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그것과 같았다
이 글은 책 <인문학 습관> 에 나온 '적성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21일간 진행된다. 그 시간 동안 내 적성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 적성을 알기 위해 '나'를 알아야 했고 21일 정도면 나에 대해 집중해볼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냥 내 어렸을 적을 생각하는 이야기라 명확한 주제는 없습니다.
마이북 프로젝트 다섯 번째 시간
"마이북 프로젝트" 21일의 목표는 '나를 알아 내가 발전시킬 3가지를 찾는다'이다.
오늘의 질문은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만화 영화 주인공 또는 연예인"이다.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만화 캐릭터와 영화 주인공은 없었다. 무난하게 좋아한 캐릭터들은 많았지만. 연예인보단 가수라 부르는 게 맞는 '김동률'(률옹 혹은 률형)이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이이다.
률덕의 역사
고등학교 무렵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 당시 호감 있던 분이 김동률 노래를 좋아한다 해서 들어보았다. 그전까지는 특정한 누군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사랑은 아닌 사람도 자발적으로 따라 하고, 닮아가게 한다. 처음 들은 곡은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였다. 그다지 귀에 감기지 않았다. 그냥 좋아한다니깐 좋아해 보려고 들었다. 그러다 '이제서야'라는 곡을 들었고 그때부터 빠져들기 시작했다.
전 앨범, 전 곡을 계속 듣기 시작했다. 특정 곡을 듣는 건 드물었다. 주로 앨범 통째로 들었다. 그런 중에서 특정 곡을 듣는다면 2004 초대 콘서트 앨범에 있는 '동반자'를 과장 조금 보태서 1,000번은 들었다. 2008 콘서트를 제외하곤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콘서트엔 다 갔다. 베란다 프로젝트 콘서트까지 포함해서. 김동률 콘서트 말고 가는 콘서트는 없다. 내게 률형 콘서트는 예외 없이, 고민 없이 지르고 가는 곳이다. 음반 씨디도 콘서트와 같다.
왜 그렇게 좋아할까? 좋아하게 됐을까? 하나는 감정이다. 률형의 감정선과 내 감정선의 결이 잘 맞는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리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음악이다. 률형을 통해 음악을 알게 됐다. 이전에 나는 노래 듣기는 좋아해도 음악엔 관심 없었다. 어려운 분야였다. 그러다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됐다. 재즈와 탱고, 오케스트라와 발라드 등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콘서트를 가게 되면서 악기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됐고, 덕심이 폭발할 때는 콘서트 풀스코어를 수소문해 사기도 했다. 그의 감성이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모든 것이 내게 헤어 나올 수 없는 바다와 같았다.
여기까지는 평소에도 생각한 바였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왜 김동률이란 가수를 그렇게 좋아할까? 라는 걸 다시 생각해보니 생각지 못한 한 가지가 떠올랐다.
제가 늘 10년 동안 여러분들이 주신 펜레터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제 노래가 제가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정말 우연히 어떤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정말 힘이 드실 때
그럴 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된다라는
그런 내용의 글을 볼 때 정말 뿌듯하고
제가 이런 직업을 가진 게 감사하거든요.
<2004 초대 콘서트 라이브 앨범 '하늘 높이' 중>
그의 감사와 나의 감사가 같음을 알았다
그의 마음을 그의 노래를 통해 이어받은 것이다. 그가 노래를 만들어 부른 후 느낀 그 감정을 나는 글을 지어 올린 후 느낀 것이다. 그렇게 통한 것이다. 대화해본 적 없지만, 그의 노래와 가끔 올리는 글과 콘서트에서 한 말들을 통해서 통한다는 걸 안 것이다.
오늘 브런치 작가 중 몇몇 분들을 초대한 시사회에 다녀왔다. 나는 여기서 따로 구독하질 않고 있어서 아는 작가분이 없었다. 그런데 내 작가명을 말할 기회가 있었고 순서가 다 끝난 후 내게 와서 인사를 해주신 분들이 있었다. 자기는 내 글을 보고 있었고, 지인들도 구독하고 있었다고. 진짜 깜짝 놀랐다. 사실 거기 있는 분들 모두 나보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이기에 그냥 습작인 내 글을 읽을 것 같지 않았다.
내 글을 읽어주는 분을 실제로 마주하는 경험은 짧지만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런 사람이 실존한다는 걸 진짜로 피부에 와 닿게 느낀 것이다. 내가 처음 인사할 때 든 생각은 '와 진짜로 나를 아는 사람이 있구나'였다.
나의 글이 그럴 수 있다면
지금 쓰고 있는 글들 그리고 앞으로 쓸 글들이 위에 있는 률형의 고백과 같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내가 꼭 그런 걸 의도하지 않고 썼는데, 가끔 구독하시는 분들이 내 글에서 힘을 얻고, 새로운 시작을 할 힘을 얻는다는 댓글을 받으면 신비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 글을 보고 좋게 받아들이고 결단한 것은 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냥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는 글에서 실마리를 얻고 작은 빛을 얻어내는 건 자신이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글이 어떤 작은 계기가 됐기에 내게 감사를 표하신다.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그가 쓴 글 하나에 최소한 오늘 하루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단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일이 있다는 게 일상에서 찾기 어려운 독특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내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하고, 낙관적인 마음을 품고, 힘들 땐 위로를 얻고, 어려울 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참 감사할 것이다. 지금은 '글'이지만 나를 통해 사람들이 한 걸음 내딛으며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나는 좋은 정보들을 수집해서 알려주길 좋아했고, 모임을 만들었으며 좋은 습관들을 함께 만들어 보길 좋아했다. 만날 수 있다면 말로 동기 부여와 다른 생각을 해볼 기회를 주려 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누군가의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이 움직이는 '눈빛'을 볼 때면 희열을 느낀다.
황송함과 희열 사이에서 힘을 얻는다
나 때문에 달라진 게 아니다. 나는 그저 계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가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의 순간에 있는 건 영광이다. 마치 이것과 같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무명한 사람이 대단한 이가 되어 훗날 회고할 때 이때가 시작점이었으며 역사적인 날이었다고 말할 때 '내가 거기 있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바뀐다는 건 무에서 유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처럼 흔치 않은 일이다. 그 순간에 내가 있었고 내가 계기가 됐다는 건 말할 것도 없이 황송한 일이다.
내게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동률 형의 노래. 노래를 통해 여러 위로와 영향을 받는 이들을 보며 감사함을 얻는 동률 형. 누군가에게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하게 하는 글, 그리고 위로와 영향을 받은 이들의 반응에 감사함을 느끼는 나.
가로등을 짚어가며 불빛을 벗 삼아
천천히 걸어갈 수 있어 좋다
이렇게 통하는 지점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언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잘할 길이 이전엔 짙은 안개로 뒤덮였는데 이젠 걷히고 있다. 갈 곳이 어딘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브런치'라는 가로등의 불이 켜지고 난 후 일어난 일이다.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가로등을 짚어가며 가로등 불빛을 벗 삼아 목적지까지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