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Mar 04. 2016

S01E17 20대의 안식년을 보내며

1년의 안식년, 갭이어 딱 그 중간에서

금요일엔 내가 정말 애정 하는 웹툰 중 하나인 <진눈깨비 소년>이 연재된다. 특색 있는 작화 스타일과 독특한 유머 감각(!)에 작가의 진한 철학과 감정이 녹아있다. 3화를 보면 그중 1화엔 반드시 울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걸 소재 삼아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귀찮음에 넘어갔다. 그러다 오늘 보게 된 몇 줄의 글귀는 이 늦은 시간에 브런치에 들어오게 하였다.


미국 유학 간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미국 유학 초반엔 외모와 옷에 신경 썼지만 그들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그의 생각에 관심 있었다. 이 친구는 우연치 않은 계기로 미국에 갔다. 그전까진 그냥 전형적인 한국 학생처럼 입시를 위해서만 살았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멈춰야 할 일이 생겼고 쉴 겸 가본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한 번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아버지의 지지로 미국 유학을 결정한다(소개한 내용이 스포일러일까 고민했지만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가 그곳에 가서 깨달은 이야기가 나온다. 

네이버 웹툰 <진눈깨비 소년> 94화 중


그들은 자신의 선택한 길을 위해 시간을 썼다.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그러한 고민으로 가득한 시간이,

행복했다.


위 글귀 하나하나가 울렸다. 나도 지금 선택한 길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한다. 그 고민이 쉽지 않고 방황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행복하다. 이 글귀는 날 돌아보게 했다. 나는 지금 20대를 사는 중에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안식년이란 개념이 있다. 7년을 주기로 마지막 7년째에 1년 쉬는 것을 말한다. 일주일 중 우리가 일요일을 쉬는 개념의 년 단위이다. 


도서관에서 사회 복무를 하면서 소집 해제 후 어떻게 살지 종종 생각했다. 미래에 관해 모르긴 몰라도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1년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이 20대의 안식년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기가 7년이진 않았지만 8년째에 1년을 쉬고 있기에. 소집 해제 후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렇게 보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싶어서였다. 그땐 그냥 일하기보단 배우고픈 걸 배우고 싶었다. 그 뒤로 6개월 정도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 스피치 등을 배우며 바라던 책을 읽고 있다. 최근에서야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1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란 걸 깨달았다. 마침 딱 6개월이 지났고 7개월째다.


당장에 취업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른다. 여자 사람 친구들은 취업을 다 했고 남자 친구들은 취업했거나 준비 중이다. 그들의 방향에서 볼 때 나는 다소(혹은 상당히) 한량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래도 하고 싶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부모님과 고깃집에서 고기 먹으며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부모님도 지나가는 말로 취업에 관해 이야기하셨다. 고민했던 걸 이야기하자 부모님은 내 의견을 지지해주셨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네이버 웹툰 <진눈깨비 소년> 94화 중


유럽엔 갭이어(Gap Year)라는 게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1년 정도 이것저것 배워보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자기가 정말 무얼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한다. 다양한 경험 속에 자신의 호불호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쪽에선 20살 때 하는 걸 나는 이제야 한다. 


6개월 정도 하고 싶은 걸 어느 정도 해보면서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를 알아가고 있다. 이제야 나에 관해 알고 있다. 20년이 지나서야 내가 나를 알아간다. 그래도 다행이다. 더 늦지 않아서.


이제 남은 기간 글쓰기, 글 쓴 것들로 책 내기, 지금 배우고 있는 영어와 스피치 활용, 글쓰기 교실, '채민씨'만의 컨텐츠 제작 등을 하고 있고 해보려 한다. 이렇게 내가 하고픈 것을 한껏 해볼 시간은 앞으로 쉽게 없을 것 같다. 주어진 이 시간 순간순간을 만끽하며 살아가자. 치열히 몰입해보자. 아마 1년을 보내면 그것만으로도 '갭이어', '안식년'에 관해 할 이야기와 글감이 생길 것이니 좋다. 게다가 남은 6개월이 지나면 오늘보다 훨씬 더 나에 관해 잘 알 것이다. 나와 더 친해질 것이다. 그거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다.


매거진의 이전글 S01E16 생각을 바꾸자 축복이 내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