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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D Sep 02. 2024

나짱을둘러싼모험 D3. 동호콴

ep7. 아이와의 조금 긴 여행,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저녁은 아미아나 근처의 해산물 식당, 동호콴으로 가기로 했다.


어디로 걸을까, 로 시작된 갈등 때문에 냉랭했다.

별 혼자 중간에서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떠들고 있었다.

별은 엄마 아빠의 싸움을 어떻게 이해할까.

다행히 심각하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냉랭한 분위기는 싫어한다.

언젠가 얘기했던 게 생각났다.


5시를 넘어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카카오로 부른 그랩카를 탔다.

어제 들어왔던 길과 반대로 달렸다.

아미아나는 시내와 꽤 떨어졌다.

택시는 다운타운으로 들어가기 전, 어떤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3700원 거리. 사진에서 보던 동호콴이었다.



말로 듣던 대로 이곳은 장사의 기본이 된 식당이다.

우선 택시 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한다.

친절한 직원의 미소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 직원들은 전부 친절친절 열매를 먹은 것처럼 친절하다.


좀 이른 시간인지 손님은 많이 없는 것 같았다.

입구엔 커다란 어항이 있었다.

아파트처럼 여러 층으로 구성된 어항이었다.

그리고 나눠진 각각의 방마다 다른 어종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항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서 있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소년도 우릴 보고 싱긋 웃어줬다.

나이가 몇 살이나 됐을까. 아직 학생인 것 같은데.

어쩌면 저 소년의 꿈은 이런 해산물 식당을 차리는 것일까.


어항 앞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다.

이국의 크리스마스.


대충 음식을 주문하고 다시 트리를 보러 나왔다.

별은 커다란 어항과 트리를 보고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인어공주가 생각났는지 스스로 아리아가 되는 공상에 빠진 것 같았다.

난 박자를 맞춰주기 위해 랍스터인 세바스찬을 연기했다.

별과 노는 방식이다.


별에게 박자를 맞춰주며 어항을 둘러봤다.


정말 많다. 새우도 종류별로 나눠놨다.

저게 다 팔린다는 말이겠지.

우리 동네 횟집 사장님이 보시면 부러워하실 것 같았다.



음식이 나와서 식당으로 들어왔다.

나짱엔 모기가 없는 듯, 있다.

누군가는 의외로 모기가 없다고 하지만, 분명히 모기는 있다.

특히 밤의 식당에서 앉아 있다 보면 모기가 왱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별에게 모기약을 발라줬지만 모기가 신경 쓰였다.


먼저 사이공 비어가 나와서 잔에 채웠다.

마실래?

엠에게 권했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아직 냉랭한 기운이다.


잔에 채워서 마셨지만 사실 혼자 마시는 맥주는 별로 맛있진 않았다.

맥주는 역시 드래프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시킬 음식을 정하고 갔다.

조개를 넣은 모닝글로리 무침과 갈릭 새우롤, 갑오징어 튀김, 그리고 별을 위한 계란볶음밥까지.

하지만 별은 볶음밥 향이 이상하다며 먹기를 거부했다.

나중에 마트에서 김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엠을 위해 시킨 모닝글로리도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눈치도 보여 할 수 없이 내가 와구와구 먹었다.

분위기 때문인지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식당엔 곧 가족 손님들로 채워졌다.

다들 한국 사람들 같았다.

이 식당은 최근 떠오르는 식당인 것 같다.

베나자를 비롯한 한국 블로그에서 많이 보인다.


그렇다고 블로그만을 믿고 장사하는 허당은 아닌 것 같았다.

음식은 싸고, 푸짐하다. 맛도 괜찮다.

그냥 우리 기분이 그래서겠지.


대충 음식을 먹고 별과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은 룸 뒤편에 있었다.

그런데 벽에 걸려있는 그림,

바로 박항서 감독님과 베트남 국가 대표팀의 사진!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별을 붙잡고 떠들었다.


저 사람이 말이야, 축구 감독이거든, 그런데 한국 사람인데, 여기 베트남까지 온 거야, 그래서 여기서 베트남 축구팀을 이끌고 엄청 잘하거든, 덕분에 베트남 사람들도 한국을 좋아하게 됐고 말이야...


결론은 해외에서 한국을 빛낸 위대한 사람, 그러니 너도 열심히 살아, 라는 말.


물론 별은 벽을 비추는 불빛이 예쁘다며 딴 소리를 했지만.

그래도 대충 알아는 들었겠지.

어린 딸 앞에서 아빠는 투머치 토커가 된다.


한 시간도 안돼 음식 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까 입구에 서 있던 친절한 직원이 탭을 들고 택시를 불러줄지 물었다.

아니요, 좀 걸을게요.


사양하고 길 건너 과일 가게로 갔다.

댓글에서 건너편 과일 가게 망고가 싸다는 글을 봤다.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킬로당 3만 동. 한국돈으로 1500원 정도.

와, 싸다.

조금 있다가 사기로 하고 좀 더 골목 안쪽으로 걸어봤다.


그 골목은 해산물 식당 골목인 것 같았다.

해산물이 들어있는 어항들이 식당마다 비치돼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호콴 외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한국 커뮤니티의 힘인지.


다른 식당엔 가끔씩 러시안으로 보이는 서양 관광객 몇몇이 무심한 표정으로 묵묵히 해산물을 먹고 있었다.

컴컴한 골목을 배경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니,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쓸쓸해 보였다.


좀 더 안 쪽으로 들어가다 신기한 걸 발견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새긴 듯 한 조각상을 화려한 불빛이 비추고 있었다.

원래는 가게로 운영하던 공간에 조각상을 놓은 것 같았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신성한 느낌과 기괴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베트남에서도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별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설명하다 말았다.

계속 정보를 주면서 가르치려 하는 게 바보 같이 느껴졌다.

놀러 온 거니까.


골목이 어두워져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 과일가게로 갔다.

시험 삼아 옆 가게에서 망고 가격을 물어보니 두 배를 불렀다.

흡족한 기분으로 아까 그 가게에 가서 망고 1킬로를 샀다.

봉지 가득이었다.


카카오 앱을 열고 그랩카를 불렀다.

그런데 메시지가 좀 웃겼다.

골목 안쪽이라 찾기 어려운지 잠시 후 앱을 통해


어디야?

라는 메시지가 왔다.


한글로

나? 동호콴

이라고 보냈다.


운전사는 고민을 하는지 답이 없었다. 

머리 위로 …이 그려진 게 아닐지.


길을 건너 동호콴 앞에 서니 아까의 그 직원이 다가왔다.

택시를 불렀냐는 질문에 우리 앱으로 불렀다고 답했다.

친절한 직원이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잠깐 동안 직원에게 가볍게

혹시 여기 사장님 이름이 동호인가요?

하고 물었다. 짧은 영어로.


직원은 잠시 망설이더니 탭을 열었다.

파파고 앱이 깔려 있었다.

다시 한글로 말을 하니 베트남 어로 번역이 됐다.

그냥 물어본 건데. 성실한 직원의 태도에 좀 민망해졌다.


하지만 직원은 바로 베트남 어로 우리에게 보여줬지만,

아무래도 통역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짧고 간단한 영어로 다시 물었다.

보스, 보스, 동호? 코리안?


직원은 비로소 이해했는지 웃으며 노노, 라고 말했다.

하하, 한국인 사장은 아닌가 보군요.


곧 택시가 도착했다. 

맞은편에서 우리를 보고 그랩을 불렀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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