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비관주의자'가 더 무섭다
제이 라이프 스쿨 3% 커뮤니케이션 자아 문답 반, 주제 : 욱하게 되는 말
그냥 말만 들어서 욱할 말이 무엇이 있을까? 욕이야 대부분의 경우에 기분이 나쁠 것이다. 보통 사회생활에서 욕을 자주 듣진 않을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 욕을 들어서 기분 나쁘거나 어떤 말을 들어서 기분 나쁜 것도 있고, 아무래도 '태도'에 기분 나쁜 것도 클 것이다.
예의 없는 행동이나 무시하는 표정, 비교하는 어조 등 말 외에 요소들도 기분 나쁘게 한다. 고맙다는 말도 어조에 따라 생색내듯 말하면 말은 고맙다 여도 기분 나쁘게 들린다. 지금까지 말한 건 아무래도 보편적으로 다들 기분 나쁠 태도이다. 내가 다른 이들에 비해 예민한 부분은 무엇일까?
비관주의의 두 종류
나는 비관적인 태도에 예민하다. 비관적이다의 의미는 인생을 어둡게만 보아 슬퍼하거나 절망스럽게 여기거나 앞으로의 일이 잘 안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비관적인 태도라 이야기하면 보통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을 떠올린다. 맞다. 나는 그런 이들을 '적극적인' 비관주의자라 생각한다. 이들은 오히려 그냥 딱 봐도 알 수 있기에 그렇게까지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다.
소극적 비관주의, 좋은 게 좋은 거지
동시에 겉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실상은 부정적인 이들이 있다. 그들을 '소극적인' 비관주의자로 본다. 이들이 주로 보이는 태도는 '좋은 게 좋은 거지'이다. 겉으론 긍정적이니 좋아 보인다. 이들은 새로운 걸 하지 않는다.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 단순한 '보수'의 의미가 아니다. 발전을 위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꾀해야 할 때도 그냥 '귀찮아서' '나아지기 싫어서' 가만히 있기 위해 기존에 하던 걸 그냥 하자고 한다. 타성에 젖은 것이다.
타성에 그냥 젖어 있기만 하다면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굳이 변화를 꾀하는' 이들을 보면서 현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본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개선할 부분이 있다고 상세히 설명하면 으레 꼭 '~씨는 너무 비판적이야' 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이들일수록 이렇게 비판과 비난의 차이를 혼용한다.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
비난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한다는 의미고 비판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힌다는 의미다. 비난은 '나쁘게' 말한단 의미가 애초에 포함되어 있다. 비판은 일차적으론 중립적인 의미다.
재밌게도 몇몇 사람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행위를 '비난'으로 간주한다. 비판적 행위를 자신의 잘못과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한다고 여긴다. 물론 비판엔 잘못된 점을 지적한단 의미도 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태도에 따라 긍정의 표현도 부정으로 전달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판적' 태도를 나쁜 태도로 볼 수는 없다.
비판은 비관과 부정의 의미가 아니다
동시에 현실적인 낙관주의에 본질적인 요소다
친구 사이든 회사에서든 그냥 그대로만 있어 완벽한 것은 드물다. 친구 사이에도 대화하며 맞춰가는 조율의 과정이 필요하다. 회사든 모임에서든 어떤 일을 추진할 때도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며 맞춰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야 나아질 수 있기에. 세계 최고의 회사 중 하나인 '구글'이 회의 때 가장 경계하는 게 모두가 동의하는 의견이라고 한다. 구글은 갈등을 '전제'로 회의를 시작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토론은 의견을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한다는 건데 모두의 의견이 같기는 어렵다. 회의 때 모두의 의견이 같다면 극히 드문 확률로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찬성할 수밖에 없는 최상의 아이디어가 나왔거나 모두 회의를 일찍 끝내고 싶어한단 이야기다.
이때 누군가 '다른' 의견을 내어 회의를 길게 이어가게 한다면, 그는 반드시 '부정적인' 사람 혹은 '비판적인'(비난의 의미가 담긴)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하지만 회의의 본질은 의견을 말해서 최선을 찾는 것이며 이 과정에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회의는 동의를 구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니깐. 회의에서 '낙관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은 자기 의견을 내며, 상대 의견을 듣고 그것들을 수렴해 최선의 안건을 찾는 이다. '비관적인' 태도는 '적극적'으로 모든 의견에 퇴짜를 놓는 것도 있지만 '소극적'으로 아무 의견도 안 내고 가만히 있는 것도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사람들은 회의 때도 좋게좋게 넘어간다. 구글은 이런 사람을 '버블 헤드', 고개만 계속 끄덕이는 인형이라고 부른다. 구글은 생각 없이 동의만 하는 이를 회의에 부르지 않는다.
나는 이런 태도가 '비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나아질 마음이 없다. 현실적이며 낙관적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낙관적인 태도는 인생이나 사물을 밝고 희망적인 것으로 보거나 앞으로의 일 따위가 잘되어 갈 것으로 여긴다. 잘 되기 위해 지금 어떤지 파악한다. 더 키울 것과 보완할 것을 찾는다. 그게 '비판적 사고'다.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는 '낙관주의'는 이상적인 낙관주의로 몽상가일 뿐이며, 그런 '긍정주의'는 나아질 생각을 안 하는 '소극적 비관주의'와 같은 말이다.
정말 위험한 건 소극적 비관주의이다
적극적인 비관주의는 눈에 보이고 대부분 싫어하기에 그렇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극적 비관주의는 잘 안 보인다. 대개 자신을 '긍정'으로 포장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는 그들이 찾아낸 최고의 위장막이다. 지금 상황을 '좋게' 안 보는 이들을 모두 '비판적'인 사람으로 몰고가기 좋다. 그리곤 정말 낙관적인 사람이 욕먹게 하여, 가만히 바라보며 현상을 유지하며 있을 수 있다. 이런 존재들이 사실 공동체에 가장 큰 위협이다.
나도 사실상 소극적 비관주의일 때가 많다
이는 좁게 보면 나에게도 해당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는 내 안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편한 게 좋은 거지', '지금 쉬는 게 좋은 거지', '내일 하는 게 좋은 거지' 등등. 수많은 그럴듯한 좋은 핑계들이 나를 설득한다. 또 설득당한다. 계속 설득당할수록 나는 나아질 수 없다. 그냥 계속 안주하고 안주할 뿐이다. 나태함은 굉장한 중독성이 있다.
그럴 때 '이럴 때가 아니다'라는 찬물 끼얹는 생각이 등장해야만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입장에선 정말 '부정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이 생각이야말로 '현실적'인 동시에 '낙관적'이다. 이럴 때가 아니라, 할 게 있고, 할 것을 해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깐.
그래도 현실적 낙관주의를 택해보려 한다
소극적인 비관주의자의 '긍정적'인 말에 속지 말자. 그들은 능숙한 사기꾼과 같다. 그 말을 듣기만 하면 편해질 것 같다. 실제로 편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약처럼 당장엔 편하지만 나 자신과 공동체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며 갉아먹는다. '현실적 낙관주의자'들의 말은 따르기 귀찮다. 하지만 내가 나아갈 방법은 그 말을 듣는 것뿐이다. 그냥 안주하고 싶다면 좋은 게 좋은 그 길로 가고, 나아가고 싶다면 정말로 나아가야 할 길로 가면 된다. 누구의 말을 듣고 따를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