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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Jan 08. 2016

<레버넌트>를 보고,

장엄함, 숭고함, 처절함을 광적인 미학에 담아 압도한다


*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외적인 이야기는 이동진 평론가의 시사회 설명을 참고하였습니다.


<레버넌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소설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세기 초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비버 모피를 가져가기 위해 원주민인 인디언이 있는 곳에 프랑스인과 미국인이 침략하여 셋의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휴 글래스라고 하는 백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주제로 움직인다. 자연, 복수, 재생이다. 


장엄한 자연


영화는 자연을 이야기한다. 대자연 안에서 사는 인간과, 인간과 함께 사는 작은 자연을 이야기한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자연 속 인간을 보여주려 한다.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과 자연과 함께 있는 자연을 보여준다. 동시에 자연 안에서 자연을 두고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를 표현한다. 원주민인 인디언, 프랑스인, 미국인들은 서로 가죽을 두고 경쟁하며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혈전을 벌인다. 


자연을 두고 인간의 경제 활동을 한다. 인디언 또한 미국인이 가공한 가죽을 두고 프랑스인과 물물 거래를 한다. 그러면서 자연 없인 살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늑대가 사냥한 소의 생고기를 먹는다. 풀을 생으로 먹고 물고기도 생으로 먹는다. 나무를 가져와 불을 붙이고 개울의 물을 담아 마신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를 '자연'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게 전달한다.


숭고한 죽음과 삶의 경계


복수를 하는 게 중심 주제다. 그 과정에서 '글래스'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한다. 카메라의 시선 또한 이 점을 주목한다. 산 채 묻힌 무덤에서 기어 나오는 장면은 그가 처음으로 죽음에서 살아온 모습을 담는다. 물에 잠겼다 다시 나오게 되는 과정은 <버드맨>에 이어 이번에 또 호흡을 맞춘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이전에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은 <그래비티>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동사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죽은 말의 속은 출산을 연상케 한다. 말의 내장을 꺼내 옷을 다 벗고 들어갔다가 그 갈린 틈으로 나오는 장면은 출산 장면임을 꼭꼭 씹어 알려준다. 


'글래스'에게 삶이란 죽음을 대가로 얻은 것이다. 말의 죽음이 그렇고 헨리 대위의 죽음이 그렇다. 죽은 헨리 대위를 살아 있는 듯이 말에 태우고 자신은 죽은 척을 하여 죽을 위기를 넘긴다. 그의 죽음으로 삶을 얻은 것이다. 그는 그렇게 몇 번이고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다. 실존 인물인 휴 글래스는 실제로도 '레버넌트'라고 불린다. 레버넌트는 죽음에서 돌아온 이라는 영어 표현이다.


처절한 복수 그리고 용서


복수는 이 영화의 척추와 같다. 주된 움직임이 복수에 의해 시작한다. 곰은 새끼를 지키려는 보호 본능에 의해, 인디언은 자기 딸을 구하고 납치한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 글래스는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곰은 보복하려다 죽는다. 인디언은 글래스의 도움으로 딸을 구하고 직접 응징에 성공한다. 


글래스를 살려주고 프랑스인에게 붙잡혀 매달려 죽은 인디언은 복수를 포기하고 피난하는 중이었다. 그에게 복수는 신이 할 일이었다. 영화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복수는 결국 딸을 찾던 인디언이  대신해준다. 그의 말에 울림을 받은 글래스는 말미에 복수를 섭리에 맡긴다. '피츠'를 물에  흘려보내어 인디언에게 보낸다. 그만이 용서를 떠나보내 섭리에 맡긴다. 계속 언급되는 '기독교'적인 뉘앙스가 있다. 그의 환상에서 기독교적 벽화가 나온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용서'다. 소극적이었지만 그는 직접 죽이지 않고 '피츠'가 바라던 신의 섭리에 맡긴다. 


실제로는 아들은 없었고 모종의 다른 복수를 위해 피츠를 좇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피츠가 미국 정규 군인으로 입대해서 죽이면 군법에 회부되게 되었고 자신의 총을 돌려받는 것으로 용서하였다고 한다. 




