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라이프 스쿨 3% 커뮤니케이션 자아 문답 반, 주제 : 인생의 멘토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멘토'는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조언과 도움을 베풀어 주는 유경험자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실존하는 사람으로 내게 '오랜 기간'에 걸쳐 '조언과 도움'을 '베풀어' 주는 '유경험자'는 부모님 외에 없다. 부모님에 대한 헌사는 아래 글에 담았기에 다른 두 '멘토'를 생각해봤다.
책, 한없이 이상적이고 수없이 많은 멘토
꼭 사람 그 자체가 아니어도 멘토의 역할을 해준 것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 '책'이다. 책은 멘토와 다름없을 때가 많다. 책이니 쭉 보관할 수도 있고, 예전에 나온 책들로도 만날 수 있다. '오랜 기간'은 고전들로도 충분히 충족한다. 책의 내용은 저자 생각의 정수가 담겨 있다. 그들은 먼저 그들이 할 말을 하는 거지만 그들의 말에서 내가 '조언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때론 1년 혹은 10년 넘게 저자가 겪어온 일들과 배워온 것들을 영화 한두 편 가격으로 얻는다. 그 정도면 '베풀어 준 것'이라 할 만 한다. 자기가 공부하고 생각한 걸 적은 거니 당연히 '유경험자'일 테고.
책의 내용이 멘토라면 독서는 멘토링이다. 우리 평생 다 못 만날 저자가 이미 멘토로 대기 중이다. 실제로도 만나기 어려운 이들이 언제든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된다. 내가 만남 중간에 끊어도 뭐라고 하지 않고 여러 멘토를 동시에 만나도 개의치 않아 한다. 시간과 장소 또한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언어의 장벽도 없으며 그들은 그저 내가 원할 때 말한다. 이 이상의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멘토가 수없이 많다.
독서, '책'과 함께 하는 멘토링
그렇기에 독서 습관을 갖추는 건 대단히 많은 멘토와 멘토링 할 기회다. 재밌게도 이 멘토링은 멘토는 언제든 말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멘티만 들을 훈련과 준비를 하면 된다. 최근 독서를 통해 멘토링을 한 저자는 '세스 고딘'과 '사이먼 사이넥'이다. 사이먼 사이넥은 내게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서 "WHY?, 나의 신념이 무언지"를 물었고 세스 고딘은 <이카루스 이야기>와 <린치핀>에서 내게 "높이 날아서 떨어질 걱정 이전에 낮게 날아서 물에 잠길 걱정을 하라, 안주하지 말라",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돼라'고 말했다. 이 둘과 멘토링 끝에 나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기로 했다.
작년 중반 내내 일하면서 편안함을 한참 느꼈다. 그러다 불안함을 느꼈다. 이 편안함이 곧 사라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이 일은 곧 사라질 것이니 내 일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모르게 되었고 내가 뭘 잘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집에서와 사람 사이에서도 많은 문제가 생겼고 생활패턴도 엉망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망가져 간단 느낌을 계속 받았다. 그러다 위 두 멘토와 멘토링 끝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곤 해방감을 얻고 힘을 얻었다.
실패, 이 츤데레같은 멘토
그들과의 멘토링을 통해 내가 해야 할 일과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려고 했다. 처음 달콤함을 느끼며 한껏 도전자의 마음을 누렸다. 얼마 안 가 마주한 상황은 '실패'였다. 남이 바라는 욕망과 내가 바라는 욕망을 구별할 줄 몰랐다. 그냥 뭐가 됐든 욕망대로 살아가려 했다가 남의 욕망에 끌려가 지쳐버린 것이다. 좌절감을 느끼고 무력감을 느꼈다. 도대체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모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일단 쉬면서 찬찬히 자신을 돌아봤다. 집 주위를 많이 걸으며 자문자답했다. 한창 추워지기 전에 나름의 답이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돌아보니 이 실패는 츤데레 같은 멘토였다. 내가 방향도 안 정하고 막 달려갈 때나 혹은 이것저것 다 하겠다고 무리할 때나 엉뚱한 곳으로 갈 때마다 나를 넘어뜨렸다. 넘어진 내가 힘들어할 때 이 상황, 저 사람들을 보내어 보듬어주고, 바른길로 갈 수 있게 인도해주며 힘을 주었다. '실패'는 실패할 때마다 내게 아래 글감을 주고,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게 해주었다.
글쓰기와 산책,
실패의 멘토링 방법
실패란 멘토와 멘토링 할 방법은 내겐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글쓰기다.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일기를 쓸 때 나는 내 실패 경험과 마주한다. 그리고 글을 써가며 필담한다. 차분히 정리되는 글 가운데 내가 실패한 상황이 나타나고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산책이다. 내게 산책은 조용한 시간 혹은 명상의 시간과도 같다. 요새는 너무 추워 이 시간을 못 갖지만 이 시간은 내게 많은 상담을 해주었다. 처음 이 멘토를 만났을 때는 모든 고민을 다 해결해줄 거로 생각할 정도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고민이 있으면 동네를 20바퀴쯤 돌면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 떠올랐다. 차츰 고민이 사라지면서 하루를 돌아보며 걸었다. 그때 내가 오늘 실패, 실수한 것을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실수와 실패의 경험을 보게 해주는 글쓰기와 산책은 내게 <해리 포터>의 펜시브와 같다.
펜시브는 위 그릇 같은 곳에 내 기억을 꺼내어 넣는다. 그다음 저 기억의 물질 속으로 들어가 내 기억이 틀어준 장면을 본다. 그러면 내 기억 속에서 내 기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잘한 점, 못한 점을 내 상황이 아니라 관찰자 측면에서 본다. 그러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무엇을 개선할지 알 수 있다.
실패,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내가 나를 돌아보게 하여 깨우치게 하는
현명한 교육자
실패는 항상 바로 알려주지 않고 돌아보게 하는 방식으로 내게 알려준다.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내가 나를 돌아보게 하여 깨우치게 하는 현명한 교육자이다. 그래야 내가 잘 배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실패'는 내가 선택했어야 할 '바른 선택'의 다른 가능성, 다른 나이기도 하니깐.
실패는 성공의 경험이 없는 나에게 내가 살아온 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조언과 도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베풀어 주는 다른 가능성의 유경험자이다. 내가 살아갈 만큼 조언이 깊어질 것이고 도움의 방식도 다양해지겠지.
평생 함께 할 두 멘토
내가 도움을 구하면 언제든지 말해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책이라는 멘토와 내가 좋든 싫든 살아가는 한 항상 함께 있을 실패라는 멘토가 아마도 내 인생의 멘토일 것이다. 실존하는 사람과 달리 이 둘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후자를 적게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건 뜻대로 되지 않으니 그저 만날 때마다 열심히 배워야 하겠지.
작년까지 이 둘과 함께 한 수많은 멘토링과 거기서 얻은 소중한 가르침들이 몇몇 생각난다. 그리고 올해에 그리고 내일에도 있을 멘토링이 걱정도 되지만 그 이상으로 기대된다. 모쪼록 둘 다 날 성장하게 해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