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자, 하나씩 내려놓으며 산다 산문집중 2013년
또복이는 스피츠 잡종이다. 아파트에 같이 살 수 없어서 목장에 가져다 놓았는데 주인이 잘 보살펴주어도 전주인만 찾는단다. 우리 가족이 목장에 들어가면 뛰어오르며 반가워 난리도 아니다. 다른 개들 앞에서도 으쓱거리며 뽐내는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목장에서 돌아 올 때면 짧은 다리로 있는 힘을 다해 따라온다. 지칠 때쯤이면 절름절름 낑낑거리며 승용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이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 뿌리칠 수밖에 없었던 또복이 생각을 하는 듯 싶다. 연속극 보다가도 눈물을 글썽이는 그이는 한 30분 정도 앉아 있다가 "단독주택으로 이주해야겠어, 또복이를 데려다 키우게."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이와 나는 집 문제로 다툴 때가 더러 있었다. 나는 호젓한 단독주택에서 고향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흙냄새 풍기는 마당에 잔디도 심고, 미니 호수도 만들고, 각종 유실수도 심어 놓아 새들을 기다리며 살고 시었다. 그러나 그이는 혼자 고립된 것 같은 단독주택 생활보다는 아파트 숲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좋아선지,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아파트만을 고집했다. 그런 그이 생각을 또복이가 바꾸게 했다. 이제라도 마음을 바꿨으니 언젠가는 단독 주택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느 해 가을날 오후 그이는 강아지를 안고 집에 들어왔다. 깨물어주고 싶은 하얀 새끼 강아지였다. 아이들이 흥분해 교대로 껴안으며 뽀뽀하고 우유와 초콜릿을 사오는 등 시끌벅적 난리였다.
나는 개를 싫어했다. 정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 첫째 이유다. 정들였다가 상처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이면 개 비린내가 심하고 목욕을 자주 시켜야하는 번거로움도 싫었다. 그리고 집안에서 오래 키우면 방 구석구석 틈새마다 개털이 날아 박힐 것이고, 개 냄새가 배어서 사람 집이 개집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천진스런 새까강아지라 그런지 모성애를 느꼈다. 그이로부터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경위를 듣고 있는데 애들이 겁먹은 소리가 들렸다.
"엄마! 강아지가 죽었어. 어떻게 해!" 하며 애들은 강아지를 안고 떨고 있었다.
창문 사이에다 올려놓았는데 떨어져 그렇게 되었단다. 너무 어린 강아지를 어미 품에서 떼어 죽였나 싶고, 애들에게 못 볼 것얼 보게 하나 싶어서 그이를 잠시 원망했다. 애들은 마치 엄마가 수의사라도 되는 듯이 꼭 살려내라는 눈치였다. 나는 축 늘어진 강아지를 품에 안고, 제발 살아나라고 토닥토닥 빌었다. 아이 셋은 내 앞에 오물조물 앉아서 초조하게 강아지가 살아나기만을 기다렸다. 한 3분 정도 되었을까. 강아지가 움직였다. 떨어지는 충격으로 기절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아이들은 강아지를 더욱더 사랑했다. 둘째 아들은 강아지 이름을 '또복이'라고 하자고 했다. 그 이유인즉 복이 있고 또 있으라는 뜻이라고, 우리는 손뼉 쳐 찬성했다.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또복이가 자라면서 어찌나 영특한지 청각, 후각이 상상을 초월했다. 대문 밖 한 오백 미터 전방쯤에 누가 오고 있는지 알아냈다. 또복이가 둘째 아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그 애가 어디 쯤 오고 있는지 또복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귀를 뒤로 쫑긋 젖히고 주춤주춤 낑낑거리며 꼬리를 마구 흔들어댄다. 다른 가족이 오고 있으면 '끙끙.' 꼬리를 약하게 좌우로 몇 번 흔달다 만다. 강약에 차이는 있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가족 누구라도 반가워 꼬리를 흔들어댄다. 낮선 사람이라도 오면 내게로 도망쳐 바짝 붙어서 꼼짝 못하는 겁쟁이 또복이. 우리는 무척 사랑했다.
고향집에서 누렁이 '워리'를 키웠다. 매우 영리했다. 그 때도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쥐 잡으려고 놓은 쥐약을 먹고 무엇이든 마구 물어 뜯으며 사경을 헤맸다. 작은오빠는 주전자에 부눗물을 담아 워리 입에 부으니까 주전자 입을 마구 씹어 찌그러졌다. 그래서 오빠는 손으로 입을 벌리는데 그 와중에도 오빠의 손가락이 씹힐까봐 혀로 손가락을 밀어내면서 이를 악물더란다. 죽어가면서도 주인을 지켜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워리, 작은 오빠는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그 후 우리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지금도 워리를 닮은 개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2년전 아파트 분양받아 이주함녀서, 그이는 또복이를 누구 주자고 했다. 그 대신 족보 있는 애완용 강아지를 사다 주겠다고 아이들을 달랬으나 또복이를 대신 할 수 있는 개는 없다며 아이들은 펄쩍 뛰었다. 우리는 같이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성화에 이이들을 설득시켜 김포 목장에서 키우기로 한 것이다. 그이도 어쩌다 만나면 애원하는 또복이를 외면할 수 만은 없는 모양이다. 단독주택으로 이주하겠다는 것을 보면.
그러나 지금은 설레는 꿈일 뿐 그날은 멀기만 하다. 하지만 뜻이 절실하면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