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Nov 04. 2015

꼼수 보단 정수

글의 단초는 <새벽 세시의 공대생의  블로그>에서 얻었습니다.


엉킨 이어폰을 빨리 푸는 법은 무엇일까? 지금 쓰는 이어폰은 그런 일이 없다. 인터넷에서 보고 배운 이어폰 감는 법을 배운 뒤로는. 그리고 이어폰 케이스를 준비한 뒤에는 더욱. 그전에는 대개 돌돌 말아서 주머니나 가방에 넣었다. 그러다 다시 꺼내게 되면 어느새 꼬인 이어폰을 만나게 된다.


이 이어폰을 풀려고 후다닥 풀려고 하면 안 풀린다. 처음에 말 땐 돌돌 말았으니 그냥 휙휙 풀면 될 것 같은데 안 된다. 얇은 선들이 급한 내 손에 맞춰 점점 더 꼬여간다. 그러다 힘이 들어가면 이곳저곳에서 매듭 같은 게 지어진다. 결국은 숨 크게 한 번 쉬고 천천히 풀어야 한다. 결국 그렇게 풀어야 했다.


오늘 포도를 먹었다. 진짜 달아서 한 송이를 금방 먹었다. 먹고 남은 껍질을 그릇에 담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버리려 했다. 손에 묻히기 싫어서 그릇을 휘둘러 껍질을 떨어뜨리려 했다. 웬 걸. 전부 봉투 밖으로 떨어졌다. 결국 다 손으로 집어 봉투를 잡고 넣어야 했다. 결국 그래야 했다.


그렇게 할 일은 먼저 그렇게 하자, 나중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때 하지 말고


결국 그렇게 해야 했을 일들이다. 바르게 갔다면 바로 도착할 것을 괜히 빠르게 가려고 지름길을 찾다가 더 멀리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최근 영어 공부를 하면서 또 배웠다. 학원에서 알려준 공부법을 그대로 하려 했다. 어느새 그냥 겉만 훑는 식으로 하는 나를 보았다. 그러면서 '이만큼  공부했으니 실력이  늘겠지?'라는 막연하고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이런 식으론 늘 리가 없다는 것을. 그때 쓴 글이 <학습의 비밀>이다. 이제라도 꾸준히 정석적으로 하고 있다. 이젠 당연히 늘 것이란 확신이 있다.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은 이렇게 대개 정수, 정직함을 요구할 때가 있다. 그게 명확한 쪽이 연습이 필요한 분야이다. 프로의 세계는 항상 엄청난 연습량을 요구한다. 프로라고 예외는 없다. 프로이기에 예외는 없다. 최근 윤디리 라는 피아니스트가 실수해 연주가 중단된 일이 있다. 그에 대해 많은 사람이 그를 규탄했다. 프로로서 해야 할 준비, 곧 연습이 하나도 안 되어있다는 것을(물론 그 이전과 그 외에 태도에 대해서도 말이 있지만). 프로도 연습이 안 되면 프로답지 못한 것이다. 프로가 프로로 살 길은 그에게 요구되는 연습을 하는 정수를 두는 것밖에 없다.


묘수는 정수를 제대로 둘 수 있는 사람이 두는 것이다


이처럼 삶에선 느리게 보이지만 정수로 가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때가 많다. 묘수는 정수를 온전히 다룰 수 있는 이들이 쓰는 것이다. 정수를 못 다루는 이들이 쓰는 묘수를 꼼수라 부른다(또는 얍샙이). 간혹  한두 번 통할 때가 있지만 그건 보통 '뽀록'이라고 한다. 삶에서 뽀록은 요행일 뿐 계속 바랄 수는 없다. 우린 결국 정수를 다룰 정석적인 부분이 필요하다. '빠르게' 가려다 샛길로 빠질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건 가야할 곳에 도착하는 것이다. 필요한 건 들어가는 순서와 빠른 속도가 아니라 바른 방향과 버틸 체력이다. 대개 내가 먼저라는 경쟁심에 휩싸여 정수를 포기하게 된다. 가야할 곳에 도달할 실력과 체력을 갖출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빠르게 도착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해야 할 일이라면 묘수 찾지 말고 정수로 풀어 가자. 괜한 묘수를 쓴다고 어설프게 꼼수를 부리면 꼬임만 가중될 뿐이다. 먼저 정수를 둘 실력을 꾸준히 쌓아두자. 그러면 적절할 때 묘수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가는 것도 체력이다. 잠깐 뛰고 방전될 거면 뛸 이유가 없다. 필요할 때 뛸 체력은 꾸준함에서 온다. 그러니 결국은 정직히, 꾸준히라는 당연한 이야기가 남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가 내 삶에 당연한 게 될 때까지 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많이 팔 방법 이전에 잘 만들 방법을 구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