초콜릿 들어간 빵은 별로란 말이지. 참 희한해…… 와 같은 대화를 하며 접시를 싹싹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솔뫼가 디저트를 먹자고 했다. 디저트 메뉴는 바클라바와 쌀푸딩 두 가지. 바클라바는 먹어본 적은 없지만 너무 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쌀푸딩은 쌀과 푸딩의 상성(그놈의 상성!)이 그려지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자니 점원이 단호히 바클라바를 추천해 주었다. 흠, 그렇게 단호하시니 한번 먹어볼까요?
잠시 후 나온 바클라바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함께 나왔다. 그리스 말고는 딱히 모르지만 지중해에선 바클라바를 아이스크림이랑 먹나보군. 아이스크림과 바클라바를 떠서 먹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맛있어!
아이스크림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감탄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바클라바의 강한 단맛을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운 단맛이, 바클라바의 뜨거움을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이 감싸주었다. 강약과 온냉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왈츠를 추었다! 왈츠는 출 줄 모르지만 느낌이 왈츠였다.
옷으로 치면 세련되게 잘 빠진 톤온톤 스타일, 온천에 비하면 눈 내리는 겨울날 즐기는 뜨끈한 노천 온천, 또, 또, 뭐가 있을까, 달지 않게 졸여진 국산 단팥을 얹은 팥빙수, 거기에 콩가루와 떡이 적당히 올라간! 근데 이건 음식이잖아? 팥빙수 먹고 싶은가. 팥빙수 먹으려면 문 베이커리를 가야 해! 음…… 여기까지만 할까?
흔하디 흔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맛을 더해주다니, 놀라워하며 두 번 세 번 퍼먹었다. 네가 시키자니 시키는데 나는 맛만 볼게 포지션이었던 나는 적극적으로 숟가락을 움직이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시키자고 제안했고 나의 제안은 탁월했다. 바클라바와 아이스크림의 조합을 처음부터 끝까지 즐길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쩝쩝박사는 못 돼도 학사 정도는 되지 않나, 자평하였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모압 시내를 가볍게 둘러보았다. 두 개의 국립 공원을 비롯해 천혜의 자연으로 둘러싸인 모압은 미국 남서부 지역 아웃도어의 메카라고 했다.
메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게 아웃도어란 아웃도어는 다 즐길 수 있었다. 산악 자전거와 바이크는 기본, 버기카, 미니 지프, 래프팅, 카약, 패들 보드, 보트, 집라인, 동굴 탐험, 스카이 다이빙……. 미국 각지에서 그걸 즐기러 온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시내로 나온 게 한 9시쯤이었나, 식당이고 펍이고 사람들로 붐비고 거리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 런닝하는 사람들, 서서 수다 떠는 사람들. 3년째 솔트레이크시티에 살면서 미국 여기저기를 가본 솔뫼는 이 시간에 미국에서 걷는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보통은 차를 타니까. 잘 안 걷지. 밤에는 위험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곳은 위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사람들이 즐기려는 게 위험하면 위험했지, 이곳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들 숙소에서 옷 갈아입고 나와 저녁 먹고 맥주 한 잔 마시고들 어슬렁거리는 분위기였다. 느긋하게 풀어진 공기가 휴양의 도시다웠다. 근데 그 공기가 유해하거나 불건전한 느낌이 아니고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느낌! 한국의 부산과 담양, 강릉, 속초의 좋은 점만 모아둔 것 같았달까?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공기를 진짜 디저트로 즐기는 동안 나는 단숨에 모압이 좋아졌다.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우리도 어슬렁 어슬렁 서점과 기념품점을 둘러보았다. 파는 품목은 달랐지만 모두 지역 예술가들의 작업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엽서와 그림, 안내 책자, 티셔츠, 팔찌, 반지, 배지.
다양한 종류의 작업물에서도, 그걸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 놓은 판매자들에게도 유타와 모압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폐점 시간이 가까워져 구경만 하고 나왔지만 다음에는 뭐든 하나 사고 싶었다.
잠깐, 내가 지금 다음이라고 했나? 다음에 여길 또 온다고? 모압에? 유타에? 솔트레이크시티에? 내가? 미국은 이번 한 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솔뫼에게도 이번 방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설마 다시 오고 싶은 거야, 여기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음을 못 들은 체 외면하며 나도 모를 내 마음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참 알 수 없고 나로 사는 거, 그래서 재미도 있지만. 집라인이랑 스카이 다이빙은 한 번 해보고 싶어. 다음은, 이라는 말은 쏙 빼고 말하는 나를 보며 솔뫼가 가만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