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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May 14. 2016

그대와 나의 세계

파장

오늘 친구랑 대화를 하다가 친구와 나의 커다란 차이점을 발견했다. 친구에게 내가 적은 글을 읽어주니 친구가 나에게 물어왔다.

어떻게 그렇게 글을 길게 적어?


나는 친구에게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글을 적는 건 항상 생각을 하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감정을 쏟아내는 그릇 같은 거였다.

내 생각들을 적어내는 게 익숙한 나였기에 글을 길게 적으려는 노력도 짧게 적으려는 노력도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곤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나는 글을 길게 적을 수가 없어, 핵심 단어만을 메모해놓는 정도야.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모르겠어 난 그냥 적는 거야 그냥



난 항상 그냥 글을 적었다. 아빠와 싸우거나 엄마와 싸우거나 가끔 친구와 싸우거나 언제나 나를 달래 주는 건 글을 적는 행위였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적는 글이 아닌 일기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도피처였다.

마구마구 욕을 적어놓거나 상대방을 이해해보려고 하거나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내 삶에 대한 행복의 찬사를 적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감상이나 아니면 그 날의 반성 등 나에게 글을 적을만한 소재는 충분했고, 그런 충분한 소재를 난 기꺼이 사용하였을 뿐이다. 요즘 들어 생각하는 건 글 쓰는 행위가 언제나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난 글을 적을수록 내 내면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내 내면으로 깊숙이 또 깊숙이 내가 원하는 깊이까지 빠져들어 좀처럼 헤어 나오질 못했다. 글을 적으면 적을수록 질문은 더욱더 많이 생각났으며, 나의 글은 언제나 마무리 지어지지 않고 또 다른 질문만을 낳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글을 적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건 글을 적는 행위가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기를 읽다 보면 가끔 놀란다. 내가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구나, 내가 이렇게 의지가 넘쳤구나, 내가 이때 이것 때문에 힘들었지, 이때 나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과거의 내가 언제나 나와 함께하고 있다.


친구는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아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는 글을 적지 않으려 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글은 항상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자신의 글은 말보다 더 커다란 파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친구와 나의 세상의 거리가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난 늘 말이라는 것이 더 파장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건 내 머릿속에서 추상적이었던 그 무언가가 파장이 되어 누군가에게 닿고, 그때부턴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내가 같이 공유하고 있는 그 무언가가 된다고 생각했기에 '말'이라는 건 오히려 나에게  무겁고도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 난 글을 적는 행위로 나의 감정을 다스리곤 했던 것이다. 친구에게 오히려 난 말이라는 것이 만들어 내는 파장이 더 크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고 나의 생각을 전했다. '글'이라는 건 온전히 나의 것이고 그건 과거에 대한 나의 기록이며 그것을 그저 남겨놓을 뿐이라고, 하지만 말이라는 건 마치 현재의 나를 정의하게 만드는 것인 거 같아 무섭다고.

그 말을 하며 우리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걸었다.우리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타인의 대한 이해였다. 친구는 친구가 살아온 방식으로 나는 나의 방식으로 그렇게 그래왔던 것 처럼 그렇게 또다시 난 글을 쓰고 친구는 말을하고 표현을 하고,하지만 달라진 것은

새로운 세상의 등장으로 인해 나도 언젠가 내맘을 말해버려야지 문득 생각해버릴것이다.


 그대의 세계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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