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공원 투어 ⑥ 캐년랜즈 국립 공원의 업히벌 돔 트레일
그랜드 뷰 포인트가 완만한 길이었다면 업히벌 돔 트레일은 그에 비하면 까다로웠다. 업히벌 돔 트레일은 첫 번째, 두 번째 전망대가 있고 비스듬하게 걸을 수 있는 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메사 아치, 그랜드 뷰 포인트까지 보고 난 터라 지치기도 하고 시간도 많지 않아 첫 번째 전망대까지만 가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첫 번째 전망대에 도착하니까 이걸로 끝내기엔 영 아쉬웠다. 힘들지만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보고 싶었다. 더 보고 싶었다. 나는 성큼성큼 앞장을 섰다.
확실히 어제 데블스 가든 트레일을 걷고 난 후로 강해졌다. 겁이 덜 나고 자신감이 붙었다. 뭔가 받아들여진 느낌, 품에 곱게 안긴 느낌, 하나가 되는 느낌, 그런 게 있었다. 오히려 겁을 내는 건 솔뫼였다. 자기는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잘도 올라가면서 내가 조금만 올라가도 위험하다고 질겁을 했다. 왜, 난 괜찮은데. 용감해진 나는 태연하고 솔뫼 얼굴만 하얗게 질렸다.
두 번째 전망대로 가는 길은 첫 번째 전망대까지 오는 길보다 조금 더 험했지만(커다란 바위들을 기어올라야 했다!) 수고를 한 보람이 있었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는 안쪽으로 움푹 파인 웅덩이가 더 잘 보였다. 웅덩이 안에는 빛바랜 에메랄드색의 돔이 떡하니 서 있었다. 이곳 지형은 캐년랜즈 국립 공원의 다른 곳과 확연히 달랐다. 다른 곳들이 질서정연하게 층층이 쌓여 있다면 여기는 이름대로 극적으로 변형된 형태.
안내판에서는 그 변형의 이유로 두 가지 가설을 들었다. 첫 번째는 바다가 증발하면서 남은 소금들이 층을 이루어 솟아올랐다는 주장이었다. 사암보다 밀도가 낮은 소금이 수백만 년에 걸쳐 거품처럼 암석 표면으로 올라왔고, 위를 덮고 있던 암석과 소금 기포가 깎여나가면서 현재의 돔 지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업히벌 돔은 지구상에서 가장 깊게 침식된 소금 구조물이 된다.
두 번째는 운석 충돌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대략 6천만 년 전 직경 1/3마일(약 480미터) 크기의 운석이 이곳에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큰 폭발이 일어나면서 움푹한 분화구가 생겼고 초반에는 불안정했던 분화구가 천천히 안정되면서 비어버린 공간을 채우기 위해 지하 암석이 위로 들어올려졌다는, 옮기면서도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나 어쩐지 신비스럽고 낭만적인 내용이었다. 쉽게 요약하면 우리가 내려보는 저 에메랄드빛 돔은 암석이 떨어지며 생긴 분화구 내부라는 것.
두 번째 가설은 SF 소설에나 일어날 법한 일 같아서 첫 번째 가설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두 번째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계속 발표되고 있다고.
호오, 그러니까 운석이 떨어졌다는 거지. 여기에. 여기만이 아니라 이곳저곳 지구 곳곳에 수도 없이 떨어졌을 테지만 어쨌거나 그중 하나는 이곳, 캐년랜즈 국립 공원 자리에 떨어져 지금 그 결과가 내 눈앞에 있다는 거지. 무려 6천만 년 전에.
6천만 년 전이라는 시간이 아뜩하여 무작정 ‘6천만 년 전’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 보니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늘을 훨훨 날던 바닷새가 땅으로 내려앉아 뒤뚱뒤뚱 펭귄으로 변신하고, 아일랜드 북쪽 해안을 비롯한 지구 곳곳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농사 개미가 나뭇잎과 벌레 배설물을 물어와 버섯 같은 걸 길러내며, 멕시코만 쪽에 거대 운석이 떨어져 지구에 살던 생명체 대부분이 몰살되고,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여 히말라야 산맥을 이루고…… 뭐 이런 일들이 대략 그 즈음에 일어났다. 1억만 년 전부터 6천만 년 전까지가 전 지구적 격변기였다고.
그 격변의 와중에 여기에도 운석 하나가 떨어진 것이다. 멕시코만에 떨어진 운석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운석이 콩, 하고. 그래도 그 힘은 강력해서 6천만 년 후 인간이라는 호기심 많은 종이 굳이 보러 오게 되는 특이한 지형을 만들어냈다.
그때에 이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많은 것들이 소멸하고 생겨났겠지. 생과 사는 하나니까. 운명처럼. 그래, 운명처럼.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곳에 와 이 분화구와 돔을 보고 있는 것도 운명일까. 어쩌면. 아마도. 운석과 나는 6천만 년의 간격을 두고 마주할 운명이었을지도. 6천만 년은 한낱 인간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이지만 지구의 시간으로는 찰나에 불과하니까. 어쩌면 우리는 6천만 년 전에도 마주쳤을 수 있었다. 운석이 떨어질 때 스러졌던 생명체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르지, 내가. 부러져 불타는 나무였거나 땅 위를 굴러다니던 돌멩이였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었을 수도.
어느 쪽일 거라고 생각해? 두 번째 전망대에 앉아 하염없이 아래를 내려보는 나와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는 솔뫼에게 뒤늦게 도착한 이가 물었다. 글쎄. 그는 운석 충돌설을 지지했다. 그렇구나. 어디서 왔어? 그가 이어 물었다. 솔뫼가 한국 사람이고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나는 여전히 아래를 내려보면서, 나는 내 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번은 가볼 만한 곳이야, 여기처럼, 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친구가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고, 재미있는 곳이라 했다고 했다. ……그렇구나.
나는 대화는 솔뫼에게 맡겨두고 에메랄드빛 돔만 바라보았다. 언제까지고 바라볼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곧 어두워질 테고 우리는 헤드랜턴도 없고 너무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시 네다섯 시간을 달려서, 솔뫼는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까.
뭔가를 두고 오는 기분으로 업히벌 돔 트레일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두 번째 전망대를 꼭 가보라고 추천하면서. 사람들은 우리의, 특히 솔뫼의 열정적인 추천에 선선히 가보겠다고 답했다. 우리가 마주쳤던 사람들이 이미 두 번째 전망대에 가봤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 것은 거의 다 내려와서였다. 우리가, 특히 솔뫼가 하도 신나서 얘길하니까 맞장구를 쳐준 것일 수도 있겠어. 그 마음들도 다정하네.
어느 새 주위가 어둑해져 있었다. 해가 이르게 져서 돌아오는 내내 어둠 속을 달려야 했다. 사방이 다 어두운데, 칠흑같이 어두운데 그 어둠도 어쩌면 6천만 년 전쯤 마주쳤을 법하게, 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