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서채홍 Sep 20. 2022

'서서 일하기' 2년 6개월의 기록

앉지 못해 서서 일한 불굴의 나를 기억하며

나는 왜 서서 일하게 되었나


2019년 8월에 꼬리뼈를 다쳤다.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꼬리뼈 끝부분에 아주 작은 실금이 있었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통증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의자에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도넛 방석 같은 여러 가지 기능성 방석을 써도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 무렵의 나는 승용차에 타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전철과 버스에 아무리 자리가 많이 비어 있어도 오직 홀로 서 있었다. 


앞으로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서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책상을 찾아보았다. 높낮이를 조절해 쓰는 스탠딩 책상은 너무 비쌌다. 모양도 별로였다. 기능성, 디자인 둘 다 만족하려면 큰 비용을 들여 주문 제작하는 게 나을 듯했다. 그 비용을 쓰느니 직접 만들기로 했다.


기존 책상 위에 올려 쓰는 보조 책상을 만들었다. 가장 기능적이고 간단한 형태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쓰는 팔의 각도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모니터를 놓고 책상 좌우에 충분한 여유 공간도 필요했다. 내 키와 팔 높이에 맞춰 책상 높이를 측정해 설계도를 그렸다. 책상 하부 프레임은 집에 모아둔 허드레 나무(소나무 자투리들)로 만들고, 위판은 단풍나무 판재를 따로 주문해 얹었다. 비싼 책상을 사지 않고 직접 만드는 것이니 위판은 좋은 나무로 골랐다. 단풍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고 색이 밝고 화사하다. 취미 목공인들에겐 고급 수종에 속한다. 




직접 만든 보조 책상으로 서서 일한 기간이 2년 6개월 정도다(2019년 8월~2022년 1월). 기사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서서 일하기'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 2015년 경으로 짐작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들이 기업 차원에서 서서 일하기를 도입했던 게 열풍을 일으킨 결정적 계기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도 정부기관, 일반 기업 등 제법 많은 곳에서 '서서 일하기'를 권장하고 도입했다. 서서 일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업무 집중도도 높다는 게 제일 큰 이유였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부터 한국의 정부기관과 기업이 내건 이유와 내 이유는 사뭇 달랐다. 나는 앉으면 아프기 때문에 서서 일했다. 절박한 '생존의 이유'였다. 



서서 일하면서 겪은 신체 반응들



모니터를 보조 책상에 올려 한동안 사용해보니 목이 좀 아팠다. 앉아서 일할 때 했던 것처럼 모니터를 내 눈높이보다 약간 낮게 맞추었는데(10~15도 아래), 서서 모니터를 바라보니 고개가 약간 숙여지는 느낌이었다. 모니터 받침대를 하나 더 겹쳐서 높이를 더 올려보니(눈높이와 비슷한 정도) 딱 적당했다. 그 이후로 목과 어깨의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다.


내내 서서 일을 하니 밤에 잘 때 다리에 쥐가 자주 내렸다(10대·20대 때에나 그랬던 것 같은데···). 틈틈이 사무실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고 누워서 편안히 몸을 이완시켰다(꼬리뼈가 아프니 앉아서 쉴 수가 없다!). 이때 간단한 스트레칭과 함께 허벅지에서 발끝까지 다리 마사지도 했다. 하루 1-2회 그렇게 한 날은 밤에 쥐가 내리지 않았다. 특히 다리 마사지의 효과가 컸다. 30대에 배워둔 지압 기술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서서 일하면 허리 아픈 증세가 나아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뚜렷이 달라진 느낌은 없었다. 평소에 허리가 안 좋아 과로하거나 운동을 게을리하면 꼭 허리에서 신호가 온다. 그러다 보니 1년에 두어 번은 허리 통증 때문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곤 했는데 서서 일하는 동안에도 비슷했다. 앉아 있으나 서 있으나 모니터 앞에서 오래도록 비슷한 자세를 유지하는 건 어쨌든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가끔 쉬면서 스트레칭하고, 꾸준히 허리 강화 운동을 하는 것이 해결책이지 서서 일하는 그 자체만으로는 허리 통증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서 일한 지 2년이 지난 2021년 겨울부터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다니던 정형외과에서는 발바닥 통증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했다(족저근막염은 아니었다). 의사의 권유로 기능성 실내화를 신어 보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앉아서 일할 때가 온 것인가? 조심스럽게 기능성 방석을 깔고 앉아서 일해 보았더니 꼬리뼈 통증이 거의 없었다. 물론 기능성 방석 없이 오래 앉아 있으면 뻐근하고 불편한 느낌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통증으로 고생한 날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앉지 못해 서서 일한 불굴의 나를 기억하며


이제는 앉아서 일한 지 7개월이 지났다. 지내보니 서서 일할 때보다 내 자리가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반면 쉬지 않고 오래 앉아 일하다 보면 서 있을 때보다 허리에 부담이 더 빨리 느껴지는 것 같았다(오래 앉아서 일할 경우 척추가 감당해야 하는 하중은 다른 자세의 1.5∼2배에 달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틀린 말이 아닌 듯). 그래서 잠시 며칠 동안 서서 일하기로 돌아갔는데, 발바닥 통증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 잠깐씩 서서 일하다가 다시 앉아서 일하면 좋겠는데 높낮이를 조절하는 책상이 아니다 보니 그 점이 좀 아쉽다. 차라리 적당한 컴퓨터 시스템 하나를 더 갖춰 서서 일하는 공간을 한쪽에 따로 만들어볼까도 고민했으나 일단은 보류해두었다. 매일매일 꾸준히 운동하고, 일하는 사이사이 주기적으로 쉬고 스트레칭하고···.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게 순리라 여기고 있다. 


돌이켜보면 서서 일한 시기에 업무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일을 여럿 했고, 내가 세운 작은 회사가 비로소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주말 특근한 날도 무수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 퇴근하면 가장 좋은 날이었다. 적게 헤아려도 하루 10시간을 서서 일한 셈이다. 자영업 디자이너로서 정말이지 애쓴 날들이다.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내가 격려하고 위로한다.


사족) 이 글을 쓰면서 '서서 일하기'에 대한 여러 기사를 찾아보았는데, 기사에 언급한 전문가의 말과 내가 몸소 체험한 것이 대체로 일치했다. 전문가 견해가 궁금하다면 아래 기사 링크를 참조하라. 위 글에서 *표시 부분은 아래 첫 번째 기사에서 인용했다.


참고한 기사 링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231370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211892

작가의 이전글 반복되는 일상과 뇌과학, 그리고 플랭크 할아버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