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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Dec 09. 2015

S01E05 삶의 한 수를 배우다

내 취미이자 특기(특별한 기쁨)는 독서다. 독서가 특별한 취미가 된 지는 이제 2년 정도 됐다. 어렸을 때부터 읽긴 했지만 그땐 매일 읽진 않았으니. 지금은 매일 50~100쪽을 읽는다. 취미로 이어지게 한 여러 계기가 있었지만  그중 세 개를 잡아 이야기하려 한다. 세 가지 모두 내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오전 7:30 분쯤 신도림을 지날 때였다. 출근길 2호선을 타 보면 알겠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면봉처럼 껴있었다. 그러다 놀라운 장면을 봤다. 어떤 중년 남성분이 손을 위로 뻗어 신문을 보고 있었다. 사람이 가득 차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는데 그는 신문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 처음엔 활짝 펴서 읽었다. 그러다 더 꽉 차게 되어서야 반으로 접고 읽었다. 그때 깨달았다. 읽고 싶으면 읽을 수 있는 거구나.


한겨울이었다. 눈이 온 후 길이 꽁꽁 얼었다. 빙판이 많아 자주 미끄러졌다. 정신을 단디 차리고 걸어도 펭귄처럼 걸어야 그나마 안전하게 갈 수 있던 때였다. 미끄러지는 걸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이때만 되면 날 선 상태로 걸어 다닌다. 평소 걸음 속도는 대부분보다 빠르지만 이땐 누구보다 느려진다. 그렇게 펭귄처럼 쭈뼛쭈뼛 걸어가는데 대단한 장면을 봤다. 그 빙판길을 그냥 걸어가면서 책을 읽고 있는 분이 있었다. 드문드문 삐끗하긴 했으나 개의치 않고 책에 집중하며 걸어갔다. 그때 또 깨달았다. 읽고자 하면 읽는 거구나.


아는 교회 전도사님을 시장에서 뵐  때였다. 토요일 저녁 전쯤이 되면 시장은 북적북적하다. 다들 천천히 걷고 갑자기 멈춰 구경하기도 해서 사람만으로도 정체된다. 그런데 전도사님은 그 와중에 책을 읽으며 그사이를 걷고 있었다. 앞에 사람이 멈추면 잠시 멈췄다가 피해서 걷고, 누군가 지나가면 또 멈췄다가 책에서 눈을 들어 확인 후에 다시 책을 보며 걸어갔다.  그분을 아는 이들이  그분을 말할 때 한결같이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 했는데 딱 봐도 알겠더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아우라부터가 뭔가 다르구나.


그리고 최근 이야기다. 지금 다니는 학원 건물 앞엔 항상 담배 피우는 분들이 있다. 아마도 식당에 일하시는 분들로 추측된다. 평소에는 그냥 담배 피우는구나 하고 지나갔는데 최근 한 장면을 봤다. 오늘은 날이 풀렸지만 얼마 전 날이 엄청나게 추울 때가 있었다. 패딩을 입어야 그나마 버틸 만한 날이었다. 그 추운 날씨에 밖에서 담배 피우는 것도 비흡연자가 보기엔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면서 책을 읽는 분이 있었다. 심지어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내가 잠시 학원을 들르러 올라가면서 보고 다시 내려올 때도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마 5분은 넘게 있었을 테다. 나는 결코 그렇게까지 읽을 마음이 없다. 그렇게까지 열정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몰입'이 만드는 경이로움


정말 어떤 취미에 '몰입'하는 모습이 주는 경이로움은 볼 때마다 신선하다. 내가 갈 길이 아직 멀었음을 느낀다. 독서가 취미라고 생각하고 평균보다 많이 읽는다 생각하지만, 더 빠져들 여지가 많이 남았음을 느낀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바쁜 와중에 또는 어떤 상황에도 삶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어떤 취미든 몰입한 이들을 좋아한다. 나는 오타쿠라 불리는 이들을 볼 때마다 놀란다. 그 모습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또는 일렁이는 불빛을 본다. 열정이라 할 수 있고 애정이라 할 수도 있다. 둘 다일지도. 그렇게 삶을 뜨겁게 살고 싶다. 내 삶에 어떤 부분을 혹은 전 부분을 그렇게 뜨겁게 만끽하고 싶다.  취미에 깊게 빠진 이들을 보며 삶을 한 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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