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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Mar 14. 2016

S01E18 예비군 훈련의 상대성 이론

오늘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향토방위 작전 계획 훈련, 줄여서 향방작계훈련이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보통 주민센터에 모여 동영상 교육받고 동네 순찰(산책)하면 끝난다. 짬 내서 운동하기 힘들 정도로 바쁜 사회인들에겐 운동할 좋은 기회다. 우리 동네 예비군이 도는 코스엔 뒷산이 있어서 등산까지 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예비군 시간은 괜히 아까운 시간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안 가고 알바를 하면 그만큼 돈을 벌 텐데. 예비군 훈련수당은 6천 원이다. 6시간 정도 있으니 시급 1천 원... 때때로 돈, 시간, 힘, 정신 등을 다 낭비한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대 대한민국의 국민, 자랑스러운 예비역으로서 북한 괴뢰군의 공격으로부터 내가 사는 동네를 지킬 수 있음은 영광이며 애국 행위다. 


애국의 동기가 되는 나의 애국심은 가끔.. 아주 가끔 고무줄 같이 줄었다가 늘었다가 한다. 애국심이 줄었을 때 예비군을 나가면 괜스레 시간의 소중함을 배운다. 동시에 시간은 무척 천천히 간다. 


그런데 오늘! 시간이 무척 잘 갔다. 내일 있을 글쓰기 교실 생각에 교육 시간 내내 여념이 없었다. 1시에 모여서 2시까지 교육 듣는 동안 내일 생각만 했다. 교육 후에 밖으로 나왔다. 뒷산 타고 내려와 평소 하던 훈련이 끝났다. 오늘 금방 끝났단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3시였다. 이제 주민센터 복귀하면 집에 가는 건데 3시였다! 최소 6시까진 있어야 하던 예비군 훈련이 3시에 끝나다니. 다소 쌀쌀한 날씨에 우리 동 예비군 훈련을 책임지는 동대장님이 예비군들 얼른 집에 보내기 위해 착한 마음을 먹으셨구나 싶었다. 돌아와서 총과 방탄모 등을 반납하고 맡긴 휴대폰을 받았다. 알람을 확인하다 문득 시간을 확인하니 6시가 넘었다. 응????? 내 시계가 멈춘 거였다.


충격에 빠지게 한 ...


약이 다 된 건가 했는데 손목시계의 시간 조절하는 버튼이 살짝 빠졌다. 빠진 시간이 3시였다. 나는 주민센터에서 나온 시간을 2시에 한 번 확인하고 중간에 2시 반쯤 한 번 본 뒤 훈련 끝날 때까지 확인하지 않았다. 훈련이 끝났을 때 시간을 보니 3시임을 알았을 때 들떴다. 다 끝나고 괜히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떠올렸다. 실제 시간을 알게 되고 다 지웠지만.


순간 허탈했다. 실망하진 않았다. 실망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 시간과 내 시계 시간이 달랐지만 나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시계가 6시였어도 '시간 잘 갔네' 했을 거였다. 3시든 6시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시간 잘 간 건 같았다. 3시에 멈춘 시계 덕에 느낀 거지만 오늘 예비군 훈련 시간이 잘 갔다고 생각한 게 신기했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왜 잘 갔다고 느꼈을까? 아마 계속 생각에 몰입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소모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함으로 생산적으로 쓸 수 있었다. 예비군 훈련이 아니었다면 5~6시간 동안 계속 내가 해야 할 생각에만 집중할 시간 내기는 어렵다. 예비군 때는 다른 사회 업무를 못하고 휴대폰도 내야 해서 훈련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 동시에 간단한 훈련이기에 '생각'은 계속할 수 있다.


훈련 시간이 소모적이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 있음을 동의한다) 계속 그것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시간이 안 갔을 것이다. 1분은 금방 지나가지만 초침이 한 바퀴 다 돌 때까지 지켜보면 의외로 1분이 길듯. 내 시계로 시간을 계속 확인했다면 아마 '시간 진짜 안 가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진짜 시계가 안 움직였으니깐. 


예비군 훈련 시간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면서 시간의 상대성 이론을 철저히 배우고 왔다. 아인슈타인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상대성이론을 설명했었다. 내 마음먹기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앉아 있는 남자는 한 시간을 1분처럼 느낀다. 
하지만 그를 뜨거운 난로 곁에 앉혀두면 1분을 한 시간처럼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성이다. 
아인슈타인


지금은 예비군 때 흐르면 흐르는 대로 안 흐르면 안 흐르는 대로 적응하려 한다. 흐르면 금방 끝난 거니 좋고, 안 흐르면 생각할 것들을 더 정리할 시간이 있으니 좋다(훈련은 열심히 안 받고...). 사이다도 상황에 따라 '시원한' 음료일 수도 있고 그냥 '목만 따가운' 음료일 수도 있다. 이 시간도 마음에 따라 시원할 수도 있고 지겹기만 할 수도 있다. 오늘 내 옆에 있던 예비군은 내내 영어 단어를 외웠다! 


예비군 훈련 때 흐르지 않는 듯한 시간도 결국 흐른다. 국방부 시계도 결국 돌지 않던가?(내겐 그토록 오지 않을 것 같던 2014년이 왔으니!). 바꿀 수 없다면 얼른 마음을 접고 차선을 택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같은 양'의 시간이라면 '다른 질'의 시간으로 바꿔 보자. 어차피 흐를 시간이라면 좋게 흘리는 게 무조건 나을 것이니. (물론 다음 예비군 훈련 때도 이렇게 좋게 생각하리란 확신은 확실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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