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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Dec 26. 2015

<비긴 어게인>을 보고,

지금 이 순간을 진주로 만들어주는 음악에 관하여

<비긴 어게인> 은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아내와 딸에게도 무시당하는 '댄'과 같이 올라온 연인이 바람피워 갈 곳을 잃은 '그레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영화 자체는 주제를 쉽게 전달한다. 노래와 바로 보이는 상징과 연출, 대화로. 삶의 의미를 잃었던 이들이 음악으로 다시 의미를 찾는 과정이 담겨 있다. 


<비긴 어게인>은 '음악' 영화이다. 무슨 음악인가도 중요하지만 '음악'이란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의미를 담는다. 이들이 만나 만드는 음악으로 영화와 그들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먼저는 댄의 이야기다.


댄은 신인 뮤지션을 발굴하는 기획자다. 그는 그 연주를 듣기 전부터 온종일 술에 찌들어 엉망이다. 그 상태로 자신에게 온 신인 데모 음악마다 퇴짜를 놓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노래'를 찾는다. 그에게 '회복', '재시작'을 해줄 것은 그 '노래'임을 안다.


그는 딸을 보자마자 지적하고, 딸 앞에서 회사에서 쫓겨난다. 온갖 찌질한 추태를 다 보인다. 돈이 없어 딸에게 돈을 구하다가, 돈 안 내고 도망치고 또 잡혀서 한 대 맞기까지 한다. 딸이 그 모습이 부끄러워 도망칠 때까지 찌질하게 군다. 


서로의 연주를 듣지 않는 사이,
서로가 서로에게 소음인 사이



아내인 미리암과는 만나자마자 다툰다. 둘은 갈라져서 살고 있다. 댄은 딸의 옷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리암은 아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서로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 합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조화다. 서로의 소리가 조화롭게 들려야 한다. 나올 때 나오고 빠질 때 빠지며 함께할 땐 하모니가 되게 하는 것.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볼륨을 최대로 높여 독주만 하고 듣지 않는다. 그리곤 서로가 시끄럽다고만 한다. 


둘은 서로의 연주에 독설만 할 뿐 맞추지 않게 됐다. 그는 직장도 가정도 잃어버렸다. 직장도 가정도 그를 찾지 않는다. 그를 내쫓았다. 그의 존재는 무시당했다. 그가 있을 이유가 없게 됐다. 댄에겐 모든 순간이 지겹고 버겁다. 아무도 그를 듣지 않는다. 그에겐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 



삶의 의미를 연주해야 한다



그는 엉망이 된 삶의 연주를 끝내고 튜닝을 다시 해서 연주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삶의 의미'가 담긴 음악이 필요했다. 그 음악과 그 음악을 함께 작업할 이가 필요했다. 


지하철에  뛰어내리려 했지만, 연착으로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 술도 떨어져 펍에 갔다.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게 떨어졌다. 그러다 듣게 된 그레타의 노래. 푹 빠지게 된다. 그건 정말 '그' 자체를 노래해 준 거였다. 게다가 술에 취하니 단조로운 기타 연주 뒤로 풀 세션이 하나씩 채워지는 게 들렸다. 그는 '그 노래'가 자기가 찾던 노래였음을 희미하게 직감한다. 그걸 완성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게 바로 다시 삶을 시작하게 할 노래였다. 그레타를 보며 희망이 본다.



길 잃은 둘이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제 둘이 만난다. 둘은 각자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잃었다. 댄은 사업과 가정, 그레타는 연인. 이 둘이 만났다. 하지만 시작부터 데모 제작 부탁을 거절당한다. 댄은 자신이 들은 그 음악을 자신이 만들려 한다. 


자신이 소중하다 생각한, 가진 것을 다 잃었다. 그러다 그렇게 찾던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노래'를 발견하자, 그에게 생기가 솟아난다. 협조적이지 않은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노래할 수 있다면 모든 상황이 좋다.


댄 : 생각해봤는데, 왜 우리가 스튜디오를 꼭 빌려야 하지? 
그레타 : 데스크, 라이브 룸, 방음 같은 게 필요해서요

댄 : 노트북과 마이크만 있으면 돼, 도시 전체가 라이브 룸이야
그레타 : 거리에서 녹음하자고요? 어디서요?

댄 : 어디서나, 곡마다 장소를 바꾸는 거야. 여름 동안 뉴욕 곳곳에서 녹음해 미친 듯이 아름다우면서도 엉망진창인 뉴욕에 헌정하는 거야 
그레타 : 좋아요. 갑자기 비가 오면요?

댄 :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는 거야 경찰이 체포해도 계속 부르는 거야, 이게 멋진 거야


친구들과 사람들이 모여 첫 곡을 녹음한다. 그들의 음악이 시작된다. 그들의 삶을 살려줄 연주가 시작된다. 



화해의 합주를 하다


녹음이 시작되고, 그레타와 바이올렛이 만났다. 단번에 그레타는 바이올렛의 마음을 얻었다. 같이 연주할 것을 제안한다. 부녀지간의 문제를 안 것이다. 화해의 '합주'를 제안한다. 바이올렛은 노래 대신 기타로 합류하기로 한다. 


이제 녹음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지하철에서, 배 위에서, 사원에서 자기들이 말했던 모든 곳에서. 그리고 이제 딸과 함께하는 녹음 날이 왔다. 미리암도 왔다. 그레타는 댄을 잘 안다. 베이스 기타를 쳤다는 걸 안다. 부녀의 협연까지 하게 해준다. 연주가 무르익고, 계속 연주하는 걸 빼던 바이올렛이 그레타의 턱짓에 용기 내어 기타를 집어 든다. 처음에 서툴러 보이지만 이내 감을 잡고 균형을 잡는다. 바이올렛이 하이라이트에서 곡을 리드하면서 무대를 이끌어간다. 댄과 바이올렛이 서로 보며 연주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둘의 회복을 보여준다. 


