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Jan 22. 2016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에 관하여

뇌공학자 정재승이 말한 '20대에 해야 할 일'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는 빠르면 10대 보통은 20대부터 하는 질문이다. 고3 시작 때부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때까지 내가 두드러지게 잘하는 게 없었기에 좋아하는 걸 먼저 찾았다.


그 고민은 5년 넘게 이어졌다. 그전까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그쯤 되니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무언지는 알 수 있었다.



커피, 덕질의 시작
내게 덕질은 일이 될 수 있을까?


2010년부터 커피에 관심을 두고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드립 커피 도구를 사서 드립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저렴하고 괜찮은 원두 판매하는 곳의 원두를 모르긴 몰라도 일단 종류별로 마셔보기도 했다. 그러다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있는 기계들을 사서 아메리카노와 카페 라떼를 마셨다. 나중엔 집에서 직접 원두를 볶아서 그 원두로 커피를 마시기까지 했다.


커피 덕질을 하면서 커피 쪽으로 일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카페 알바를 지원했다. 카페 사정으로 한 달 후에 카페가 망해서 한 달만 일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일하면서 이 일이 업(業)이 될지 안 될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카페를 운영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모든 노동에 대해 알지 못했다.  계속되는 설거지와 다양한 재료들의 손질과 매장 청소와 오픈, 마감 준비 등은 내  예상외에 일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태도의 손님들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나와 맞지 않았다. 그냥 나는 집에서 혼자 커피 마시길 좋아했다. 혼자 마시니 정리할 게 별로 없었고, 대접할 일이 없어서 잘 몰랐다.


책을 읽기 좋아한다와
책 관련 일을 한다의 차이


그다음으로 찾아본 일을 책 관련 일이다. 커피 관련 도구들을 살 만큼 산 후에는 수입 대부분으로 책을 샀다. 그땐 도서 정가제가 없을 때여서 할인 이벤트가 많았고 그때마다 많이 사들였다. 하루 100쪽씩 읽는 운동을 하면서 독서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동 시간에도 항상 책을 읽으며 계속 책에 파묻혀 있다 보니 책 관련 일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처음엔 교정 보는 일을 해봤다. 글의 내용을 보기 이전에 오·탈자를 8시간 동안 검사하는 일은 내게 활자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이걸 계속하면 내가 앞으로 책 읽기를 안 좋아할 것 같았다. 그다음은 서점에서 일했다. 책 배송까지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서가 정리, 판매, 책 배송과 전화 업무 등은 고단하지 않았지만 반복되는 가운데 책에서 느낀 매력을 일에서 찾지 못했다. 일한 환경이 매우 좋고 편해서 계속 일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계속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 일을 왜(WHY) 하는 거야? 그리고
네가 있는 곳은 안전한 게 아니야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엔 두 명의 영향이 컸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의 저자 사이먼 사이넥과 <이카루스 이야기>의 저자 세스 고딘이다.


사이먼 사이넥 책에선 나만의 WHY가 있어야 한다는 걸 어필한다. 내게 그 일을 반드시 할만한 '신념'이 있을 때 HOW와 WHAT이 나온다고. 내가 뭘(WHAT)  할지 모르는 고민은  왜(WHY)할지 모르면 나올 수 없었다. 내가 서점에서 책 관련 일을 하는 건 내가 책을 좋아해서였지만 그게 WHY로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씩 회의감이 생겼다.


그런 상태에서 세스 고딘은 지금 편하고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그곳이 정말 안전한 게 아니다는 말을 봤다. 내가 그때 느낀 '편하지만 불안함'의 실체를 알았고 읽은 바로 그 날, 다음 달에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내가 깊게 좋아한다고 생각한 두 가지 일 모두 업(業)으로 삼으면 어떨지 둘 다 한 번씩은 발을 들여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둘 다 업(業)은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좋아하는 일이 전부 업(業)이 아니다 보니 어떤 업(業)을 찾아야 할지 알지 못해 자못 울적할 수 있을 상황이었다.


