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의반항

채미자, 2013년 4월 25일

by 채미자

새벽4시 쯤 정동진에 도착했다. 먹물 같은 바닷물소리가 밤의 적막을 깼다. 한 할머니가 다가와서 새로 지은, 따뜻한 방이 3만 5천원인데 3만원만 내고 눈 좀 붙이라고 했다. 해 뜨는 시간은 7시 30분이라며, 제시간에 깨워 주겠다고, 솔깃했다. 물론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 아무생각 없이 누워 있다 잠들었다. 알람 소리를 듣고 깨어나 새벽 바다로 나갔다.

아직도 어스름 바다, 뼛속으로 스며드는 한기, 모래위에 겉도는 발자국, 쏴~~소용돌이치며 모래사장을 삼켜버릴 듯이 밀려오는 파도, 침묵하고 서 있는 사람들도 우울해보였다. 그들도 삶이 버거워 일출에 소원 빌고자, 이 추위에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왔으리라, 긴장된 시선이 닿은 수평선 먼 곳에 파도 타는 오징어잡이 배의 가판에선 잡힌 오징어가 살려달라고, 살 권리가 있다고 펄쩍펄쩍 뛰겠지.

설한에 혼자 여행하기는 처음이다. 아니 방황이라고 해야 맞다. 돋는 해를 구름이 가려서 아쉽게도 일출을 볼 수 없었다. 소망 담은 시선들이 수평선으로 첨벙첨벙 떨어져 내렸다. 몸이 떨렸다. 어떤 대가를 치루기 위한 체벌 같아서 후련하기도 했다. 홀로 깊은 시름에 잠긴 듯이 바다만 바라보는 여자, 담담한 표정으로 꼿꼿이 걷기만 하는 30대 중반 쯤 보이는 여자도 혼자인 것 같았다 혼자다보니 혼자 온 사람이 눈에 띄었다. 연령에 따라 표정도 분위기도 다르다. 그들도 설한을 뚫고 오게 된 동기나 사연이 깊겠지.

“날씨가 몹시 춥지요? 지난겨울에 왔을 땐 이렇게 춥지 않았는데.” 선글라스를 쓴 여인이 두리번거리는 내 옆에서 말했다. 한 60대 쯤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도 혼자인 듯했다. ‘새벽부터 웬 선글라스?’ 달갑지 않아하는 눈치를 챘는지, 반응 없는 내게 변명이라도 하듯이 바람이 차서라고 하면서 선글라스 다리를 손으로 잡았다 놓는다. 나는 서먹해하는 그녀에게 대꾸를 했다.

“겨울여행을 좋아하나 봐요?”

“딱히 어느 계절이라기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땐 바다를 찾아오는 편이지요.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전환이 되거든요”

“참 좋은 방법이네요, 나는 이불 뒤집어쓰고 속을 푹푹 썩이고 있는 편이었는데, 용기 내서 이렇게 나오니까. 역시 막힌 가슴이 뚫리는 것 같네요,”

대화중에 나처럼 그녀도 종가의 종부라는 말에 공감하는 인고의 숨결이 묻어나와 선가, 이미 아는 사이 같았다. 그녀를 숙소로 안내했다. 창밖에 바다가 내다보이는 침대에 앉아서 끝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속내를 털어 놓았다. 대나무 숲 산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소리친 사내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그녀는 참고 있던 울분을 토해냈다. 남편이 시부모와 한통속이 되어 자기를 무시하고 가족들 앞에서도 자존심 밟기를 서슴지 않았다고, 어린자식들 때문에 그 수모를 견뎌왔는데 며느리 보더니 이제는 며느리와 한통속이 되어 집안 살림도 며느리와 상의하면서, 게다가 며느리 앞에서 폭행까지 하는 그 인간과 더 이상 참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며 썬 글라스를 벗는 상기된 얼굴, 피멍든 눈두덩이, 떨리는 입술 가엔 김 서린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쩌면 좋아! 진정하세요! 화병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라고 하는 내게, 그녀는 이미 치매시어머니 모실 때, 화병 났었다며 이 정도는 괜찮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이토록 북받치는 아내의 서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같은 여자로서 치밀어 오르는 울분이 검푸른 바다를 덮고도 남을 듯 했다. 현명한 사람은 시대에 흐름을 잘 탄다는데 그녀의 남편은 듣도 보도 못하는가.

