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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Feb 11. 2016

준비되어서 하는 게 아닌,

준비는 생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이다.

제이 라이프 스쿨 굿모닝 클래스 : 스티브 잡스 수업 중




갑작스런


오늘 학원에 10분 정도 늦었다. 학원 가는 날이라 연휴란 걸 깜박했다. 연휴라 배차 간격이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앞차를 놓치니 1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학원에 도착하니 노래하는 분위기였다. 종종 수업 시작하면서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터라 그냥 그런가 했는데 수업을 진행하는 민호 쌤이 내게 기타를 칠 줄 아느냐고 물어보셨다. 칠 줄 안다고 하고 어쩌다 보니 치게 됐다. 추운 곳에 있다 따뜻한 데에 와서 안경에 김이 서렸는데 그 김이 채 빠지기도 전에 기타를 잡았다.


내가 친 곡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란 곡이었다. 쉬운 코드로 된 구성이기에 바로 보면서 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모습으로든 남들 앞에서 들려주기 위해 기타를 친 건 처음이었다. 다행히 좋은 분위기여서 떨지 않고 칠 수 있었다. 내가 못 쳐도 이 사람들은 비웃거나 무시하지 않고 격려하고 응원하고 함께 즐겨줄 걸 알고 믿었으니깐.


우여곡절 끝에 곡을 마무리하고 내려왔다. 그때 민호 쌤이 말씀하신 게 있다. 준비되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해봐야 준비를 하는 거라고.


준비는 되는 게 아니라 하는 거


그 말이 꼭 그랬다. 치면서 그리고 치고  내려오면서 했던 생각은  '연습해야겠다'였다. 부정적인 뉘앙스 하나 없이. 더 잘 치고 싶다,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깔끔하게 쳐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바로매일 작은 습관 만들기를 하고 있던 것에 추가하기로 했다. 매일 1곡씩 치기 또는 한 달 동안 1곡 연습해보기. 대부분 취미가 그렇지만 매일 하지 않으면 실력이 퇴보한다.


11월이 끝나자마자 기타를 치지 않았다. 거의 3개월 동안 손에 안 잡았는데 그새 손이 굳었더라. 손가락에 살짝 있던 굳은 살도 말랑해지고. 그때만큼 손톱도 바투 자르지 않아 기타 줄도 깔끔한 소리 나게 잡지 못했다. 기껏 몸에 새겨둔 취미를 그렇게 사라지게 두긴 그랬다. 또 이 취미는 갖고 있으면 언젠간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매개는 누구라도 즐기게 해주는 그 자체로 힘이 있는 무언가니깐.


오늘 작은 무대에 서지 않았다면 오늘도 내 방에 있는 기타 위엔 먼지가 쌓여 있었을 것이다. 덕택에 언젠간 연습해야지라는 마음만 먹고, 꺼내서 바라보기만 했던 기타를 잡아볼 수 있었다. 손톱을 바짝 깎았다. 밤에 들어왔기에 줄을 튕기며 연주하진 못하지만 다시금 코드를 잡아볼 수는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올라섰기에 준비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준비할 마음이 생겼다.


프로라면, 무언가 공적으로 해야 하는 거라면 당연히 준비되어야 한다. 그런 게 아니라면 우린 사실 항상 준비되어야만 할 무언가가 있진 않다. 그냥 하게 되는 거다. 즉흥적으로 또는 뜬금없이.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안 되었다고 거절할 수도 있고 그냥 할 수도 있다. 나처럼 준비 안 된 상태에서 해보고 준비해야겠단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동기부여받은 오늘부터 꾸준히 준비한다면 아마도 그냥 평소에도 '준비된' 사람일 수 있겠다. 그럼 그땐 그냥 하는 거지만 준비된 채 할 수 있겠지. 준비는 생각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준비는 되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다. 뭐라도 해봐야 무엇을 준비할 지 안다. 그러니 준비의 시작은 머뭇거림과 '준비'가 아니라 움직임이자 시도이다.


작은 도전을 한껏 해볼 수 있는 공동체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나 혼자 있었다면 아마도 변화는 없었을 테다. 어떤 사람이 내 주위에 있느냐는 중요한 요소이란 생각도 해본다.


때로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작은 도전이, '준비된' 실력을 갖출 마음을 주기도 한다. 나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야 했지만, 해보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것이 있다면 기회가 없더라도 그냥 한 번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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