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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Oct 30. 2015

행하자, 행복하자

우리는 책을 읽는다. 무언가 배우기 위해서. 책을 읽으면 무언가 배우는 기분이 든다. 좋은 책을 읽을수록 더욱. 거기에 담긴 내용이 머리에 새겨지고 마음을 울림을 느낀다. 그 느낌은 실제이다. 마음에 와 닿은 쪽을 접어두기도 하며 포스트잇이나 플래그를 붙이기도 하고 때론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어쩔 땐 다짐을 적은 메모를 한다. 


기억하기 위해서, 거기에 감명을 받았단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우린 그렇게 한다. 


그러니까 책에 적힌 구절 자체에 대한 내 생각은 진짜다. 내 느낌은 진짜다. 나는 거기에 동의하거나 감동을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의 느낌은 착각하게 한다. 그때의 끄덕임으로, 그때의 밑줄그음으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을. 알게 됐다는, 다음에 볼 땐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정말 그렇게 믿어 행하지 않는 진리는 그냥 가십일 뿐이다. 그 순간에만 재미있을 뿐 사라지는 공허한 불꽃놀이일 뿐이다. 사소한 진리라도 행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된다. 믿고 행할 때 그게 진리라는, 진리다움이 증명된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엔 사람들은 바다 끝으로 나가지 않았다. 계속 가면 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게 진리였다. 정말 멀리 안 나갔으니깐.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전해졌을 때도 한동안은 멀리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다 해도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면 주저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내게 '진리'로 와 닿지 않은 것이다. 그 간단한 문장 하나,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다 생각하는 그 사실이 그럴 때가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사실을 믿고 멀리 나갔고 증명했다. 지구는 둥글다는 걸. 그 증명 앞에서야 사람들은 안심하게 된다. 그제야 진리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배운 것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그저 책 속 밑줄로만 남아 있다면 무의미하다. 단 한 줄이라도 내가 그것을 믿고 살아낼 때 생명력이 생긴다. 내가 말하고 내가 쓰는 걸 이미 해본 사람에게서 나올 때의 힘은 그냥 생각만 해본 사람의 것과 차이가 크다. 단단한 느낌을 받는다. 말하는 대로 사는 사람과 쓰는 대로 살아온 사람과 만나면. 그들의 대화와 책을 보면 문장 하나하나에 힘이 있다. 그들의 문장력과 별개로. 살아본 이만이 쓸 수 있는 생생함이 담겨 있다.


내가 오늘 여러 가지를 배웠다면,  그중 하나라도 해보자. 하나라도 믿고 해보자. 내가 해보지 않은 걸 말하지 말라까진 어렵진 모르겠다. 대신 내가 배운 것 중 한 가지라도 해보자. 해보고 해봤다고 한번은 말해보자. 


무언가 배우는 건 결국엔 각자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어떤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배우기만 해서 행복한 삶은 거의 없다. 우리네의 삶은 제법 치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것을 우리의 치열함 속에 가져올 수 있다면 조금은 삭힐 수 있을 것이다. 윤택하게 할 것이다. 나의 행동이라는 오일 한 방울이 빡빡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원활히 돌아가게 할 것이다. 


행동하지 않은 지식은 충전되지 않고 매뉴얼만 있는 핸드폰과 같다. 켜지지 않은 폰은 의미가 없다. 매뉴얼을 보는 이유는 핸드폰을 목적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니깐. 사용하기 위해 충전하듯 행복하기 위해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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