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자, 하나씩 내려놓으며 산다 산문집중 2013년
공작산 꼴자기 계곡 타고 흐르는 물, 서로 어우러져 수다 떨며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바윗돌과 하얗게 부딪히며 굴러 갑작스럽게 바위 난간을 만나면 토막토막 작은 폭포로 떨어져 내린다. 하얗게 부서져 솟구쳤다가 또 그렇게 떨어진다. 그러기를 반복하는 층층의 폭포가 모아진 물줄기가 대각선으로 쏟아지는 한줄기 폭포가 된다. 시원하다. 그렇게 쏟아지는 폭포수는 몇 구비 휘돌다 언제 그랬느냔 듯 유속을 줄여 잔잔한 물웅덩이를 만들기도 한다.
나는 양말을 벗고 바지를 접어 올리고 첨벙첨벙 그 물 속으로 들어갔다. 엄청 시원하다. 발에 밟힌 물방울들이 영역을 침범한 바지부리를 잡고 늘어진다. 무겁고 칙칙하다. 조금은 미안하지만 사는 것이 다 그렇지 않던가.
이럴 때면 보글보글 솟아오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칠갑산 골짜기 햇살 머무는 계곡물에 발장구치면 눈 튀어나온 가재가 뒷걸음질 치며 집게발을 번쩍 들고는 덤벼보라고 한다. 내 손이 가까이 가면 집게발을 더욱 높이 들어서 뒤집어질 것 같이 버티며 뒷걸음질 켰다. 붕어란 놈은 가재보다 겁이 없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일렁이는 물살을 헤치고 발뒤꿈치를 쪼아댄다. 간지러워서 발을 들었다 놨다 해도 도망칠 줄도 몰랐다.
공작산엔 물이 이렇게 맑은데도 가재와 붕어는 없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람을 피해 숨었을까? 예전엔 숨을 줄도 모르는 순진한 가재와 붕어가 요즘엔 약아져서 어쩌다 만나면 줄행랑을 치느라고 바쁘다.
물에 발 담그고 가재와 붕어를 찾았지만 깊숙이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물 흐르다가 쉬는 물웅덩이에 아기 주먹만 한 호두 몇 개가 동동 떠있다. 호두인 줄 알았더니 호두를 닮은 가래란다. 손아귀 힘세라고 쥐고 굴리기도 하고 그 모서리를 수지침 대용으로도 쓰인단다. 인적 없는 계곡에 있으니 산이 주인이 아닐까? 가령 주인이 따로 있다손 치더라도 나무에서 떨어져 굴러다니는 것 몇 개 줍는걸 뭐. 양심 찔릴 필요는 없다. 가래를 보물처럼 주워서 껍데기를 벗기고 하얗게 갈고 닦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은 나의 작은 희망이었다.
물 한 웅큼 떠서 들여다보았다. 너무나 투명해서 피부에 땀구멍이 굴뚝처럼 보인다. 이 물이 오랫동안 씻지 못한 내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 줄 것 같다. 푸르고 투명한 물웅덩이 속의 파란 하늘이 유난히 맑다. 하늘이 물이고 물이 하늘이다. 나도 물처럼 하늘처럼 파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