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각자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법
K와 J, 나 이렇게 셋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K는 아버지 1주기 제사를 맞아 직접 쓴 제문을 가족들 앞에서 낭독했다. K의 아버지는 비망록을 남겼다. K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고뇌와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담긴 글을 인용했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에 쓰듯 제문에 담았다. K는 이미 어머니 제사 때도 늘 제문을 편지글처럼 직접 써 읽어왔는데 올해는 아버지를 추모하는 제문을 처음 쓰게 된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K의 제문을 건네받아 작은 목소리로 읽었다. 식당에는 우리 말고 한 팀밖에 없어 조용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직이 읽다가 내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내 옆자리에서 귀 기울여 듣고 있던 J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노안 때문에 안경을 머리 위로 밀어 올리고 가늘게 뜬 맨눈으로 진지하게 제문을 읽던 나는 K의 아들 이름을 엉뚱하게 읽어 그 와중에 K에게 지적을 받았다. 그 뒤로도 두 번인가 잘못 읽고 그때마다 K는 단어를 정정해 주었다. 나의 연이은 오독 때문에 우리는 울컥하다가 풋 하며 웃고, 훌쩍이다가 또 웃었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우리는 눈물을 닦았다.
J의 아버지는 만년에 고향 마을에서 수채 물감으로 풍경을 그렸다. 휠체어에 앉아 정겨운 고향 바다를 그렸다. 달리 그림 그리기를 배우지 않았으나 그리고 또 그렸다. 그 옆을 어머니가 지켰다. J는 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묶어 생전에 책으로 펴냈다. J도 올해 아버지의 1주기를 맞았다. 아버지 생전에 펴낸 책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 J는 새로이 개정판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우리 모임이 있기 며칠 전 나는 꿈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방문을 여니 아버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곧바로 아버지를 껴안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부르며 흐느꼈다. 아버지는 별다른 표정 없이 그저 평온했다. 그날 새벽 나는 흐느껴 울다가 잠에서 깼다. 자리에 앉아 양팔을 쓰다듬어 보았다. 아버지 몸을 감쌌던 그 감촉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몇 년 동안 아주 먼 곳에 잘 계시다는 느낌이 있을 뿐 나는 아버지가 그리웠던 적이 없다. 아버지와 별다른 추억이 없었다는 것이 가끔 아쉽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 꿈을 꾸고 난 이후의 나는 이전과 달라졌다. 아버지가 그립다.
나는 작년 연말에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는데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현재는 문제를 잘 풀어가고 있다. 돌이켜보니 그 과정도 참 꿈만 같다. 내가 그 힘든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그조차도 잘 몰랐는데 아내가 말해주어 알았다. 그게 진짜 대견한 것임을. 나는 여전히 세 아이를 키우는 어깨가 무거운 가장이지만, 가끔은 내 아버지 품에 기대고 싶다.
내가 대학생일 때 아버지가 선물로 준 파카 만년필과 샤프펜슬을 아직 가지고 있다. 만년필은 잉크가 말라버린 뒤 고장이 나서 더 쓸 수가 없어서 보관만 해두고 샤프만 간간이 썼다. 중학생 막내가 어느 날 만년필에 관심을 보이더니 가져갔다. 잉크 컨버터 하나를 주문해달라 해서 해주었더니··· 설마 했는데 뚝딱 고쳐 놓았다. 이 만년필과 샤프펜슬이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