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thday
나는 생일이 3월 2일이다. 3월 2일은 역사적으로 개학, 개강의 날이다. 초등학교 때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보통 친구를 초대해 생일 파티를 열었다. 나는 처음 만난 친구에게 '오늘 나 생일이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짝꿍과 말을 트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성격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할 만큼 넉살이 좋진 않다.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내게 생일은 별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해봐야 가족에게만 축하받는 날이었다.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이전보다 제법 축하를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생일은 특별한 기분을 주는 날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 생일은 다른 이들처럼 축하받을 수 없단 일종의 상실감, 열등감 등이 지금까지 이어왔기 때문일지 모른다.
Beginning Day
그러다 오늘 한 카톡을 받았다. "Happy B-day!" Birthday의 약어로 보낸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B로 시작하는 다른 단어가 떠올랐다. 오늘은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16학번 대학생들이 처음 대학교에 가는 날, 수많은 초·중·고등학생들이 새 학년을 시작하는 날이다. 1월 1일은 새해의 시작이지만 3월 2일도 새 삶의 시작이었다. 내게도 3월 2일이 '시작의 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오늘부터 내가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 3월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게 떠올랐다. 3월을 시작으로 올해 많은 일을 할 거란 기대가 들었다. 지금 다니는 학원에서 글쓰기 교실을 준비, 시작할 것이고 브런치를 통해 일상과 여행 글로 책을 낼 것이다. 내가 바라던 것들의 본격적인 태동은 3월이었다. 내게 3월 2일은 나만의 Beginning Day였다.
B 속에 다른 단어의 뜻을 생각하자 내 생일의 의미가 달라졌다. 나는 매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그것도 내 생일에! 꼭 1월에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1-2월 동안 방학이 있듯 그동안 나만의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곤 3월 1일은 공휴일이니! 3월 2일, 내 생일에 시작하는 것이다!
Blessed Day
항상 생일이 새 학기여서 축하받지 못한단 생각했던 날이 새로운 시작의 날이 될 수 있단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이날이 참 여러 의미가 있구나 싶었다. 하루 일찍 혹은 늦게 태어났으면 이런 의미가 있을 수 없다(물론 정말 그랬다면 다른 의미를 찾았을 테다). 딱 이날 내가 태어난 것이 참 축복이었다. 오늘이 축복의 날이었다.
3월 2일에 태어난 게 축복 됨을 곰곰이 생각하자 내가 태어난 자체, 자라온 자체, 지금 자체가 축복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살아있기에 이제 언제든 시작할 수 있으니깐. 매일 Begin Again 할 수 있으니깐. 그리고 그 마음을 일 년에 한 번 진하게 되새길 수 있는 오늘, 3월 2일을 보낼 수 있음이 참 감사하다.
20여 년 동안 내 생일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연히 난 생일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니 무척 신경 쓰고 있었다. 의미를 부여하지 못해 의미 없다고 느꼈다. 오늘에야 다르게 생각해보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됐다. 완전히 다른 날로 변했다. 그냥 공허한 Blank day에서 축복이 채워진 Blessed Day로 변했다.
B라는 단어 덕에 생각의 전환, 의미의 부여를 경험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부정적이고 다소 비관적으로 생각한 것이 있을 것이다. 내게 생일처럼. 그중 일부는 다른 각도로 보기만 해도 완전히 다른 걸 볼 수 있다. 산의 한쪽은 그늘져있지만 반대로 가면 녹음이 펼쳐져 있듯. 그 각도의 전환은 사소한 계기로 시작할 수 있다. 그 기회가 온다면 한 번 잡아보자. 생각을 바꾸고 관점을 바꿀 때 어쩌면 축복이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