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했던 바로 그 리더,
우리가 모두 그런 리더가 되자.
사이먼 사이넥
황금률이란 말이 있다. 내가 받고자 하면 먼저 받고 싶은 대로 주라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그 원리가 문득 중요하단 생각을 한다. 이 생각은 전형적인 '낙관적인 자'의 생각이다.
이 원리를 예로 들어보자. <마션>(의 리뷰는 여기)을 생각해보자. 화성에서 지구로 살려달라는 요청을 한다. 살려달라고만 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살고자 하는 만큼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행동에 지구가 끌려오지 않았던가.
내가 먼저 하면 된다, WHY NOT?
낙관적인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걸 누가 해주기 바라지 않고 자기가 한다. 하늘을 날고 싶다면 내가 날아보는 것이다. 누군가 해주기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Why not?' 하는 마음으로.
나도 여러 모임에 리더이며 동시에 팔로워이다. 내가 리더를 하면서 느낀 결론은 거의 모든 모임은 리더가 굉장히 중요하단 것과 동시에 리더만 중요하기 쉽다는 것이다. 리더만 책임감을 지거나 리더만 모임을 생각하거나 하기 쉽다.
팔로워들이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끌려 올 때가 많다. 같이 가기로 한 '팀'인데도 불구하고 심정적으로 '갑을'관계를 해주기 바란다. 그 정도도 양호하다. '프리 라이더' 가 되려는 이들이 참 많다. 동시에 희한하게도 프리 라이더들이 리더와 팀에 불만이 제일 많다. 자기 발로 걷지 않으면서, 모임을 위해 어떤 희생도 자처하지 않으면서, 이익만 얻길 바라면서 불평이 제일 많은 것이다!
나도 내가 리더일 때와 팔로워일 때 적극성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처음엔 '내가 리더도 아닌데 너무 주체적이면 튄다, 괜히 분위기 흐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새 나도 스스로 걷길 포기하고 옆에 끌려가는 이들처럼 내 목줄을 걸어 끌어주길 기다렸다. 위험 신호였다.
리더는 리더의 역할, 팔로워는 팔로워의 역할, 역할이 있다면 모두 '리더'
팀엔 리더와 팔로워가 있다. 이 말은 리더가 팀을 이끈다는 게 아니다. 리더는 먼저 보고, 먼저 간다. 방향을 정하고 책임을 진다. 우리는 리더를 믿고 '따른다'. 따른다는 건 끌려 간다는 것이 아니라 '따라간다'. 팀에서 우리가 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팔로워일 때도 있고 리더일 때도 있다. 어느 때이든 우린 팀이다. 모두가 팀의 일원이며 우리가 팀을 구성한다. 정의에 따라 우리는 모두 '리더'일 수 있다.
우주선을 조종하는 사람, 고치는 사람, 여러 계산을 하는 사람 그리고 리더가 있다고 생각하자. 어느 하나 빠질 수 없는 자리이다. 다 중요하다. 모두가 팀의 일원이다. 각자가 각자 맡은 일에 '리더'라고 생각해야 한다. '리더'는 '리더'라는 자리의 '리더'이다. 다른 팀원은 각자의 자리의 '리더'이다.
우린 어디나 '팀', '공동체'에 속해 있다.
바라는 모습이 있다면 '되게 하자'. 바라만 보지 말고
내가 바라는 리더가 있다면 내가 먼저 그런 리더처럼 행동하자. 적극적으로, 맡은 일을 다 하며 그 너머 진보된 한 걸음까지 나아갈 수 있는 리더로 행동하자. 팀원을 위해 희생할 수 있으며 내 소임을 위해 책임지며 결단할 용기가 있는 리더로 행동하자. 우리의 팀원들이 각자가 리더가 되어 정말로 한팀이 된다면 어떨까.
그런 공동체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경험해보고 싶은가? 내가 먼저 이미 공동체가 된 것처럼 그 공동체 일원이 된다면, 그렇게 행동한다면 어떨까? 내가 그 공동체를 만들면 어떤가? 우리가 먼저 주체적으로 낙관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리더가 되고,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를 만들면 어떨까?
WHY NOT? JUST BE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