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 대학토론배틀로 배우는 토론과 설득, 소통
제이 라이프 스쿨 굿모닝 클래스 : 스티브 잡스 수업 중
제라스X채민씨
스티브 잡스에게 배우는 조언의 기술
오늘 수업에서 스티브 잡스의 스피치 구조를 배웠다. 그는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고, 하는 일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했다. 이걸 먼저 말하고 이야기했으면 다 아는 이야긴데 또 그런 소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걸 안 그는 바로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 삶을 먼저 이야기하면서 그 결과 이런 교훈을 얻었음을 전달해준다. 그러면 그때, 아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두괄식과 미괄식의 차이는?
그의 스피치 구조를 뜯어 보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두괄식과 미괄식을 언제 사용해야 하나'였다. 두괄식의 사전 정의는 글의 첫머리에 중심 내용이 오는 산문 구성 방식이다. 미괄식은 문단이나 글의 끝 부분에 중심 내용이 오는 산문 구성 방식다. 쉽게 말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어디에 두느냐, 처음이냐 끝이냐 차이다.
사용처가 나뉘는 건 일차적으로 상황이다. 두괄식은 면접에서 많이 쓰인다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는 면접관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 바로 답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답답할 수 있다. 면접관으로선 내가 정말 그 질문에 답을 알고 있는지 바로 알고 싶어 한다. 내가 에둘러 말하면 답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다려줄 인내력이 금방 바닥날 것이다.
이처럼 두괄식은 토론 혹은 면접처럼 바로 답을 말해야 하거나 본론을 먼저 말해야 할 때 필요하다. 두괄식은 '나는 이렇게 생각해, 왜냐하면~' 처럼 주장-근거가 나오는데 맞는 구조다.
미괄식은 설득이나 조언을 해줄 때 필요하다. 조언이라는 건 같은 내용도 좋은 약이 될 수도 있고 잔소리가 될 수도 있기에 전달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미괄식으로 이야기했다. 조언을 하고 싶다면 그가 했던 방식처럼 먼저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열게 해서 들어볼 마음이 있게 해야 한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들지 않고, 들지 않으면 듣지 않는다.
조언은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것을 상대가 받아들이게 전달해주어야 한다. '네 생각은 틀렸고 이렇게 생각해야 해'라고 시작하면 굳이 교정받을 상황이 아니라면 듣지 않는다. 잔소리 내용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고, 마음이 없어서 안 하는 거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듣기만 해' 라며 답정너가 되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마음을 열 마음도 들지 않는다. 마음이 들게 하려면 먼저 마음을 열게 해야 한다.
민호 쌤은 '자물쇠 비밀번호에 들어가는 숫자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순서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그래야 열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려면 말을 할 때도 적절한 순서가 필요하기도 하다. 조언엔 미괄식이 적절할 수 있다. 두괄식과 미괄식이 언제 필요한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면 목적에 알맞게 소통할 수 있겠다.
토론과 설득의 정석, 대학토론배틀 시즌6
그러다 우연치 않게 보게 된 한 방송에서 오늘 수업 때 배운 두괄식과 미괄식의 사용 방법이 아주 적절하게 나왔다. 마침 오늘 방영 시작한 <대학토론배틀 시즌6>이었다.
오늘 방송은 크게 1,2차 예선 두 구성이었다. 예선은 1차는 토론과 2차는 설득으로 나뉜다. 토론에서 토론의 본질을 잘 짚어준 건 최진기 쌤이 나온 부분이었다. 1차는 4개의 방마다 각각의 난제를 주어 한 가지를 선택한 후 선택한 질문의 방에 들어가 3분 스피치로 답하는 것이었다. 최진기 쌤의 방은 '우리나라 역대 왕 중 가장 저평가된 왕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였다.
처음 나온 팀들은 대개 세종대왕이라고 이야기했다. 역발상 혹은 창의적 발상을 꾀한 것이다. 그중 한 팀은 '저평가된 이유'를 말하지 않고 '세종대왕이 알고 보면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미 고평가된 세종의 저평가된 지점을 말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했는데 아무 근거가 없었다. 대차게 까였다.
