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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Dec 19. 2015

S01E08 서비스에 대하여

같은 음료, 다른 응대


최근 공차를 두 번 방문했다. 같은 음료를 시켰다. 다른 반응을 보았다. 사소한 차이였지만 배울 게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킨 음료는 "펄을 추가한 따뜻한 얼그레이 밀크티"였다. 공차는 음료가 곧장 나온다. 첫 번째로 시켰을 때 직원분이 '빨대 꽂아드릴까요?'라는 말을 했다. 아마스빈이란 밀크티 전문점도 그렇지만 여기는 빨대를 꽂아드리냐고 물어본다. 날이 추워지기 전엔 주로 차갑게 먹었다. 차갑게 먹으면 음료컵 위에 비닐을 씌워둔다. 그걸 뚫기 위해 빨대 끝이 요구르트 꽂아 먹는 빨대처럼 밑이 뾰족하다. 


마침 내 눈앞에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에 주로 챙겨가는 스터가 있었다. 따뜻한 음료는 특성상 비닐 대신 일반 커피 음료처럼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여 있다. 빨대를 굳이 꽂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스터를 넣어주는 줄 알았다. 그래서 괜찮다고 말하고 나왔다. 뜨거우면 바로 먹기 어려워 식기를 기다리며 집에 걸어갔다. 천천히 홀짝이며 반쯤 마시다 깨달았다. 내가 펄 추가를 했다는 걸. 펄은 빨대 없으면 먹을 수가 없다. 캔 음료였다면 흔들면서 먹었을 텐데 흔들 수도 없는 구조이고. 할 수 없이 집에 가져와 수저로 먹어야 했다.


오늘 다른 공차 지점에 갔다. 같은 음료를 시켰다. 이번에 빨대 꽂아주냐고 하면 알겠다고 말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직원은 다른 말을 했다. 빨대를 건네주며 이 음료는 뜨거우니까 조금 식은 다음에 빨대를 넣어 먹으라고. 컵 구멍에 빨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응대는 다른 전제에서 나온다


이 직원은 내가 시킨 음료가 뜨거우니 펄을 바로 먹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첫 번째 간 공차 직원이 잘못한 건 아니다. 원래 날이 더울 때 공차 가면 항상 듣는 말이 빨대 꽂아드릴까요 이다. 그게 정식 응대 매뉴얼일 것이다. 펄을 먹으려면 빨대가 필요하다. 물론 고객의 취향이 빨대 없이 펄을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첫 번째 직원이 잘못한 것은 없다. 하지만 더 나은 응대가 있을 수 있음을 오늘 알았다.


고객보다 먼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다. 뜨거운 음료에서 펄을 빨대로 먹으려면 식어야 한다는 걸 먼저 알려주었다. 그리고 컵의 구멍이 얼핏 보기에 빨대가 들어갈 만큼 넓어 보이지 않아서 넣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품을 것까지 생각해서 말해주었다. 첫 번째 직원분이 두 번째 직원처럼 말했다면 그땐 아마도 스터를 말한건지 아닌지 헷갈리지 않고 빨대를 챙겼을 것이다. 


직원 입장에선 정해진 매뉴얼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매뉴얼대로 하면 편하다. 별다른 사고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응대할 수 있다. 하지만 매뉴얼이 전부는 아니다. 서비스 제공자에게 중요한 건 매뉴얼이 아니라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다. 일하면서 수백 명에게 팔다 보면 으레 익숙해지게 된다. 당연히 이 음료를 먹을 땐 빨대를 꽂아 먹는 걸 알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패턴엔 이런 응대를 하면 된다가 바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단골이 아닌 이상 고객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니 매번 처음 온 것처럼, 새로운 고객인 것처럼 대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도 고객이 거절했다면 그건 고객이 책임질 일이고. 매뉴얼에 모든 고객에 대한 응대를 적어둘 순 없다. 그때그때 맞춰가야 한다.


당연히 알겠지, 자연히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건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지식의 저주'이다. 나한텐 당연하지만 고객에겐 전혀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다. 그걸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걸 놓친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있다.


최근 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한 한 족발집에 갔다. 거기는 얇게 썰린 양배추와 담가 먹을 수 있는 시큼한 식초가 기반인 양념장을 준다. 그런데 처음에 세팅해줄 때 그게 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안 알려주더라.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고 그냥 알아서 눈치껏 먹었다. 거기선 또 족발을 먹으면서 떠먹을 수 있는 국물을 버너 위에 올려준다. 그냥 두고 가더라. 우리가 켜야 하나 싶어서 켜봤는 데 불이 안 켜졌다. 가스를 바꿔주긴 했지만 일련의 과정에 다소 불친절함을 느꼈다. 무례하지 않았지만 무관심했다. 당연히 우리가 알 거라 생각한 것이다. 1년 전에 갔을 땐 하나하나 알려주던 곳이었기에 달라졌음을 알았다. 그들은 어느새 익숙해진 것이다.


맛도 맛이지만 서비스로 유명해진 그곳은 다른 곳보다 서비스가 특출 난 장점이다. 그런 장점이 그렇게 퇴색된다면 다른 족발집과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고객에게 익숙해졌듯, 고객도 그들의 무관심함에 익숙해진다면 자연히 단골이 되지 않고 당연히 발길을 끊을 것이다. 그들에겐 섬찟할 이야기다.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닐 때가 많다


사소한 배려를 하기 위해선 초심의 신선함을 유지해야 한다. 나에게 당연한 게 고객에게 당연하다고 당연히 생각하는 익숙함에 빠지면 위험 신호다. 나와 친구들은 넘어 갔지만, 누군간 물어볼 수 있다. 혹시나 어떤 고객이 더 설명을 요구한다면 내가 당연하다고 전제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 신호가 어쩌면 무너지는 서비를 건져줄 마지막 구원의 신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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