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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Oct 28. 2015

어떻게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것인가

김홍탁 크리에이터가 말한 인문학 소양을 위한 두 가지

'김홍탁'님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오늘 점심때부터 감기 기운이 와서 몸이 버거웠다. 밖에 있다가 집에 잠시 들러서 쉬는데 너무 무거웠다. '갈까 말까' 수십 번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왜 가기로 했는지 생각했다.


김홍탁 님을 처음 안 건 세바시 강연에서였다. 여러 광고를 보여주셨는데 그 자체가 영감이었다. 그리고  한두 번 다른 강연에서 비슷한 형식의 강연을 들었다. 매번 거의 동영상만 보았는데도 끌리는 느낌이 있었다. 책이든 강의를 들으면 반드시 내게 통찰을 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가기로 했다. 끌려서.


이 끌리는 느낌은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강연에도 나온 이야기이지만 돌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같다. '돌이 나를 부른다'는 느낌. 내겐 아이폰이 그랬다. 기계식 키보드가 그랬다. 만년필이 그랬다. 이 모두는 정말 오랫동안 고민하다 확신하고 질렀고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매번 만족감을 준다. 난 이 느낌을 좋아하고 신뢰한다. 결국 몸을 이끌고 나왔다.


너무 피곤해 집에서 내린 더치커피 한 잔 훅 마시고 1호선을 타고 종각역으로 앉아서 가다 살짝 눈을 붙였다. 지나쳤다. 돌아와서 강연장을 가니 토크가 진행되고 있다. 들어가자마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최근에 쓴 글 내용이 거의 그대로 언급되고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교육 목표를  보며>에서 언급한 문맹률과 실질적 문맹률, SNS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 느낌이, 내가 느낀 끌린 그 코드가 맞았단 생각이 들면서 강연에 빠져들어 가게 됐다. (포스트잇을 활용하는 것이나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 등 사소한 코드도 같아서 '역시' 싶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북토크는 최근에 나온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 책을 주제로 진행됐다. 강연을 들으며 나는 한 가지 결심했다. '내가 제일 먼저 질문하리라'. 내 질문은 이것이었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될 무렵 김홍탁 님이 '질문 ~... 말고 듣고 느낀 점을 이야기 ...' 이라셔서 '질문 시간 되면 손들어야지' 하고 손을 들려다 말았는데 그새 선수를 뺏겼다.


마지막 질문이란 직감이 들어 손을 들었다. 물었다. 그리고 답을 들었다. 키워드는 '낯섦'이었다.


낯선 곳에서 통찰이 나온다.
통찰은 낯익은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낯섦의 대명사는 '여행'이다.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셨다.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들게 한다. 오감이 열린 채로 모든 걸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독서이다.


여행, 낯선 시공간 속에 오감을 열어주는


여행 속 낯섦에서 무언가 배운다는 건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을  읽고>에서 배웠다. 또 전에 쓴 <삶에서 기회를 얻는 2가지 방법>에서 다룬 내용이기도 하다. 나는 이 방법의 효과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삶에서 자주 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내가 진(眞) 길치이기 때문에.


심한 길치는 집에 갈 때도 가는 골목길로만 간다. 다른 길로 가면 익숙한 곳이니 지레짐작할 뿐이지 감이 안 올 때가 있다. 나는 예전 집에 있을 때 맘 편히 산책을 나갔다가 엄한 동네 뒷산을 타고 온 적이 있다. 이럴 때 길치들의 몸의 반응은 이렇다.


급 긴장한다. 그리고 오감이 작동한다. 뇌에 혈류가 빠르게 흐름이 느껴진다. 어떻게든 여기가 어딘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딘지 전혀 모른다. 어렸을 때는 길을 잃었단 두려움에 무조건 길을 찾으려 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냥 겁에 질려 길을 찾아다녔다. 이젠 잃어봐야 서울이기에 천천히 되는대로 걷는다(그래서 되는대로 걷다 산을 타 버렸다). 주변을 음미할 수 있게 됐다. '오 여기에 철물점이 있었네, 새로 생긴 돈까스집이구나'(물론 다시 못 찾아가는 게 함정이다).


어릴 때 새로 사귄 친구 집에서 놀다 집 가는 길을 잃은 적이 있다. 해가 질 무렵 세상이 새파랗게 될 때가 있다. 내가 다니지 않던 길로 가다 한 언덕을 올랐다. 내 눈앞에 다른 '세계'가 있었다. 다른 세계란 두려움에 그쪽으로 가지 못했지만 그 다른 세계란 느낌은 내게 각인되었다. 내가 길을 헤맬 때마다 그 느낌을 생각나게 한다. 이 느낌은 내가 '낯선 곳에 있다'는 증표이다.


