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 <인문학 습관> 에 나온 '적성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21일간 진행된다. 그 시간 동안 내 적성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 적성을 알기 위해 '나'를 알아야 했고 21일 정도면 나에 대해 집중해볼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냥 내 어렸을 적을 생각하는 이야기라 명확한 주제는 없습니다.
마이북 프로젝트 두 번째 시간
"마이북 프로젝트" 21일의 목표는 '나를 알아 내가 발전시킬 3가지를 찾는다'이다. 오늘의 질문은 "내가 어릴 때 무엇이 되고 싶었나"와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되기를 꿈꾸고 싶은가"이다.
어릴 때 되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해봤다. 충치가 생겨 고생하던 엄마에게 씹기만 하면 충치를 빼주는 껌을 만들어주겠단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의학이나 과학 쪽으로는 그것만 기억난다. 아빠 동문회에서 진행하던 산악회에서 아이들끼리 그림 그리기를 한 적이 있다. 내 그림이 1등을 했다. 산을 단순하게 그렸던 거로 기억난다. 흰 도화지에 초록색 산과 몇 가지 디테일을 넣어서. 그냥 1등이 아니라 현역 화가분이 이러저러한 코멘트를 다셨던 거로 기억한다. 어제도 썼듯 만화책 덕후였다. 동시에 게임 덕후였다. 어릴 때 '소닉' 덕후였는데 그것에 매료되어 A4용지에 나름의 스토리를 구상해 그린 적이 있다.
좋은 선생님들과의 만남
고등학교 때 다닌 영어학원의 선생님이 참 좋았다. 잘 가르쳐주기도 하셨지만 통하는 게 있었다. 헌터헌터를 좋아했고 뮤즈를 좋아했다. B급 영화를 추천해주셔서 그쪽에 눈뜨게 해주기도 했고. 마이파이(My-Fi) 음악 생활을 시작하게도 해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떠나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퍽퍽한 남자 고등학생의 마음이 울컥해 먹먹할 만큼의 사이였다. 이래저래 다시 뵙고 싶었지만 다시 뵐 수 없었다. 이젠 성함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고3 시절 그 선생님을 찾으려고 나름 검색해봤다. 찾지 못했다. 그 당시엔 PMP에 인강을 담아 공부하는 모습이 흔했다. 친구 PMP를 빌려 친구 강의를 청강하던 중 그 선생님을 봤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똑같은 얼굴이란 생각에 강의를 들었는데 빠져들었다. 진짜 확.
그분의 성함은 '서정민' 선생님이었다. 정치와 경제를 들었고 고3 추석 특강도 들으러 가며 열혈 학생이었다. 그러다 인터넷 사이트에 질문 글을 올렸는데 방송을 찍다가 내 질문을 칭찬하셨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글이고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문제에 살짝 오류가 있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물어본 거로 기억한다. 기억이 오래되어 원 글을 찾아낼 수가 없다. 글쓰기를 시작하게 한두 칭찬 중 하나를 받은 때였다.
내가 사는 곳 근처 학원에 특강이 있어 듣고 어쩌다 상담까지 하게 됐다. 충격적이었다. 진짜 모든 게 박살 난다는 느낌이었다. 꿰뚫려 내 본질이 파악된 느낌이었다. 기억나는 말은 이거다. '넌 너무 모범생이야, 수업 한 번도 빠진 적 없고 늦은 적도 없고 항상 맨 앞에 앉아 있지, 가끔 날이 좋으면 빠지기도 하고 뒤에 앉아 보기도 해야 하는데 너는 너무 바른 학생이야' 그리고 영어 등에 관련한 인사이트를 던져 주시고 가셨다. 상담 후 나는 전율을 겪었고 몸이 떨리는 흥분을 담은 채 머리에 샘솟는 생각들을 막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 말들의 가치를 잘 몰랐다. 대학교 들어가서 맘껏 빠져 보기도 했지만 그건 대부분 나태함과 회피에서 온 일탈이었다. 내가 정말 할 일이 있어서나 빠지고 싶어서라기보단 가기 싫어서란 마음이었으니깐. 이제는 그 말을 알 것 같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고 바른 무언가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내 인생의 자유로움에 대해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대학을 안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으니..
그 만남 전후로 서정민 쌤을 쫓아다니게 되었다. 다음 카페에 '민이성' 이란 서정민 쌤 카페가 있었고 거기서 공부법 등을 공유했다. 기억나는 건 이렇다. 수학은 중1-고3? 교과서를 10번씩 보면서 전체 내용을 한 권에 모아, 단권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수학의 내용의 핵심들을 적는 것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참 후에야 감이 왔는데 얼마 안 가 수능이었다.
영어는 중1-고3 교과서에 있는 지문들을 20번씩 소리 내어 읽는 법이었다. 지금 보면 놀랍게도 여러 곳에서 검증된 방법이란 것이다. 이 덕을 많이 보았단 생각을 한다. 요새 다시 이 방법을 일부 사용하고 있다. 국어는 '국어사랑' 이란 모토로 좋아하는 책 읽듯 읽으면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당시에 언어 영역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서 별로 기억에 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방법을 활용하면서 공부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배웠고 20살이 되어서 재수하는 친구나 공부하는 동생들에게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진짜 뜨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공부하면 안 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아마도 그때부터 무언가 좋은 게 있으면 가르쳐주려는 성향이 발현된 것 같다. 선생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가르쳐주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되고 싶었던 것 중 더 기억나는 건 아직 없다. 별다른 야망 없이 자랐나 보다.
노는 게 최고인 것 같다. 공부에든 건강에든 성장에든 성숙에든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되기를 꿈꿀까? 디테일한 전제가 없는 거로 봐서 내 편한 대로 하면 될 것 같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어렸을 때 계속 놀긴 했지만 더 잘 놀길 바랐을 것 같다. 그냥 게임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찾아서. 다양하게 놀면서 다른 적성들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경험상 중학교 때까지 죽도록 놀아도 됐을 것 같다. 골방 폐인 같은 것 말고, 사람들이 봐도 진짜 잘 놀았다 싶은. 딱 그게 뭔지 정의 내리긴 어렵지만.
다양한 활동의 경험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잘하는지 아는 데에 최고의 선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초중고대 생활을 보내면 생각할 수 있는 넓이가 좁다. 보고 듣고 접해본 게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해본 만큼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니 가능한 사방팔방으로 열심히 놀기를 바랄 것이다.
오늘을 볼 때 딱히 일관적인 건 없어 보인다. 지금 글쓰기에 대한 내 마음의 단초와 가르침에 대한 마음의 시작점을 오랜만에 생각해본 것으로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