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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백일홍 속으로 들어간 뻐꾸기

채미자, 하나씩 내려놓으며 산다 산문집중 2013년

by 채미자

꽃향기 절정인 봄이다. 새벽 4시쯤에 깨어나 화장실 갔다가 잠이 오지 않아 책을 읽는데 으슬으슬 춥다. 갑자기 창밖에서 뻐꾸기가 뻐꾹 뻐꾹 뻐꾹 운다. 아직 밖은 어둑어둑한데, 웬일일까. 새벽에 뻐꾸기 우는 소리는 처음으로 듣는다. 언제나처럼 나도 뻐꾹 뻐꾹 다라했다. 그러면 뻐꾸기도 뻐꾹 뻐꾹 화답한다. 그렇게 주고받기가 시들해질 때까지 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새벽이러선지 귀찮아 졌다. 몇 번 따라하다가 자려고 누웠따. 뻐꾸기는 계속 뻐꾹거렸다. 잠들면서도 뻐꾹거리는 소리는 잠속까지 따라왔다.

뻐꾸기와 친해진 지도 몇 년 됐다. 어느 해 텃밭을 매고 있었다. 누티나무 사이 전깃줄에 뻐꾸기가 앉아 갸웃거리며 뻐꾹 뻐꾹 뻐꾹했다. 나도 뻐꾹 뻐꾹 뻐꾹하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뻐꾹거렸다. 텃밭 매거나 마당에서 일 볼 때도 찾아왔다. 외출할 땐 큰길까지 따라오며 뻐꾹거렸다. 그러나 창밖에서 나를 부르는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어두운 새벽이 아닌가. 낮에만 우는 줄 알았었다.

늦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어젖혔다. 싱그러운 공기가 몰려 들어온다. 뻐꾸기가 왜 새벽부터 와서 울어댔을까. 혹시 몸이 아파 구조요청하러 온 것은 아니었을까. 나가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따. 어디 앉아서 울었을까. 창밖의 나무들을 쳐다보다 창문아래 콘크리트 바닥에 뻐꾸기가 날개를 펼치고 죽어 있었다.

왜 죽었을까. 재빨리 집 모퉁이를 돌아 창문 아래로 갔다. 정녕 몸이 아파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울고 울다 죽었을까. 전에 까투리가 유리창에 비친 숲을 보고 날아들다 머리 박고 기절한 창문이다. 컴컴해서 창문 속의 숲 때문은 아닐 것이다. 창문 속의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만났어도 멀리서 나를 만났지 가까이 온 적은 없다. 무엇 때문에 왜 죽었을까.

창 밖 화단 목백일홍 밑을 삽으로 팠다. 거기에 뻐꾸기를 묻고 나무 젓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주었다.

'뻐꾸기야! 미안해! 무엇 때문인가 나가 보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잠들지 않고 대꾸라도 해 주었더라면 살아 있을 수도 있는데, 무심해서 미안해! 목백일홍 속으로 들어가 곱게 피어나렴.'

지켜지도 못하는 뻐꾸기. 이젠 사물가 정들이기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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