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한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 이 책을 보시곤 "과학의 유효 기간은 오늘까지다"란 말을 하셨습니다. 어제까지 정설이었어도 오늘 뒤집어지는 게 과학이니까요.
출처 : 이웃집 과학자
최근 중력파를 발견하였단 뉴스가 꽤 중대하게 다뤄졌다. 계속 다뤄지면서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큰 발견이란 걸 알만큼.
아인슈타인의 이론 중 실질적 검증이 필요한 마지막 한 가지가 중력파였다고 한다. 물론 그 검증이 당장 실현되지 않았다 해도 과학자들은 이미 정설로 인정했다고 한다. 확증을 위한 실측을 기다렸을 뿐.
그 여파가 어떨지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 한 분의 댓글에 엑스레이가 발견되면서 볼 수 있는 게 달라졌으므로 설명해줬다. 그 발견으로 세상을 새롭게 알게 됐듯 중력파로도 새로운 세상의 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덕에 올해 나온 과학책이 금방 옛날 책이 돼버렸다.
과학 저널, 각종 채널에서 경축하고 있는 이 기쁨의 발견을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한 과학 페이지에서 '과학의 유효 기간은 오늘까지'란 말을 보고 나서였다.
오늘 우리의 유효기간도 오늘까지
한 번의 관측이 과학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미 알고 있었다 해도 한 번의 확실한 관측에 세상의 변화는 시작했다. 차차 우리도 그 변화를 실생활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엑스레이가 나올 땐 그 기능 파악이 안 되어 찍기만 해도 치료가 되는 줄 알던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대로 활용할 줄 알게 됐다. 그 덕에 이젠 엑스레이가 아주 간단하면서 유용한 검사 도구로 일상 진료에 정착했다.
내가 주목한 점은 과학자들이 모두 확증하고 있었고, 관측이 실제 됐을 때 진짜 변화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중력파는 그 존재를 다들 확신하고 기다리고 있던 확실한 '가능성'이었다. 그 실체가 관측되기만을 기다려왔었단 이야기가 내게 흘러들어왔다.
어쩌면 우리의 유효 기간도 오늘까지 일지 모른다. 오늘 죽을지 모른다는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금 다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별반 다를 게 없을 수 있다. 동시에 어제까지 나와 오늘의 나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우리 모두 확실한 '가능성'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가능성'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실측되기만 하면 확증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 말이다. 우리 서로의 가능성을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어주면 어떨까 싶었다. 과학과 달리 기다리고 믿어줄 합리적 근거는 없다. 믿음일 뿐이다.
그저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음을 믿어주고 싶다. 언젠가 발현되어 가능성이 관측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필요한 건 시간일 것이다. 중력파를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이 측정하기 적절한 때까지 준비될 시간. 누군가의 가능성이 적절한 때 싹을 틔울 때까지의 시간. 그 시간이 오면 어제 나온 과학책이 오늘 구식이 됐듯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관측되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던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관측되지 않아도 인정되었다. 그의 이론 덕에 우리의 실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GPS, 내비게이션 등은 그의 상대선 이론에 기반을 둔다. 발견되지 않았어도 믿을 수 있었기에. 그럼에도 중력파 발견까지 딱 100년이 걸렸다.
발견되면 세상은 변할 것이다. 발견되지 않아도 우린 달라질 수 있다. 그의 이론이 그러했듯. 과학과 달리 달라질 근거는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을 가지고 살기로 한다면 아마도 오늘까지의 나와 오늘 이후의 나와는 비슷해 보여도 아예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설령 당장 우리의 가능성이 '실측'되지 않았다 해도 괜찮다. 그것을 관측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관측되지 않아도 우린 우리의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다. 가능성이 있음을 믿는다면 우린 분명 세상에 상대성 이론에 기반을 두게 한 변화처럼 변화를 주고, 중력파 발견처럼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중력파'를 가지고 있다고,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을 믿어보자고 말하고 싶다.
겨울이 지나고 마른 가지에 새눈이 맺기 시작했다.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나고 씨앗을 남길 것이다. 거대한 블랙홀끼리 충돌해 나온 중력파도, 이렇게 작은 새눈에도 짐작할 수 없는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관측하지 않아도 이 새눈의 많은 가능성을 무리 없이 짐작, 확신할 수 있듯. 우리 자신도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