오감을 열어 모든 시공간을 흡수하라


헤매는 데에 익숙해져도 몸에 반응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감이 작동한다. 이때가 내가 내 주위에 있는 시공간을 흡수하는 때이다. 처음 보는 건물, 사람들, 길, 차, 여러 물건의 배치들이 내게  정보화되어 흡수된다. 그게 어떤 정보로 변환되는지는 모른다. 마치 문학 소설을 읽을 때 묘사된 배경들이 그냥 내게 들어오는 것과 같다. 김홍탁 님은 이런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엄청난 이때가 인문학적 소양에 중요하다고.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발현될 것이라고. 그래서 크리에이터들이 '역마살'이 많은 거라고.


가능하다면 낯선 곳으로 떠나라. 떠나서 새로운 곳에 오감을 열고 다 흡수하라. 계속 흡수하고 축적하고 해석하라. 낯선 곳으로 멀리 떠날 수 없다면 집 근처 안 가본 곳을 돌아다니자. '낯설게 보기'는 키울 수 있는 능력이다. 내게 익숙한 곳이 익숙하지 않음을 알았을 때, 그걸 볼 수 있을 때 통찰력이 싹튼다. 해외여행 경험이 있냐 하셔서 4년 전 다녀온 세부 여행을 말했다. 한 달 동안의 시간. 모든 것이 새로운 곳에서 들뜸과 긴장 속에 무언가 고양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 느낌이 바로 '낯섦 속 흡수하는 것'이었다.


나 같은 길치의 최고 장점은 조금만 노력하면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한다면 항상 낯선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것. 특히 좁지만 복잡한 서울은 옆 동네 안 가본 곳만 가도 '낯섦'을 만끽할 수 있다. 삶을 여행처럼 이란 말을 누려보려 한다. 언덕 넘어 만난 '새로운 세계'를 자주 만나보려 한다.



독서, 다른 시공간에 나를 데려가 주는


시간상 독서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 독서는 말 그대로 저자가 만든 사고관, 세계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낯섦'인 행위이다. 특히 문학 작품은 작가가 창조한 세상에 들어가는 것이기 누구나 낯섦을 느낀다.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많아진다. 주인공이 누구며 어디 살며 주변 상황이 어떤지 우리는 작가가 준 정보를 통해 최대한 빨리 알아내기 위해 오감으로 흡수한다.


독서는 내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게 해준다. 시대와 국적, 언어가 달라도 상관없다. 독서를 시작하는 순간 <매트릭스>에 접속하는 것처럼 책의 세계관에 들어간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오감을 열어야 한다. 낯섦을 느껴야 한다. 그냥 패키지 여행 시 가이드가 가란 대로 가고 보란 것만 보고, 아니 그것도  귀찮아해서 랜드마크 사진만 찍고 오는 여행에 낯섦을 느끼기 어렵고 통찰이 싹트기 어렵듯 독서도 그렇다. 후르륵 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푹 젖어 들어가야 한다.


책에도 소위 말하는 역마살이 끼어야 한다. 다양한 분야, 저자의 책을 읽으며 다양한 세계에 들어가 봐야 한다. 항상 '낯섦'의 민감함을 유지해야 한다. 항상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낯섦 속에서 항상 흡수하라
삶을 만끽하라


여행과 독서에서 쌓고 기른 '흡수량'과 '흡수력'은 그 외에 삶에서도 효력을 발휘한다. 그냥 걷다가도, 슈퍼를 가서도, 음악을 듣다가도, 예능을 보다가도 흡수하게 된다. 작가는 글 소재가, 음악가에겐 악상이, 카피라이터에겐 통찰이 떠오르게, 이어지게 한다.


내 삶에 있는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을 느끼는 것. 다양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느끼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의 흐름에서 느끼는 것. 이것들이 내게 인문학적 소양을 갖게 한다. 삶에 너무 익숙해지지 말자. 낯설게 살자. 새롭게, 신선하게, 놀랍게 살자. 인문학적 소양 쌓기를 스펙 쌓기로 생각하지 말자.


여행과 독서로 낯설게 산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재미난 일인가. 즐거운 일인가. 삶을 만끽한다는 것이.



오늘 내가 북토크에 간 것도 '낯선 곳, 낯선 시간'에 들어간 것이다. 그 결과 나는 몇 가지 '통찰'을 얻었다. 그리고 하기로 결심한 '질문'을 했고 '답'을 듣고 '영감'을 얻었다. 굉장하지 않은가? 한 번 해보면 어떤가? "그냥 한 번 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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