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든 타이포그래피 3
#1
두 번째로 직장을 옮길 때였다. 옮기고자 하는 회사의 대표님과 단독 면접을 보고 온 뒤 어쩌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담당자가 전화로 합격을 통보했을 때 나는 어이없게도 거절 의사를 밝혔다. 옮기려는 회사에서 맡게 될 팀장 책임은 당시 몸 담고 있던 회사보다 훨씬 높은 곳이었다(혹은 높은 곳일 거라 예상했다). 막상 옮기려고 보니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지금 있는 곳도 내가 조금 더 애쓰면 나은 기회가 있을 것만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절호의 기회를 발로 차 버렸다.
회사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맛이 썼다. 그래, 마음을 고쳐 먹고 여기서 조금만 더 애써 보자.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놀랍게도 면접 보았던 회사의 대표님이었다. 당신은 내가 마음에 들고, 같이 일했으면 좋겠는데 괜찮다면 이번 주말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다음 주 월요일에 최종 결정을 알려주지 않겠느냐는 전화였다. 그 전화 한 통이 내 두려움을 다독여 주었다.
#2
2018년. 우리 가족이 한 달 동안 유럽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그때까지 가족 여행을 해외로 가본 적 한 번도 없었다. 몸이 불편한 딸이 장거리 여행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어떤 지인은 일을 한 달이나 접고 여행 다녀온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디자인 스튜디오가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시점이었다. 아내는 아이 셋 나이를 고려하면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다녀온 뒤의 생업이 걱정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여행지에서 맞닥뜨릴 미지의 세계가 설레기보다는 두려웠다.
#3
“신은 인생에서 최고의 것들을 항상 두려움 뒤에 놓습니다”
- 윌 스미스(미국의 영화배우), 토크쇼 인터뷰에서.
이 말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옮긴 회사에서 내 직장 생활의 황금기를 보냈고, 한 달 유럽여행에서 진정한 모험의 즐거움을 알았다. 두려움 뒤에 짜릿한 모험과 도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