새삼 느낀 감정의 울림


그리고 마지막 달이 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장 업무를 갔다. 한 수련회 장소에 가서 많은 책을 가져가 파는 일이었다. 원래 나는 계산 보조나 간단한 일을 돕기 위해 갔다. 같이 간 사수 분이 하실 일은 주로 책을 설명해 팔고 또 책 문의에 대해 대답을 하는 거였는데 그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맡아야 할 상황이 왔다. 한 여성 분이 자기 아버지와 최근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책을 선물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공감하며 내 생각을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책 문의가 상담으로 전환된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책을 사 가시는  뒷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마음이 생겨났다. 내게 작은 울림이 있던 시간이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마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이 은근하게 벅차올라서 그만두기로 한 말을 물려야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은 가진 채 일을 마무리했다.


일을 그만둔 건 작년 8월이다. 9월 한 달 동안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영어 공부를 해볼까 하고 준비했다. 얼마 안 가서 회의감을 느꼈다. 계속 영어 공부하는 WHY가 뭐냐는 질문이 귀에 맴돌았는데 대답해줄 수 없어서. 그럼 도대체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 어느새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긴 연휴를 함께 보낼 책을 사러 교보 문고에 갔고 거기서 만난 책이 아들러 심리학을 쉽게 전달한 <미움받을  용기>였다.


공헌감, 선물, 행복
나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그 책에 여러 말이 있지만 내게 공명한 건 사람의 행복은 타인에게 공헌했을 때, 공헌감을 느꼈을 때 오는 거란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이카루스 이야기>에서 세스 고딘이 지금 당장 남에게 가치 있는 일을 선물해줄 수 있는 아트를 하고 아티스트가 돼라는 말과 닿아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걸 선물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쯤 내 친구들에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 같은지 물어봤다. 최소한 5년 동안 날 본 친구들이고 매주 만나며 나의 허물도 많이 본 가까운 이들이었다. 그들이 말해준 여러 가지 중 공통적인 두 가지는 글이랑 말이었다. 항상 싸이월드 때부터 SNS까지 자주 글쓰기를 했기에 글쓰기 좋아하는 것 같고, 창의적으로 놀리기도 잘하지만 설득이나 그냥 말을 잘하는 것 같다고.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그제야 인식했다. 그리고 그냥 남들 다 하니까 의례적으로 했던 네이버 블로그를 멈추고 글 위주 블로그인 브런치를 시작했다. 한 달 정도 꾸준히 쓰기 시작하니 구독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면서 여러 곳에 소개되면서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한다. 당일 방문자가 만 명이 넘을 때도 있고 하루에 100명 넘게 구독할 때도 있었지만 내게 큰 만족감, 행복감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언제 정말 만족감을 느끼는지 고민해봤다. 내 글 공유 수가 올라갈 때, 오늘 투데이가 높을 때 둘 다 기분 좋지만 그 정도가 높진 않다. 그런데 댓글이 달렸을 때, 그중 내 글을 보고 자신의 삶에 어떤 부분을 생각해보고, 의미를 찾은 이들의 글을 볼 때 나는 언급했던 벅찬 마음을 받았다. 이거였다. 누군가에게 내 글이 선물이 됐다는 것, 공헌했다는 것 거기서 오는 행복감을 느낀 거였다.


작은 공헌감이 작은 만족감과 행복을 만들었고 행복은 동력으로 변했다. 이 동력으로 꾸준히 글을 썼고 그러면서 소소한 행복이 쌓였다. 자연히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커졌다. 그러면서 배운 게 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 해주어 좋아하면
더 해주고 싶고 더 잘해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공헌할 수 있게 될 때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과 같다. 내가 원해서 무언가 해주고 싶고,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글쓰기가 그랬다. 글쓰기 자체는 내가 원해서 쓴 거지만 그걸 통해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의미를 가져갈 수 있기에 더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꾸준히 쓰고 잘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도 내게 기쁨이었다.


그러다 한 방송을 보고 내 기쁨의 원인, 내가 왜 이 기쁨을 바라는지 알 기회가 있었다.


