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위로
어제저녁 학교 근로를 마치고 오는 길 왜인지 모르게 우울해지는 내 기분에 습관처럼 외워둔 주문을 외웠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그 말들은 허공을 맴도는 듯했지만, 세뇌시키듯 외운 주문은 힘든 현실에서 잠시나마 해방시켜주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집에 들어서 불 커진 방안에 덩그러니 놓였을 땐 가슴이 울컥하고 소용돌이쳤다.
그때 마침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술 취한 아빠의 목소리 언제나 듣고 또 들어도 좋아할 수가 없는 그런 목소리였다. 술 취한 목소리로 베베꼬인 말들을 늘어놓았다. 나도 모르게 힘없는 목소리로 날카롭게 말했다.
그저 끊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를 괴롭히듯 아빠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전화기 너머의 술 취한 목소리로 추궁해왔다. 아무 일도 없다고 평소처럼 괜찮은척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묻지 마 아무것도 묻지 마 이것도 오늘 하루가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텐데,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는 데 있는데 나에게 나약한 소리를 내뱉게 하는 그런 일은 만들지 말란 말이야
하지만 이내 터지고 말았다. 아빠는 질문을 멈추지 않을 테고 난 그저 이 전화를 끊고 싶었다.
"아빠 내가 가장 힘든 건 내가 뭐가 힘든 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매일매일을 괜찮다는 주문만 외우면서 살아왔는데 그래서 진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 자신한테조차 괜찮다고 거짓말 치고 살다 보니 내가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힘든 건지 모르겠다고"
다음날 아빠는 나와의 대화를 잊었다 늘 그랬듯이. 익숙해져 버린 내가 비참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아빠가 늘 잊는 사람이어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잊지 않았다면 나약한 소리를 내뱉었다며 자괴감에 빠져 있었을 테니까
아이러니한 건 저 말을 내뱉고 보니 내가 내뱉었던 말들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나 자신에게 위로받다니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서글퍼야 하는 것인지 의아한 경우지만, 나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빠에게 힘들다고 말하면서 힘들단 말과 아프단 말이 내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말해야만 할 것 같아서 괜찮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치 중요한 것을 빼먹은 듯 불안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아도 돼요
왜 난 늘 괜찮아야만 했을까?
난 내가 괜찮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몰랐다.
나 자신에게 드높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얼마나 극심한 강박 속에 살아왔던 걸까
항상 괜찮을 순 없다.
항상 괜찮은 사람이야 말로 가장 괜찮지 않은 사람이다.
오늘 아침 친구가 이런 상황을 눈치라도 챈 듯 절묘하게 "괜찮다는 말은 괜찮지 않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러고 말했다
좋지 않아도 돼 다 싫어해도 돼 내가 느끼는 그대로가 중요한 것이다.
그걸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내가 가장 잘 알고 잘 보살펴 주어야 하는 내 감정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게 만들 거다.
괜찮지 않아도 돼 힘내지 않아도 돼 이렇게 울어도 돼 뭐든지 해도 돼
오늘 나는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섣불리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말들은 우리에게 때론 위로가 되지만 너무나도 바른 모양이어서 그래서 갑갑한 틀이 되기도 한다.
울고 있는 모두들, 괜찮지 않아도 돼요.
괜찮으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