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에 대하여
제이 라이프 스쿨 3% 커뮤니케이션 자아 문답반에서 배우는 내용을 제 식대로 풀어 썼습니다.
클리셰란 표현이 있다. 어떤 장르에서 어떤 상황이 되면 으레 나오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 방법을 말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본다. 멜로드라마 중 카페에서 남녀가 싸우는 장면이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게 들통이 났지만 잘못을 인정 안 하고 뻔뻔하게 있다. 그 다음 어떤 장면이 나올까? 한국에선 대개 물을 끼얹는다(실제론 범법행위니 하지 말자!). 누구도 물을 뿌린다고 놀라지 않는다. 이정도여야 사람들이 놀랐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알고 보니 남매였다거나 부잣집 남자와 신입 여자의 로맨스나 처음엔 굉장히 부딪히는 남녀가 나중엔 연인이 된다거나. 한국 드라마 스타일은 '아무튼 어쨌든 어디든 언제든 러브 스토리'라는 그 공식을 만드는 게 일종의 클리셰이다.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엔 전형적인 클리셰로 차 있다. 영화든 소설이든 이야기든 클리셰로 가득 차면 재미없다. 기대가 안 된다. 다 예측되기 때문이다. 진부함을 피하기 위해 '클리셰'를 깨는 게 아니라 그냥 기존 클리셰에서 더 자극적으로 가려 한다.
보면서 바로 다 예측할 수 있던 건 최근에 본 <검은 사제들>이 떠오른다. 영화는 초반 거의 모든 장면부터 전형적인 퇴마 영화였다. 딱 <엑소시스트>의 너프 된 한국 버전 정도였다(리뷰는 여기). 언제 악마가 될 것이고 어떻게 해결이 될지 전부 예측이 됐다. 내겐 그냥 예측을 확인해보는 시간에 불과했다.
아래 사진은 근래 방영된 <본방사수>라는 프로그램에서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내가 예측하면서 봤듯 다음을 예측하며 지켜보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적당한 클리셰가 있다고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전형적이 되었다는 건 안정적인 진행이 될만한 무언가가 있단 의미기도 하니깐. 하지만 그럴 땐 '소재'가 아니라 '흐름'이 익숙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같은 소재가 반복되면 쉽게 질려한다. 그래서 방송을 기획하는 이들이 흐름은 유지하면서 신선할 수 있는 소재 찾기에 그토록 어려워하며 열을 올리는 것이다.
특별히 스피치를 할 때 누구나 예측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집중하지 않는다. 윗 사진은 방송을 지켜보는 걸 찍는 것이니 끝까지 보는 것이지 실제였다면 진작에 채널 돌렸다. 그처럼 이야기 듣는 사람도 그냥 알만한 이야기면 다른 생각을 한다.
역으로 이 전형적인 클리셰를 이용할 수 있다면 집중을 얻을 수 있다. 전형적이면 전형적일수록, 진부하면 진부할수록 효과가 크다. 그런 클리셰 깨기를 잘한 가장 대표적인 예는 <왕좌의 게임>이다.
예측할 수 없을 때, 의외일 때, 놀라게 할 때
사람들은 집중한다
거의 모든 이야기의 전형적인 클리셰는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이다. 그런데 이 작가의 작품에선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다'가 클리셰이다. 이게 너무도 기존에 반한 형식이어서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에 계속 자신이 아끼는 캐릭터만큼은 죽지 않길 조마조마하며 바란다.
당연히 사람들은 스토리의 진행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 회에 자기 캐릭터가 살아남으면 안도한다. 자신의 가장 애정 하는 캐릭터가 정말 뜬금없거나 황당하게 또는 무참히 죽게 되면 진짜 자기 지인이 죽은 것처럼 놀라고 한참을 슬퍼하기도 한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음이 이 작가의 '클리셰'이지만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에 진부함을 주지 않는다.
자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 '제가 가장 많이 듣고 또 좋아하는 말은 고마워 입니다.'는 전혀 놀랍지 않다. 그냥 뻔한 말이다. 그런데 '제가 오늘 아침에도 들었던, 가장 자주 듣고 좋아하는 말은 너 좀 짜증나입니다' 라고 한다면 의외에 발언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의외로 이야기를 풀어간 만큼 맺음을 잘해야 한다. <왕좌의 게임>이 그냥 아무나 다 죽이는 이야기였다면 누가 보겠는가. 이해할 만하게 이끌어 가야 한다. 의외로를 잘못 풀면 뜬금포로 끝난다.
안정적으로 지루하게 하기보다
한 번이라도 집중하게 하는 게 낫다
그럴 위험이 있다 해도 이야기를 진부한 클리셰로 채우는 것보단 도전해볼 만하다. 상대가 내 이야기에 처음부터 '아...' 하며 지루할 거로 예측하고 집중하지 않는 것보다, '응?' 하며 한 번 들어보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복싱엔 '카운터'라는 기술이 있다. 상대가 내게 지르는 펀치를 피하면서 상대에게 주먹을 내지르는 것이다. 이때 내 펀치의 힘에 상대가 들어오는 힘을 역이용해 때리게 되면 두 힘이 더해져 충격을 더 크게 준다. 클리셰도 이와 같다. 전형적이고 진부한 클리셰일수록 이야기를 할 때 뻔하게 나오고, 뻔하게 기대된다. 이걸 피하기 어렵다. 그만큼 강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역이용해 반전을 꾀한다면 강한 만큼 듣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 시도해볼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