댄과 미리암은 딸이 연주를 정말 못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 딸을 듣지 않았으니까.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거다. 듣게 되자마자 알았다. 기타를 잘 친다는 걸. 기타 연주를 보여주지 않은 건 마음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레타와 음악이 매개가 되어 사실 난 이런 아이라고 연주로 알려준다. 그제야 부모는 딸을 '알게 된다'. 딸은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옷차림을 혼낼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이야기 들어줄 사랑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딸과 가까워지면서 댄도 개인적인 회복을 결심한다. 술 중독자처럼 보인 그가 축하연 자리에서 축배로 술 대신 펩시를 마신다. 그가 변화를 시작하면서 미리암도 마음이 열린다.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댄의 가족은 함께 회복을 시작한다. 가족의 합주를 시작한다. 


이제 남은 건 그레타.



그녀가 바란 건
록스타(Rock star)가 아니라 Lost star



데이브와 함께 뉴욕에 온 그레타. 데이브는 한 번에 스타가 되었다. 얼떨떨한 모습이 걷잡을 수 없는 인기에 휩쓸릴 것을 예측하게 한다. 그레타는 뒷바라지를 한다. 하지만 데이브는 변한다. 무언가 변한 그를 보면서 느끼는 게 생긴 그레타. 예전에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본다. 여기서 이 영화 OST 중 가장 유명한 'Lost star'가 등장한다. 그레타가 오직 그를 위해 만들고 연주한 곡이다. 그리고 데이브는 투어를 돌아와 투어 중 만든 노래를 들려준다. '밈'을 향한 세레나데였다. 음악으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음악으로 듣는 그레타는 단번에 그 의도를 알아챘다. 


그녀에게 음악은 언어 이상의 무언가이다. 그녀에게 음악으로 바람을 인정하고 거절당한 것은 씻을 수 없이 큰 상처이다. 


그러다 헤어진 후 데이브를 다시 만나게 됐다. 그에게 준 노래가 전혀 다른 버전으로 바뀌었다. 발라드가 팝이 돼버렸다. 원래 의도대로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데이브는 그레타와 다시 만나고 싶었고 그렇게 부르겠다고 한다. 공연으로 그레타를 초청한다. 공연 중 함께 'Lost stars' 부르기를 바라지만 그레타는 듣다가 나온다. 


그녀는 이 곡을 그녀가 의도한 대로 부르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그녀가 바라는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하며 사과하길 바란다. 그는 사과했고 그녀는 들었다. 둘의 연주는 어떻게 될까, 알 수 없지만 그녀는 회복했다. 이제 그여도 되고 아니어도 된다. 선택은 그녀가 할 수 있게 됐다. 그레타가 바란 건 빛을 받는 록스타가 아닌, Lost star였다.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며 함께 어둠을 비춰줄 이를 찾았다. 아마도 공연장에서 본 데이브는 그 두 가지 모습이 겹쳐 보였을 것이다. 희망을 보았을지 정리했을지는 그녀의 선택이겠지만 마지막 그녀의 미소에 나는 희망에 기대를 걸어본다.



 이 순간이 진주야, 음악이 이 순간을 진주로 만들어
그게 음악이야


영화는 시종일관 사람 사이에, 삶의 '음악'을 이야기한다. 함께 하는 녹음, 연주를 매개로 일상, 함께하는 일생을 말한다. 그 사소하고 평범함이 진주임을 아는 것, 음악이 알게 해준다는 것. 매일 마주하는 것의 가치를 느끼는 것. 음악이 주는 힘이다. 


영화 중반 댄과 그레타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완전히 속내를 터놓을 수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던 그레타는 이야기한다. 자신의 음악 목록으로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걸 두려워하지만 들려주고, 같이 음악을 들으며 웃고 이야기하며 춤을 춘다. 교감을 나눈다. 둘이 서로에 대해 깊이 알게 되면서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나온다.


댄 : 이래서 내가 음악을 좋아해
그레타 : 왜죠? 

댄 : 가장 따분한 순간까지도 갑자기 의미를 갖게 되니까,
이런 평범한 순간도 음악을 들을 때
바로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지
그게 음악이야. 

이 순간이 진주야
이 모든 순간들이 진주였어



나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며, 만끽하게 하는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을 들으며 댄은 깨닫게 된다.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의 삶을 빛나게 해줄 일상의 음악이었다.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음악을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낸다. 그들은 야외에서 녹음한다. 스튜디오에서 정제된 소리가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살아 있는 소리를, 따분하고 때론 시끄러운 소리까지도 담아낸다. 그 모든 게 진주이다. 삶의 평범한 그 순간 그 자체를 만끽하게 해주는 것, 사랑일 수도 있고 어떤 비전일 수도 있다. 그것이 그에겐 음악이었다. 


나의 삶을 '음악'에 빗대어 생각해보게 도와준 영화였다. 노래가 좋은 건 말할 것도 없다. 쉬운 내용, 쉬운 구성이지만 우리의 삶 또한 막상 쉬운 일들로 차있지 않던가. 흘러가듯 진행되는 영화에서 은근히 묵직한 메시지를 받는다. 그 쉬운 일이 우릴 힘들게 하고. 그 사소하고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버거운 게 아니라 아름답게 된다면, 내게 그런 '음악'이 있다면 삶은 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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