세종대왕을 말한 또다른 팀은 한글 창제로 인해 다른 부분이 저평가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 부분은 칭찬받았다. 그런데 세종의 예술, 과학 분야의 업적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지 않았기에 또 까였다. 까인 팀들은 토론이란 게 무엇인지 모른다고 까였다.
최진기 쌤이 말하는
토론이란 무엇인가
토론이라는 것은 자기주장의 근거를 논증하는 것.
발표하는 형식에 드라마적 반전을 주는 건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토론은 발상의 전환을 물어보는 게 아니다.
<대학토론배틀 시즌6> 최진기 쌤
여러 팀이 그 앞에 고전하는 중에 한 팀이 등장한다. 그 팀이 선택한 왕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제시했다. 항복한 왕이지만 전쟁 없이 국민을 지켰다는 걸 역설했다. 발표 후 이 팀은 최고로 잘했다고 칭찬받았다. 이들의 영상을 탈락한 팀에게 보여주면 왜 떨어졌는지 알 것이라는 극찬까지 했다. 주제에 대한 이해가 정확했다는 평.
'토론'은 전형적인 두괄식 사용처이다. 내 생각은 이렇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서로 이야기하여 증명하며 견주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 다른 이야기를 한다거나 일부러 창의적인 이야기를 하려 드는 건 토론이라고 하기 어렵다. 토론일 때는 토론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토론 시엔 두괄식을 사용하여 핵심인 주장을 말하고 보충하는 근거를 말해야 한다.
재밌게도 이 방송은 제목이 토론배틀인데 예선 2라운드에 '설득의 신'이라는 코너를 한다. 토론과 설득, 이라는 구성으로 균형을 맞춘다. 예선 1라운드를 통과한 팀 중 토론이란 틀에 사로잡힌 대학생 팀들은 여기서 혹독한 시간을 맞이한다.
2라운드는 제목처럼 설득에 관한 이야기다. 3팀 중 1팀을 설득해야 한다. 주제는 '식스팩을 만드는 건 시간 낭비다', '채식주의자는 불행하다', '성형 수술은 금지해야 한다'이다. 압권은 이 주제로 설득할 팀이 헬스 매니아, 채식주의자, 성형외과 의사들이라는 것.
토론과 설득은 다르다
토론방식에 푹 빠진 친구들은 설득을 하러 간 자리에서 설득이 아닌 '토론'을 해버린다. 헬스 팀에 들어간 친구는 가자마자 '식스팩 만드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토론이라면 전형적인 두괄식이기에 논증만 잘하면 됐다. 하지만 이건 설득해야 하는 자리였다. 시작을 잘못했다. 순서를 바꿔버린 탓에 다 꼬였다.
처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걸 반대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경청하게 한다. 그가 말하는 주장을 듣고 설득되기 위해서가 아닌 하나하나 반박하기 위해서. 헬스 매니아들이기에 그가 말한 헬스 이야기 중 허점을 금방 알아냈다. 잡아내어 반박했고 그의 논증 어린 설득은 빛이 사라졌다.
채식주의자 방에 들어간 팀도 마찬가지. 설득하러 가자마자 '논증'을 시작한 팀은 말하자마자 '반박'당한다. 영양적 불균형을 말한 A팀은 약학 전문가에게 반박당하니 A팀의 논증 어린 설득도 공허해진다. 심지어 B팀은 채식주의자의 선택을 '호사스러운 식(食)취미'라고 단언한다. 당연히 B팀뿐만 아니라 A팀에 말에 아무도 설득되지 않았다.
