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안식년, 갭이어 딱 그 중간에서
금요일엔 내가 정말 애정 하는 웹툰 중 하나인 <진눈깨비 소년>이 연재된다. 특색 있는 작화 스타일과 독특한 유머 감각(!)에 작가의 진한 철학과 감정이 녹아있다. 3화를 보면 그중 1화엔 반드시 울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걸 소재 삼아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귀찮음에 넘어갔다. 그러다 오늘 보게 된 몇 줄의 글귀는 이 늦은 시간에 브런치에 들어오게 하였다.
미국 유학 간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미국 유학 초반엔 외모와 옷에 신경 썼지만 그들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그의 생각에 관심 있었다. 이 친구는 우연치 않은 계기로 미국에 갔다. 그전까진 그냥 전형적인 한국 학생처럼 입시를 위해서만 살았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멈춰야 할 일이 생겼고 쉴 겸 가본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한 번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아버지의 지지로 미국 유학을 결정한다(소개한 내용이 스포일러일까 고민했지만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가 그곳에 가서 깨달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한 길을 위해 시간을 썼다.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그러한 고민으로 가득한 시간이,
행복했다.
위 글귀 하나하나가 울렸다. 나도 지금 선택한 길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한다. 그 고민이 쉽지 않고 방황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행복하다. 이 글귀는 날 돌아보게 했다. 나는 지금 20대를 사는 중에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안식년이란 개념이 있다. 7년을 주기로 마지막 7년째에 1년 쉬는 것을 말한다. 일주일 중 우리가 일요일을 쉬는 개념의 년 단위이다.
도서관에서 사회 복무를 하면서 소집 해제 후 어떻게 살지 종종 생각했다. 미래에 관해 모르긴 몰라도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1년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이 20대의 안식년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기가 7년이진 않았지만 8년째에 1년을 쉬고 있기에. 소집 해제 후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렇게 보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싶어서였다. 그땐 그냥 일하기보단 배우고픈 걸 배우고 싶었다. 그 뒤로 6개월 정도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 스피치 등을 배우며 바라던 책을 읽고 있다. 최근에서야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1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란 걸 깨달았다. 마침 딱 6개월이 지났고 7개월째다.
당장에 취업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른다. 여자 사람 친구들은 취업을 다 했고 남자 친구들은 취업했거나 준비 중이다. 그들의 방향에서 볼 때 나는 다소(혹은 상당히) 한량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래도 하고 싶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부모님과 고깃집에서 고기 먹으며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부모님도 지나가는 말로 취업에 관해 이야기하셨다. 고민했던 걸 이야기하자 부모님은 내 의견을 지지해주셨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유럽엔 갭이어(Gap Year)라는 게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1년 정도 이것저것 배워보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자기가 정말 무얼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한다. 다양한 경험 속에 자신의 호불호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쪽에선 20살 때 하는 걸 나는 이제야 한다.
6개월 정도 하고 싶은 걸 어느 정도 해보면서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를 알아가고 있다. 이제야 나에 관해 알고 있다. 20년이 지나서야 내가 나를 알아간다. 그래도 다행이다. 더 늦지 않아서.
이제 남은 기간 글쓰기, 글 쓴 것들로 책 내기, 지금 배우고 있는 영어와 스피치 활용, 글쓰기 교실, '채민씨'만의 컨텐츠 제작 등을 하고 있고 해보려 한다. 이렇게 내가 하고픈 것을 한껏 해볼 시간은 앞으로 쉽게 없을 것 같다. 주어진 이 시간 순간순간을 만끽하며 살아가자. 치열히 몰입해보자. 아마 1년을 보내면 그것만으로도 '갭이어', '안식년'에 관해 할 이야기와 글감이 생길 것이니 좋다. 게다가 남은 6개월이 지나면 오늘보다 훨씬 더 나에 관해 잘 알 것이다. 나와 더 친해질 것이다. 그거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