장엄함, 처절함, 숭고함을 광적인 미학에 담아 압도한다 


강력한 촬영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의 크기와 비견한 인간의 크기는 초라하다. 처음엔 인간이 제법 크게 나온다. 나무 숲에서도 나무보다 훨씬 두껍게 나온다. 하지만 갈수록 작아져서 나중엔 점으로 나온다. 감독은 이 점을 표현하기 위해 광각 촬영을 자주 보여준다. 


광각 촬영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지금 주인공이 어떤 환경에 있는지, 다른 이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다. 숨이 턱 막힐 장관인 동시에 대항할 수 없는 크기에 자연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그 위치 자체가 위기이자 생존의 위험을 보여준다.


감독은 영화 촬영을 위해 세 가지 원칙을 고수하려 했다고 한다. 영화 순서대로 촬영할 것, CG를 사용하지 않을 것, 자연광으로만 할 것. 거의 다 지켰다고 한다. 이걸 전부 한 번에 지키기 위해선 모든 촬영진이 극한의 고통을 당해야 한다. 영화 순서대로 찍기 위해선 찍다가 다시 돌아가기도 해야 한다. 자연광만으로 찍기 위해선 필요한 조명이 되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함을 말한다. CG가 없으니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구현하다 보니 스탭들은 그만두기 일쑤였고 분위기는 예민했다고 한다. 


이렇게 촬영하다 보니 기간이 길어져 원래 찍던 캐나다가 겨울이 끝나게 된다. 해서 남반구인 아르헨티나 만원설에 가서 촬영했다고 한다. 도시부터 촬영지까지 가는 동선만 해도 하루 촬영 시간의 40%를 썼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원래 예산인 6천만 달러에서 훨씬 초과한 1억 3천 달러를 썼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광적으로 촬영하니 나오게 된 모종의 광기가 있다. 배우들부터가 극도로 힘들고 예민하기에 영화에서 표현할 광적인 에너지를 쉽게 뿜는다.


극한으로 어렵게 만들어 광기를 끌어낸다. 촬영하다 죽을 듯이 전부 몰아가서, '글래스'처럼 죽음을 걸고 새로 재생한 영화이다. 루베즈키 촬영감독과 알렌한드르 감독 각자 정점을 찍은 그래비티와 버드맨의 후광에 눌리지 않기 위해, 불광불급을 하여 만들어낸  그다음의 무언가다. 버드맨이 작은 스테이지, 많은 대사가 특징이었다면 레버넌트는 광활함과 거의 없는 대사가 특징이다. 일부러 정반대로 간 것이다.


헨리 대위 역의 돔놀 글리슨은 보자마자 <어바웃 타임>이 생각났고, 연기도 다른 배우들에 비해 묻혀 아쉬웠다. 톰 하디는 돈만 생각하는 피츠제럴드를 톰 하디인지 모르게 연기했다. 그가 출연한단 게 생각나서 알아봤지 몰랐다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그중 특히 글래스 역의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정점이었다 싶다. 故 히스 레저가 연기한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특유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빠지고 인간다움이 있었다면, 그런 그가 복수한다면 이랬을 것 같았다. 광기의 정점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조커가 디카프리오의 연기에서 오버랩될 정도로 살아나려는 이의 광적인 처절함을 보여주었다.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를 잘 담았다. 물 떨어지는 소리,  불붙는 소리, 살이 찢기는 소리와 활과 총이 발사되는 소리를 한 땀 한 땀 녹음하듯 들려준다. 배경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이 느낄 법한 '생존 의식'을 건드린다. 장엄함을 귀로 보게 들려준다. 촬영이 극한까지 올라갈 때 더불어 음악 또한 같이 간다. 감독은 자신의 미학을 원하는 만큼 담았다고 한다. 요리 장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최대한 준비한 느낌이다. 감독의 전작들에서 매력을 느꼈다면 이번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연하는 배우 중 챙겨 보는 배우가 있다면 이번 영화에서 그들의 모습을 꼭 볼만하다. 감독이 담은 자연의 경관과 음악을 보고 듣기 위해서는 꼭 극장에서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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