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 <인문학 습관> 에 나온 '적성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21일간 진행된다. 그 시간 동안 내 적성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 적성을 알기 위해 '나'를 알아야 했고 21일 정도면 나에 대해 집중해볼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냥 내 어렸을 적을 생각하는 이야기라 명확한 주제는 없습니다.
마이북 프로젝트 네 번째 시간
"마이북 프로젝트" 21일의 목표는 '나를 알아 내가 발전시킬 3가지를 찾는다'이다.
오늘의 질문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어린 시절 행동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이다. 사실 어린 시절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곤혹스럽다. 그리고 요즘엔 지금의 내 모습의 이유를 어린 시절을 보고 찾는 것에 약간 반감이 있다. <미움받을 용기> 이후 프로이트의 트라우마로 대표되는 '원인론'보다 '목적론'의 입장에 마음이 쏠린 이후로 그렇다.
이유 없으면 안 움직이는 성향
하루 종일 내 어린 시절만 생각하기엔 바쁘고, 위에 말했듯 그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를 주어서 질문을 잠시 생각했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나는 뚜렷한 'Why' 다시 말해 나의 신념 또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초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면서 뚜렷한 Why가 있던 적은 잘 없다. 대부분은 게임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 사람인데 Why 있어 살지 않으니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했다. 그냥 흘러가듯 끌려가듯 살았다. 누군가 무엇을 좋아하느냐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무언가 답답함을 느꼈지만 원래 그 나이 때는 그런 거라며 넘어갔다.
이유를 못 찾으니 멈춰있는 상황
넘어가고 넘어갈수록 나이는 들어갔다. 어느덧 20대 중반이 되자 넘어가기도, 넘기기도 어려워졌다. 갈수록 넘기기 버거워졌다. 해결해야 했다. 나를 마주하고 앉아 나를 알아가야 했다. 처음에도 내가 Why 없이 안 움직인다는 건 잘 몰랐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How에 대해 알았다.
처음엔 How에 집중했다. 동기 부여되지 않았고 목적도 없었지만 그냥 했다. 예를 들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자체에 집중했다. 할수록 공허했다. 네이버 블로그도 했지만 자꾸 맞지 않았다. 네이버 블로그의 태생적인 느낌과 결이 내게 딱히 맞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많이 와주고 회자될 때면 한두 번씩 글을 올릴까도 생각하긴 하지만.
이유를 발견하고 천천히 걸어가는 지금
지금 당장엔 여기서 글을 쓰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뭐랄까 딱 맞는다. 처음부터 그랬다. 무심결에 둘러본 집이었는데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것처럼 아늑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일종의 다시 태어남을 경험했다. 내게 딱 맞는 곳에서 매일 꾸준히 쓰고 싶은 글을 적었다. 그러다 조금씩 사람들이 와주기 시작했다. 고마운 일이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와준다고 내게 경제적 이익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여기에서 꾸준히 글을 쓰는 그 자체가 내게 'Why'를 준다는 것이다. 명문화된 신념은 아니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마치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있는 자력이 나를 끌어당기듯 여기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쓰다 보면 언젠가 어떤 길들로 연결될 거란 근거 없는 확신이 있다. 사실 처음엔 브런치북이 그런 길 중 하나일 거로 생각했지만, 김칫국을 시원하게 마셨다. 그래도 상관없이 글을 쓴다. 어쩔 땐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 날보다 턱없이 적게 오기도 한다. 그래도 그냥 쓴다.
내가 쓰고 싶은 글들,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아내고 싶어서 찾은 곳이다. 내게 딱 맞는 곳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그걸로 작고도 큰 Why가 채워졌다.
나에 대해 예민하자, 나의 정보를 수집하자, 나에 대해 기억하자
어릴 때의 어떤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영향을 받았겠지만 그것이 꼭 결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어떤 것에 예민한지 이고 그것을 찾는 데에 과거는 작은 실마리일 뿐이다. 물론 가능한 많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뚜렷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겠지만. 나는 과거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대신 지금의 나에 대해 잘 알아가고 있으니 충분하다.
어찌 됐든, 나에게 관심을 두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고 싶어 하는 것에 예민하자. 설령 그게 전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될지 모른다. 분명 실체는 있는 거지만. 그럴 수 있기에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자신의 감각에 민감해져야 자신이 정말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있게 된다. 나의 적성을 알려면 어쨌든 나를 알아야 한다. 그 외에 방법이 없다. 그러니 대화를 하든, 일기를 쓰든, 주위에서 묻든 과거를 생각해보든, 지금을 살펴보든 나를 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