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자, 수필 2013년 8월 23일
꿈나무에 형형색색의 달콤한 꿈들이 열렸다. 오를수록 크고 탐스러운 꿈을 바라보며 맘에 드는 꿈을 따고 싶지만 나는 몇 발짝 못 오르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오르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오르고 또 못오르면 못 오를 리가 없다.' 라면서 기어코 맘에 드는 꿈을 따고야 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중하차 하는 사람도 있다. 나무를 부둥켜안고 사랑한다며 어루만지듯 조심조심 올라 무난하게 꿈을 따는 사람.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딴 작은 꿈으로 만족하면서 다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큰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공직에 있던 남편이 갑자기 사표내고 사업하다 팡팡 세 들어오던 상가를 날리고 집까지 팔았다. 산더미 같은 빚의 이자만 매달 40만원 씩 지출해야 했다. 한사코 말렸는데도 자기 고집대로 하다 다섯 식구 갈 곳이 없어졌다. 다행이 지인이 방 한 칸을 내주어 그곳에서 지낼 수 있었다. 어린 자식들하고 그날그날 연명하기 급급했으나 남편이 상실감에 빠져 잘못 될까봐 원망한번 못하고 눈치 보기 바빳다.
이미 저질러진 상황. 탓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성격은 사건이 터지면 후다닥 후다닥 타다 소방차가 불 끄듯이 꺼지면 체념하고 새로운 환경적응이 빠른 편이다. 오히려 하늘 높이 치솟던 욕심이 주저앉아 설까.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란 말이 있지 않은가. 까마득한 꿈을 바라보며 침 삼키다 호칭만 땃다. 그리고 가족들의 호칭어에 이름표처럼 붙였다. 남편은 회장님. 큰 아들은 박사. 작은 아들은 사업가. 막내 딸은 바이올린 리스트, 그 형편에 전업주부인 내가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책이나 꺼내서 읽고 일기처럼 쓰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감히 작가로 메모해 눈에 잘 뛰는 냉장고 문에 붙여 놓고 여닫을 때마다 마음에 새기면서 읊었다. 내 형편에 내가 누려볼 수 있는 최선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남편이 헌 책방에 갔다 책 한권을 500원 주고 샀다며 읽으라고 내 놓았다. 책 제목은 '무가애'였다. 작가는 반야심정을 코끼리로 비유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더듬었는데 어느 한 부분만을 이해한 내용일 수도 있다며 겸손하게 쓴 책이었다. 내가 가는 곳이라고는 가끔 찾는 절이 다인 나를 위한 남편의 선물이었다. 뜻을 알기에 눈물 나게 고마웠다. 헌책이지만 소중한 책을 가슴에 안고 토닥거리면서 '다 읽을 거야! 읽고 또 읽을 거야!'라면서 책을 식탁에 펴놓고 읽기 시작했다. 나의 수준에 너무 어려워서 지루했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며 이해 안 가면 안되는 대로 되면 되는대로 읽다가 의자에 앉은 채로 잠깐 졸았다. 그 때 안개 같은 구름이 펼쳐진 책 페이지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라 놀라며 깨어났다. 정성을 다해 쓴 책은 그 사람의 혼이 깃들어 있다고들 하던데 그런 것일까. 그렇지만 께름직해서 책장 깊숙히 쳐 박았다. 몇 달 지나 절에 가던 중 한 신도여인을 만나 얘기하다 책에서 안개 피어오른 얘기를 했다. 그녀는 좋은 징조라며 기의 경험담을 말해주었다. 아들이 서울대 시험 치는 날 절에서 불경을 읊다 부처님 있는 쪽을 보게 되었단다. 그런데 부처님 앉은 방석아래 뚫린 구멍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안개가 구름이 피나서 신기했는데 아들이 서울대 전자공학과 수석합격 했다고 했다. 나에게도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싶어 의문의 책을 펼쳐놓고 어려운 단어는 풀어가면서 읽고 또 읽었다.
어느새 아이들이 자라 큰아들이 대학가고 빚도 다 갚았다. 무지 어렵게 살았지만 이자도 꼬박꼬박 갚았다. 작은 집도 마련했다. 그때가 늦둥이 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선생님이 엄마랑 같이 통일에 대한 글을 원고지 7매 이상 써 오란다고했다. 전교생이냐는 물음에 3학년만이라고 했다. 그리곤 바쁜 일이 생겨서 딸의 재촉에 대답만하고 잊었다. 마감 날 아침에 딸이 밥상머리에서 울고불고했다. 어쨌든 숙제는 해야지 싶어서 아침 밥 먹다 말고 원고지 가져다 불러주는 대로 적으라고 했다. 두서없이 원고지 7매를 겨우 채웠다. 숙제는 한 셈이다. 며칠 후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엄마 우수상’ 하며 상장을 내밀었다. 남편은 소경 문고리 잡았다며 비아냥댔다.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연은 아닌 듯싶었다. 작가라는 호칭을 읊어댔고, 그래서 남편이 책을 사다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마음뿐이던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그때쯤이지 싶다. 심성이 고와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들 하는데 맘뿐이지 심성 정화가 쉽지 않다. 어쨌든 잘 쓰진 못 할지라도 수필로 등단했고 글 한편씩 쓸 수 있으니 작가가 아닌가. 남편은 사장님 하면 다 돌아보는 사장이면서 사단법인 모 협회 회장이 되었다. 그나마 남편과 나는 꿈 이름표대로 꿈을 땄는데 자식들은 조금 어긋났다. 큰아들은 프로그래머고. 작은 아들은 제사업하다 실패하고 아버지 사업 돕는다. 딸은 과외선생이 되었다. 그때는 하루바삐 가난에서 헤어나고 싶은 마음에 가족의 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꿈 이름표도 구체적으로 달지 않았던 것 같아 조금 아쉽다.
가깝게 보이면서 먼 꿈나무에 꿈을 따기는 쉽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자기 적성에 맞을만한 꿈을 선택해서 간절히 원하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꿈을 딸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얼마나 간절히 원하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착하게 살면 사람들이 몰라 주더라도 스스로 행복할 것이고 공간에 꽉 찬 숲의 보이는 생명과 보이지 않는 생명이 좋아하고 도아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