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영업자의 주말 풍경 모자이크
3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갑자기 일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사무실에서 기거하며 일했다. 먹고, 자고, 일하고···.
3일째 날 가족들과 영상통화로 안부를 주고 받고 있자니 영락없는 기러기 아빠 신세였다.
금요일 밤에 비소로 퇴근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니 건넛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막내가 말없이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오랜 만에 단잠을 자고 맞은 토요일.
“개러지 세일(Garage Sale)입니다. 보고 가세요.”
오전에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깍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호객을 당했다. 차고에 테이블을 펼치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이 골목에 사는 세 아주머니가 각자의 물건을 모은 모양이었다. 접시(1만 8천원)와 머플러(8천원)를 샀다.
“어머, 머리 색깔이랑 머플러가 너무 잘 어울리네!”(마침 푸른빛 도는 회색 염색을 한 뒤라···)
얼떨결에 머플러를 두르고 한 아주머니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깔깔깔, 호호호. 세 사람이 아주 내 혼을 빼놓았다. 어쨌든 물건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에게 접시와 머플러를 보여주며 부엌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가 이웃에 사는 할머니·할아버지 얘기를 해주었다. 대기업 다니는 아들이 3년 동안의 미국지사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며느리와 아이들은 미국에 남았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다.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 미국지사 발령을 받은 직원은 예외없이 같은 수순을 거쳤다. 그 회사엔 기러기 아빠가 수두룩 했다. 그런데 할머니·할아버지의 며느리가 미국에서 제법 괜찮은 직장을 얻게 되었다. 할머니가 손주들을 돌보러 미국으로 떠났다. 지금 할머니·할아버지 댁엔 할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둘이서 산다. 기러기 부자(父子)가 된 것이다.
오후에 아내와 동네에서 절친으로 지냈던 이웃 할머니가 우리집에 들렀다. 이사 가신지 몇 년 되었다. 이 동네에 친구분이 많아서 가끔 보러 오신다고 한다. 할머니는 맞벌이하는 아들·며느리를 위해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상경하시어 어린 손주 둘을 돌보셨다. 손주들이 우리 아이들과 또래인데 신기하게도 아이들 성정이 잘 맞아 그런 것인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싸우지도 않고 잘 어울려 놀았다. 아이들 유년기와 초등학교 시절 동안 그집 가족과 각별하게 지냈다. 이사가고 난 뒤 가끔 '모두 잘 지내고 있나, 애들 많이 컸겠네'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할머니는 예전 추억부터 요즘 사는 얘기를 한참 주고 받으시고는 다른 친구분 만나신다고 바삐 가셨다.
“어, 형님.”
누군가 했더니, 마을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이웃의 ◯◯네 아빠를 마주쳤다. 항암치료를 잘 마치고 극적으로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만났다. 잠깐이었지만 맞잡은 손에서 수많은 사연들이 느껴졌다. ◯◯네는 최근 몇 년 동안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다. 거기에다 건강까지 나빠졌으니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짧은 안부를 나누고 헤어졌다. 날은 추워졌지만 하늘은 파랗고 쨍하다.
꿀맛 같던 토요일 휴식 뒤 일요일 아침, 다시 일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