우리 뇌가 경험하는 가장 큰 쾌락이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좋은 성취이고 근데 그걸 남도 알아주고 그 두 가지가 함께 만나는 성취를 경험할 때 온다.

대개 우린 남의 기준으로 내 성취를 판단 받거나 아니면 아예 세상과 외면해서 남이 알아주든 말든 나 혼자 좋으면 돼 라는 마음으로 성취를 하는데, 그 둘이 (중간에서) 잘 만날 때 굉장히 큰 기쁨을 느끼는데 그걸 잘 찾기 쉽지 않다. (그래서) 20대는 뭘 하는 시기냐면 세상과 내가 서로 뭘 원하고 뭘 잘하는지를 맞춰나가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김제동의 톡투유 7화 중, 정재승 뇌공학 교수의 말 중


내가 생각해도 좋은 성취, 남도 알아주는 성취가 만날 때 오는 기쁨
20대는 그 기쁨을 찾아가는 시기


정재승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성취를 통해 기쁨을 얻는 과정은 대개 두 가지다. 남의 기준에 맞춰 가거나 나의 기준만 생각하거나. 내가 걸어온 과정은 후자에 가까웠다.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책 읽는 건 좋아했지만 그 성취와 만족은 세상의 인정과 상관없는 거였다. 동시에 나누어 줄 수 없었다. 우리가 정말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면 두 가지의 중간을 찾아야 한다.


어쩌다 시작한 글쓰기는 나의 개인적 성취였지만 이 공간에서 놀랍게도 남도 알아주는 성취로 커갔다. 그 교차점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세스 고딘이 말한 '선물하는 기쁨'을 느꼈다. 나는 그저 글로 선물하길 바라는 일종의 아티스트의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기쁨을 느낄 때 우승할 때 느끼는 강렬함은 없지만 그건 분명히 환희이자 희열이다. 몸은 가만히 있어도 몸 전체를 찌릿하고 관통하며, 몸을 공명체로 울리는, 정재승 님이 말했듯 큰 기쁨이다.


난 남들에게 무엇을 해줄 때 기쁜가,
성취의 교차점 찾기


내가 무엇을 하기 좋아하는가, 할 때 기쁜가로 시작해도 무방하다. 내 시행착오를 돌이켜볼 때 한 가지 다른 방법을 제안해본다. 내가 남들에게 무엇을 해줄 때 기쁜지를 생각해보자. 그것을 '봉사'로 표현할 수도 있고 '선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캘리그래피를 써주길 좋아하고, 시간을 내어 이야기 들어주거나 물어보면 무언가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렇게 도움을 주면서 상대와 자신 모두 기쁨을 누리는 교차점을 찾아보자. 그러려면 도와줄 기회를 찾는 게 한 방법이다.


남들을 도와주면서 나도 기쁘고,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나도 성취를 누리면서 그 성취를 남도 알아주는 교차점을 발견하려면 계속 나와 주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만 기쁜 것과 상대만 좋아하는 그 중간을 찾기 위해선 시도해봐야 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좋은 반응을 조금씩 얻었고 더 잘해주고 싶어졌다. 글도 명료하며 울림 있게, 영양식이면서 감칠맛 나게 쓰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 이제 글 다음으로 말의 성취를 얻으려 한다.


잘한다고 평받은 내 말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공헌감을 느낀다면 좋겠다. 지금 다니는 학원에서 말하는 법을 배운다. 2달 정도 배우면서 조금씩 늘어가는 게 느껴지고 또 남들도 알아주고 있다. 조금만 더 내공을 다지면서 '선물'할 기회를 찾다 보면 이 또한 큰 기쁨이 될 거란 확신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또한 같은 종류의 기쁨을 누리면 좋겠다.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 성취를 찾아서 또 선물해보면 된다. 꼭 20대가 아니어도, 언제 어느 세대라도 찾기만 하면 이 기쁨을 누릴 수 있으니깐 계속 시도해보자. 서로 도와주면서 서로의 기쁨과 자신의 기쁨이 교차하여 시너지로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