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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Nov 25. 2015

<어른으로 산다는 것>을 읽고

한줄평 : 프로이트와 아들러 사이에 현장의 관록이 녹은 어른 이야기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으로 먼저 저자를 알았다. 그러다 아는 분의 강력 추천으로 읽게 됐다. 먼저 읽은 책이랑 하는 이야기가 비슷하다고 느낀 건 내용 탓인지 어조 탓인지 모르겠다.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먼저 읽었을 땐 아들러를 몰랐을 때였다. 그리고 이번엔 아들러를 알고 읽었다. 그 차이가 제법 있었다. 아들러를 읽으면서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대한 그의 의견에 동의하게 됐다. 뭐든 이유를 과거에 있던 일로 돌리는 것 같았다. 중요한 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 해도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직 개운히 사라지지 않은 생각이 있다. 아들러 심리학 또한 과거의 일이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는데 어느 정도로 본다는 것일까? 누군가에겐 정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학습된 무기력이 반복된 이에게 '용기'라는 말을 쓴다는 게 너무도 잔인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들.


저자는 프로이트 심리학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마도 그의 심리학 이론의 바탕이 그쪽일 것 같다. 그럼에도 책을 읽다 보면 프로이트 심리학보단 아들러 심리학에 가까운 내용도 많이 보인다. 


"지금 그렇게 걱정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방에 앉아서 걱정만 하세요. 그러나 걱정한다고 문제가 달라지지 않느나면, 오히려 당신만 더 힘들어진다면 그 문제는 놓아 버리세요. 그리고 지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하세요."


이  부분뿐만 아니라 자주 있다. 주로 과거에 있던 일들의 영향을 인정한 채 그래도 지금 나아가는 걸 선택하란 이야기다. 그래서 한줄평을 프로이트와 아들러 사이라 적었다. 아마도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정리된 내용일 것이다. 두 심리학자의 이론만으론 모든 게 설명될 수 없기에.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로부터 파생되며, 그것은 미래를 결정짓는다. 그렇기에 나와 현재와 미래는 내가 지나온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 받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고통이 지금의 나를 지배하게 된다. 아니, 그 고통은 나의 미래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어야 하는데 떠올리기 싫은 과거가 주인이 되어 버리는 꼴이다. 그때도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과거의 일 때문에 힘들어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원인론'을 부정한다 해도 현장에선 부인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심리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정말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일을 겪어왔을 수 있으니깐. 저자는 이 과거의 영향을 확실히 인정한다. 내담자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기 위해 과거의 일들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거의 일을 잊기를 촉구한다. 어린 시절에 일에 머물러 있으면 내 안에 그 시절  어린아이가 있게 된다. 그 일들을 이겨내야 내 안에  어린아이들이 어른이 된다. 



세상에는 무수한 종류의 어른이 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방식을 유지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어른은 별다른 게 아니다. 어른이란 제 인생의 짐을 제가 들고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직 힘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사회가 그 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나 스스로 그 짐을 들어야 한다. 그 짐은 무겁고 힘들지만 좋은 점도 참 많다. 부모님이 내 짐을 들어 줄 때는 싫든 좋든 부모님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 짐을 내가 드는 순간, 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내 짐을 내가 들고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인생길을 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아마도 그것이 나잇값의 대가로 얻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내 인생에 갈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을 때 어른이다. 그 선택의 자유를 얻기 위해 내 짐을 내가 들겠다는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어른이다. 그렇기에 어른이 된다는 건 꼭 나이와 관계있진 않다. 언제든 자기 인생의 짐을 지고 가겠다고 결정하고 책임진다면 어른이니깐. 


나의 인생은 나의 인생이며 부모님의 인생은 부모님의 인생이다. 같은 방향이지만 엄연히 다른 길에 있다. 어릴 때처럼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계속 내 길과 부모님의 길이 포개어져 있다면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어른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포개어진 길에서 벗어나자. 평행으로 서 같이 걸어갈 수도 있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다. 다만 내 삶과 타인의 삶에서의 '분리'이다. 이는 아들러의 이야기다. 


아마도 이론으로선 각자 심리학자의 이론이 뚜렷하게 구별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둘 다의 말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적용될 일이 많을 것이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중간 지점. 타협점이라고 하기엔 치열하다. 그래서 '관록'이라고 표현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어른에 관해 이야기하며 어른으로 산다는 게 무엇일지 이야기한 책이다. 동시에 시대가 '어른'의 나이라고 하는 세월을 지나는 한 개인의 이야기다. 고압적이지 않다. 들어보고 싶다. 동의 안 될 내용이 나와 넘어가도 괜찮다고 할 것 같다. 눈에 띄거나 강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포근하며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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