그러다 등장한 한 팀.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꺼낸다. 5년 전 겪었던 일을 통해 채식을 시작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채식을 하면서 전보다 불행해져서 포기했음을 말한다. 같은 채식주의를 해보고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니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고 나서야 자기 생각을 담담히 말할 때 채식주의자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직접 경험해봤기에 나오는 일종의 권위와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전달된 감정이 어우러졌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를 통해 설득의 장을 연 것이다. 위에서 했던 말과 비슷하지만 들을 마음이 들게 하려면 먼저 마음을 열게 해야 한다.
그 외에도 방송이 설명한 설득에 성공한 팀들의 요인은 이렇다. '설득 대상을 존중하고 한발 물러선다.' 누군가는 식스팩을 만드는 게 시간 낭비가 아닐 수 있다고. 또는 애초에 정답이란 게 없을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운을 띄우고 들어간다. 설득에 성공한 참가자의 말을 빌리면 성공한 이들은 "내가 좋다는데 '됐어 그건 안 좋은 거야' 말할 수 없다"는 걸 안 것이다.
설득은 서로 의견이 일리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해 가는 과정
사실 어떤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설득하고 싶다면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치고 상대의 논리를 무너뜨려선 안 된다. 위 사례들이 말해주듯 반박만 불러일으킨다. 설령 상대 논리를 논파해도 감정적으로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설득이란 건 내 의견을 관철하는 게 우선이 아니다. 설득은 우리 각자의 의견이 들어볼 만하다, 일리가 있다는 걸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함께 걷는 것이다. 설득의 사전 정의가 설령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이라 하더라도 결코 상대를 끌고 가라는 게 아니다. 같이 걸어가되 나의 길에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 길에 따를 때까지 기다리면서 왜 그쪽 편에 있는지 이해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상대의 마음을 알아야 이쪽 편에 와야 할 이유를 이야기해줄 수 있다. 그러다가 상대가 마음이 열려 들어보니 내 의견이 일리가 있고, 이걸 선택하는 게 맞다 싶으면 오는 거다. 내가 잘한 게 아니라 상대가 기꺼이 잘 들어주어 선택한 것이다.
무엇보다 깊은 울림을 준 팀들은 한결같이 '스토리텔링'을 한 후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자신은 이런 일들을 겪은 후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되니 듣는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라며 일리 있게 들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했던 선 스토리텔링 후설 득 방식과 흡사하게 한 팀들은 설득에 성공한다. 미괄식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팀이 예선을 통과한다. 어쩌면 자기 이야기, 경험이 진짜 논리를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정관용 님의 말처럼.
두괄식이 주로 토론에 특화되었다면 미괄식은 설득에 특화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걸 제대로 보여준 방송이었다. 예선 2라운드를 통과한 팀이 앞으로 할 일은 쭉 '토론'으로 보인다. 그런데 분량의 반을 할애하여 '설득' 파트를 넣은 이유가 무얼까 궁금하다. 의도를 갖고 균형을 맞춘 것일지 다음 방송에서도 '설득'의 요소를 꾸준히 짚어줄 것인지 기대된다.
진짜 논리라는 건 진짜 설득이라는 것과 맞닿아 있다. 경험에서 우러난 설득이 힘이 있고, 진짜 논리를 만드는 것도 경험이라면 아마 둘은 미묘하게 겹쳐있을 지 모른다. 그래서 이 방송도 토론과 설득을 함께 준비할 걸수도 있다.
두괄식이 옳으냐 미괄식이 옳으냐는 논할 이유도 없는 주제다. 각자 사용하기 적절한 때가 있을 뿐이다. 토론하기 위함인지 설득 혹은 조언을 하기 위함인지에 따라 다르다. 다만 우리 삶은 그렇게 딱딱 나뉜 상황만 생기는 게 아니다. 주로 복합적인 상황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때그때 경험과 논리, 토론과 설득의 요소를 조화롭게 사용해야 한다. 누군가와 소통할 때 무엇을 말할 지는 언제나 중요하다. 그리고 그만큼 어떤 순서로 어떻게 말할 지도 중요하다. 비밀번호인 숫자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적절한 순서를 아는 게 중요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