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자, 하나씩 내려놓으며 산다 산문집중 2013년
한라산을 등반하기로 했다. 농협 주부산악회는 매월 둘째 주 화요일에 한반도 어떤 산이든 무박으로 갔다 온다. 이번엔 제주도인지라 일정을 최소한으로 잡아 1박2일로 정했다.
우리는 월요일 오전 6시에 출발해 7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안개 때문에 자그마치 5시간이나 연착이란다. 일행은 우왕좌왕하다 영종도바다에 마음을 펼쳐놓고 거닐다 이륙했다.
제주도 하면 큰 오빠생각이 난다. 북한의 침략으로 한라산까지 후퇴했으나 거기서 그만 전사했단다. 군인들이 하얀 유골함을 들고 부엌 문 앞에 나란히 서 있었고, 어머니는 부엌바닥을 치며 절규하셨다. 초.중학교에서 우등생이었던 오빠. 면, 군이 동원되어 모교에서 장례식을 했단다. 어머니는 일하시다가도 짬만 나면 가슴에 품고 있던 아들사진을 꺼내어 들여다보며 우셨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 고인이 되신 어머니, 아직도 나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어느 사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돌하르방이 눈에 띄었다. 곰보의 얼굴에 테 모자를 쓰고 자루 병 같은 코에 두툼한 입술을 꼭 다문 채 양손을 배에 모으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일정 지연으로 공항 남쪽에 있는 어리목에서 나지막한 어승마(나라에 바치는 말을 키웠다는 곳)오름을 탔다. 50년만의 폭설 때문에 먼저 간 발자국을 딛고 조심스럽게 정상까지 올라갔다.
다음 날 일행은 관광 팀, 등산 팀으로 나뉘었다. 어승마 오름도 꼴찌로 오른 내가 한라산등산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성묘하러가는 심정으로 등산 팀에 합류했다. 50명중 14명이 성판악 휴계소에서 오전 6시에 출발했다. 1시간 정도 동행할 수 있었는데 더 이상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일행은 날보고 무리하지 말고 그냥 내려가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며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고독한 산행이 시작되었다.
진달래 대피소까지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왕복 8시간 걸린다는 한라산 정상. 서둘러야 했는데 빙판길인지라 몸만 앞서고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나무 계단을 기어서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40대 쯤 보이는 산지기와 나뿐이었다. 서둘러 관음사 쪽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복지과장이 핸드폰으로 그 코스는 혼자 내려갈 수 없다며 제주사는 인솔자 친구를 성판악으로 보낼 테니 되짚어 내려오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눈송이처럼 언제 녹아버릴지도 모르는 한 점 나, 한계에 도전한 것인가, 고집인가, 집녑인가. 아니, 이대로 괜찮은가. 20여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고산식물들이 파릇파릇했고, 백록담 푸른 물이 찰랑 거릴 때였다. 지금은 푹 꺼진 구덩이에 눈만 쌓여 있다.
산지기가 철수할 시간이라며 빨리 내려가라고 나를 내몰며 저만치 재빠르게 내려갔다. 같이 가자고 할 걸 후회하면서 두려움에 쫒기어 허겁지겁 내려오는데 산지기가 등걸에 걸터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같이 가자고 해야지.'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는 조심해서 내려오라며 확 달아나 버렸다. 내가 걱정 되어 기다리다가 확인하고 간 모양이다. 그래도 그가 앞에 가고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지는 태양에 매달려 썰매 타듯이 반 누워 미끄러지고, 뛰고, 구르며 내려오는데 눈 뿌리는 짓궂은 바람, 토종 까마귀의 음산한 울음소리, 받히고 있는 눈이 무거워서 휘어져 꺼꾸로 뻗은 검푸른 향아무가지들, 전투하느라 숨져간 영령들이 무덤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은 으스스한 산속이다. "오라버니 지켜주세요. 여보 잘 할께. 친구야 다시는 미워하지 않을께. 모두 다 어데 있니?" 그래도 다행히 복지과장의 핸드폰 소리가 적막을 깨고 어디쯤이냐고 간간히 들려왔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빙판길 지칠 대로 지쳐 눈 위에 주저앉았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침식사 이른 탓에 몇 술 뜨다 말았고, 도시락도 앞서가는 친구가 가져갔다. 이 음산한 산속에서 엉덩이는 차가워오는데 일어설 기력이 없으니.
"어쩜 좋아! 아!"
누군가 초콜릿하나 오이 두 개를 배낭에 넣어준 것이 생각났다. 그 걸 먹고 걸을 수 있었다. 성판악 휴계소가 보여서 반가웠다. 가까이 가자 흰 눈 바탕에 등산로 표시로 매어놓은 붉은 헝겊과 초록색 나뭇잎이 어우러져 휴계소로 보였다. 도깨비에 홀린 듯이 그런 풍경에 속고 또 속았다. 땅에 붙은 고목 등걸이 꼭 도깨비뿔같은데도 이젠 무섭지도 않고,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부처님, 하느님, 시부모 모시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고 고생했단 말을 방패처럼 내세웠는데 이젠 안 그럴께요."
5시쯤 진짜 성판악이 보였다. 그래도 하산길은 발 빠른 사람보다 더 빨리 내려와서 일행보다 1시간 정도 늦었다. 고생은 했지만 오라버니 성묘하고 온 기분이다. 제주시장에 은갈치와 선물 사러간 일행보다 먼저 부두에 도착했다. 은갈치는 못 샀지만 출항시간 늦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민폐 끼친 동지들이 미안해 귤 한 박스 사서 나누어 먹고 배에 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