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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Dec 01. 2015

<나를, 의심한다>를 읽고

한줄평 : 나를, 보는 느낌이 드는 책

불혹, 마흔을 이르는 말,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라고 사전들은 설명하고 있었지만, 나는 자꾸만 혹 자에 눈이 갔다. 미혹할 혹, 의심할 혹.

마흔이 된다는 것은 혹,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된다는 뜻은 아닐까. 40년을 살았으니, 이제 나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나이. 그래서 더 이상 나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게 되는 나이. 그러니 더, 조심해야 하는 나이. 

나는 그런 어른들이 더 무서웠다. 나를 의심하지 않는 어른. 거짓이나 틀린 말을 하는 어른들보다도, 내가 지금 거짓이나 틀린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자신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없는 어른들이 백배는 더 무서웠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100% 진실이며,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100% 옳은 것이라는 확신으로 더 이상 나에 대한 의심도, 세상에 대한 의심도 하지 않는 어른들이 나는 참 무섭고 또 신기했다.

...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을 멈추는 순간,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의심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이 나와 맞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더 나아가 이 저자가 나랑 통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심지어는 내가 쓴 글, 나의 책인 것 같을 때가 있다. 내겐 '강세형' 저자가 그러하다. 똑 닮진 않았지만 문체가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장 비슷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감성'이다. 작년 김동률 6집 앨범이 나왔을 때 전 앨범 곡마다 글을 붙여 내레이션을 입힌 적이 있다. 


김동률, <그 노래>


놀랍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동률의 음악에 맞게 글을 쓴 이가 강세형 씨였다. 글과 음악은 최고의 재료로 버무려져 각각의 맛이 살면서 또 조화롭게 새로운 한 맛을 내는 비빔밥 같았다. 음악과 글에 있어 감성의 결이 맞다고 생각한 둘의 콜라보를 들을 때 그 둘 사이에 내가 무언가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다른 성별, 다른 나이에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면 이런 느낌의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할 정도. 글이 착착 감긴다. 도리어 너무 착 감긴 나머지, 내가 쓴 글에 내가 그다지 감흥을 못 받듯 너무 수월하게 읽어 나갔다. 별다른 비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구나, 그렇지, 그렇네'라며 읽게 됐다.


사랑, 연애, 시간, 추억, 가족, 일, 사건, 여행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감정이 에세이 형식으로 때론 소설 형식으로 쓰였다. 어떤 편에서는 도무지 현실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꼭 그런 일이 하나쯤은 있을 것 같기도 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글을 읽으면서 몽롱하게 현실과 환상을 이리저리 오가는 무척 기묘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겨진 문장 몇 구절을 발췌한다. 문장들이 마음에 무언가 말하는 것 같다면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이런 에세이 류는 전하는 내용보다 전하는 방식이 맞아야 하니깐.




정말 없었다. 벌써 몇 해 전에 샀던 옷이라 똑같은 디자인의 야상은 당연히 없었고,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어 봐도 이건 너무 끼는 듯하고, 저건 너무 요란하고, 이건 너무 무겁고, 저건 어쩐지 불편하고. 그 적당함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와 똑같은 야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 내가 찾는 옷은 새 옷이 아니라 '그 옷'이었으니까. 똑같은 디자인의 새 야상이 아니라 몇 해를 입어 비로소 내게 적당해진 바로 '그 야상'이었으니까. 세월이 만들어 준 그 적당함은, 그 어떤 새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다시 봄이 오는 듯하니, 나는 또 일감이 한가득 쌓인 책상에 앉아 일 대신 검색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야상 어디 없나. 그와 똑같은 야상은 절대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잃어버린 순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또,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 또.

그런데 나는 그 또한 알고 있었다.
내가 또, 찾으려 하리라는 걸.
세월이 만들어 준 그 적당함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 
아니 알기에. 

나는 늘 그랬으니까. 무언가가 가장 간절해지는 순간은 언제나 그때. 사람이 가장 그리워지는 순간 또한 언제나 그때. 이제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때였으니까.


어쩌면 세상엔 100% 나쁜 것, 100% 싫은 것, 100% 좋은 것은 없을지도 모르나. 다만 내가 그를 단단히 찍어 놓고 한쪽 면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보지 않을 거야, 너의 장점 따윈 찾고 싶지 않아! 어쩌면 나는 내내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봤자 내 마음만 미워질 뿐인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함께하고 싶은 거다. 그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손을 잡고, 그 무엇이든 함께하고 싶은 것. 그와 함께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들을 만나고, 그렇게 조금씩 그의 삶과 나의 삶을 겹쳐 가는 것.


당신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나는 당신에게 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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