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화장실에서 모기에 뜯기며 볼일 보다가 결심했다
선배 사무실에 공간을 얻어 함께 쓰던 시절의 일이다. 1, 2층에 있는 사무실 세 곳이 화장실을 함께 썼다. 소변기 하나, 좌변기가 남·여 각 1개씩 지정되어 있었고, 한 사람이 들어가서 화장실 출입문을 잠그면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안전하게(!) 볼일을 볼 수 있었다. 이사 가서 처음 큰 볼일을 보다가 경악했다. 모기가 너무 많았다. 창문에 방충망이 없었다. 환풍기가 없으니 창문은 늘 열어 두었고, 그나마도 모서리에 전선 가닥이 걸려서 창문을 완전히 닫을 수도 없었다. 매번 큰일을 한 번 볼라치면 엉덩이 주변에 모기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화장실 안에 에프킬러가 넉넉히 비치돼 있는 걸 보니 모두들 볼일 보기 전에 이걸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한동안 이 에프킬러를 썼다. 어느 날은 에프킬러를 먼저 뿌려놓고 볼일을 보는데 입안에 에프킬러 맛이 알싸하게 퍼졌다. 신음을 뱉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사무실 세 곳이 함께 쓰는 화장실인데, 여태껏 방충망이 없다니···. 더구나 1층은 건물주가 쓰는 사무실이 아닌가!
선배에게 물으니 이런저런 불편 사항들을 말해도 건물주는 귓등으로 듣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멀쩡하게 임차료 내고 쓰는데 이런 심각한 불편을, 심지어 자기도 겪으면서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내가 한번 찾아가 따져보고 싶어도 전전세 형식으로 사무실을 빌어 쓰는 처지라 뭘 어쩔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기는 해도 이 화장실 쓰는 이가 족히 열 명 가까이 될 텐데 사람들은 왜 기꺼이 에프킬러를 선택하는 것일까? 아마도 사람들은 남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건물주와 부딪치기도 싫거니와 굳이 내 시간과 돈을 들여 화장실 방충망 문제를 해결하기도 싫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건물주는 '목마르면 당신이 우물 파든가' 전략이고, 사람들은 우물 대신 에프킬러를 선택하는 형국이었다.
내가 '목마른 사람'이 되기로 했다. 방충망을 직접 만들었다. 모든 재료를 돈 한 푼 안 들인 재활용 재료로 썼다. 공사장에서 흔하게 쓰는 미송 허드레 나무로 프레임을 짜고 섬세하게 대패질을 해서 새시 틀과 한치 빈틈없이 딱 맞추었다. 방충망을 양파망으로 감쌌더니 바깥 풍경이 빨갛게 보이는 게 흠이었다. 초록색 배추망이 좀 더 어울리련만 아쉽게도 집에 배추망이 없었다. 아, 어쨌든 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내가 판 우물 덕에 모두가 평화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모두들 편안한 마음으로 볼일을 보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산타클로스를 떠올리기를 바랐다.
사족) 몇 개월 뒤 소변기 자동감지 센서가 고장 나 물이 내려오지 않았다. 화장실에 지린내가 진동했으나 센서는 고쳐지지 않았다. 역시나 누구도 해결하지 않았다. 자동감지 센서는 내가 모르는 분야였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새 사무실로 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