나는 맞장구쳤다. “어떻게 며느리 앞에서 치매모친까지 모신 아내한테 함부로 할 수 있어요? 너무 지나쳤네요! 내 남편도 그런 식이거든요. 남자들은 왜 그렇게 미련한지 몰라요. 특히 늙어가는 남편들이 대부분 그래요.”

그녀는 잠자코 있다가 “미련하면 평생 고생한다잖아요. 거기까지가 그 인간의 한계인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의 모습은 몹시 피곤해보여서 좀 누우라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며 창밖에 바다를 바라보다가 “저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어떤 굴레 따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마냥 자유로워져요, 제주도에 집 한 채 있는데 가족을 떠나 거기 가서 혼자 노후를 보낼까 봐요”

“나는 반대하고 싶은데요, 가족과 함께라면 몰라도. 혼자 있으면 산 같은 외로움이 검푸른 파도처럼 밀려오면 어떻게 해요, 나는 우울할 때 파도치는 밤바다만 보아도 칼날이 번득이는 것 같던데요. 파도소리는 칼 부딪히는 소리 갖고 하얗게 보이는 거품은 칼날의 번득임 같거든요. 가족을 떠나 제주도에서 혼자 살면 후회할 겁니다.”

그녀는 잠자코 있다가 “위험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칼날에 서서 순간순간을 잘라내며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삶은 어차피 외롭고 고독하지 않겠어요.”

나는 공감했다. “그럼, 외로움과 고독은 운명이네요. 똑딱똑딱하는 초침 소리 또한 살점들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죽는 소리일거예요,”

아하하... 그녀는 처음으로 화들짝 웃었다. 남편에 대한 불만이 어찌 비슷하지 않으랴, 가부장시대의 막바지를 사는 우리 또래들의 불만이아니던가. 남존여비, 선조들의 오류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할머니들, 어머니들이 그 무지막지한 폭력에 무릎 꿇고 꽃잎처럼 져 갔는가. 그땐 딸을 낳으면 산모도 아기도 구박받았고, 핏덩어리 딸을 엎어놓아 죽이기도 했단다. 미련에 극치가 아니던가. 사남매 중에 딸 하나인 나도 딸이라고 차별받고 자라지 않았던가.

언젠가는 집어삼킬 듯이 어금니가 다 드러나도록 입을 벌리고 소리 지르며 내게 덤벼드는 남편이 괴물 같았다. 그 시절의 근성이 대를 이어 잠재의식에 남아 있다가 불쑥 불쑥 본색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입으로만 남녀평등이니, 여성상위니,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아들보다는 자상하고 잔정 많은 딸을 더 선호한다느니, 하지만 내심은 그 반대인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짧고도 덧없는 세월, 아끼고 사랑해도 모자라는데 아직도 약한 여자 위에 굴림 하는 남자, 그 우매함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서러움은 벌써 망각 속에 묻어버렸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턴가 앞 다투어 자식 자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네에겐 망각이라는 치료제가 있어서 금방 헤어질 것 같은 부부도 해로하고 사는가보다.

그녀는 내일이 동지인데 팥죽 쒀야한다며 서둘러 떠났다.

나는 무궁화호를 탔다. 화는 바닷물에 풀어 놓았는가, 방황 길에 날려 보냈는가. 그녀와 담소를 나누면서 이해 폭을 넓혔다. 부서진 여필종부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남편, 그래서 미련함을 자초하는 그도 피해자가 아니던가. 나 없는 동안에 끼니는 거르지 않았는지 걱정된다.

새벽에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마음이 가뿐해졌다. 대문에 들어서자, 가출의 이유를 익히 아는 남편이 마당에서 “자네 지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아무대꾸도 없이 남편을 한 번 쳐다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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