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권하는 사회는 어떨까
최근 코트 하나를 샀다. 딱 보았을 때부터 내 코트란 생각을 했다. 입어 보았다. 맞춤 코트인 것처럼 흡족한 착요용감이 들었다. 바로 샀다. 집에 와서 보니 팔을 넣는 안감이 뜯어져 있었다. 주머니도 이미 연결 부위가 구멍이 나있었다. 잠글 수 있는 단추는 입은지 두어 번 만에 헐렁해졌다. 한두 번 입었는데 이렇게 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따로 제공되는 수선 A/S가 없다고 한다. 단추가 떨어져도 따로 구매할 수 없다고 한다. 추가로 교환이나 다른 서비스는 받을 수 없다고, 안타깝지만 샀을 때 확인하지 않은 책임이 크다고 한다.
내가 중고 시장에서 물건을 산 것도 아니고 기성품을 사는 건데 일일이 모든 부분을 확인하며 사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기성품에 대한 기준이 달라서 놀랐다. 이미 걸려 있는 코트를 산 것이니 전적으로 내 책임으로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매장에서 팔기 전 걸어둔 모든 옷을 항시 점검하지 않으니깐. 단정적 응대와 수선해줄 수 없음에 원만한 서비스 제공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이야기를 가까운 지인에게 이야기했고, 지인이 대신 통화를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본사에서 직접 내게 연락이 왔고 동일 제품으로 교환해주거나 환불해주겠다고 답이 왔다. 만족하며 입었기에 교환만 하면 됐다. 구매한 곳에 가서 점장과 이야기했다. 교환할 제품도 안감이 허술했다. 옷에 문제가 있어 교환하러 갔는데, 교환할 옷도 내 옷에 있던 것과 같은 문제가 있던 것이다. 점장 등에 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이에겐 진상부릴 최고의 기회일지 모른단 생각을 했다. 본사에 이 옷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겠다고 한 것과 점장 할인을 해주는 걸로 일단락 지었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처음 내가 전화했을 땐 안 되던 일이 지인이 전화하니 됐다. 전화 받는 분의 고충을 종종 들어서 알고, 그분들이 따로 책임질 권한이 없음을 알았기에 가능한 한 차분하고 예의 있게 통화했다. 할 수 없단 말에 딱히 더 할 말이 없어 나는 끊었다. 지인이 어떻게 통화하였는 지는 모른다. 아마 나보다 강하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진상 권하는 사회
다른 이에게 옷 교환하러 가는 법을 들었다. 보통 영등포 지하시장 같은 곳에선 교환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교환받으려면 '기 센' 친구와 같이 가는 것이 방법이란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기선제압을 해야 교환을 받을 수 있단 거다. 조곤조곤 합리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합당한 일이어도 교환해주지 않는데 우격다짐으로 하면 교환받는다. 착하게 하면 안 될 일도 우기면 되는 것이다.
다소 예의를 어겨야 혜택을 얻는 구조란 생각을 했다. 착하게 굴면 호구로 여긴다. 당연한 권리도 호구니까 얻지 못하게 된다. 씁쓸했다. 법이나 힘으로 또는 억지로라도 이야기해야 그제야 들어준다니. 서로서로 해줄 수 있는 부분을 바로 해주면 좋게 마무리되는 걸 텐데. 물론 내가 모를 고충이 있겠지만. 억지를 부리면 안 될 일이 된다는 게 한국에 통용되는 모종의 상식이란 게 걸린다. 꼭 진상 권하는 사회 같다.
라 프티트 시라 La petite Syrah라고 하는 프랑스 커피전문점이 있다. ‘커피 한잔’이라고 할 경우 7유로를 내야 한다.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존대하면 4.20유로를 내고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인사까지 하면 1.40 유로를 낸다. 예의 있게 주문할수록 할인받는 구조다. 재밌는 구조다. 직원도 기분 좋고 고객도 기분 좋을 것이다.
예의 권하는 사회
꼭 정책적으로 만들지 않아도, 문화적으로 예의 있게 할 때 서로 더 잘해주려고 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말만이 아니라 당연한 상식이 된다면 좋겠다. 예의 권하는 사회가 실현된다면 어떨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