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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Apr 05. 2016

경청의 역설 in 프레즌스

즉독즉작 1

누군가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행동이다 
-
윌리엄 유리 


왜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남이 하는 말을 그저 듣기만 하는 걸 그토록 어려워할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한마디라도 더 많이 하려 하고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서 자기를 증명하려고 한다. 자기가 아는 것 ... 등을 자꾸만 들려주려 한다. ...속마음은 '나는 당신보다 더 안다.  ... 나는 말을 할 테니 너는 들어라'이다. 


경청의 역설을 아는가? 발언하고 주장할 수 있는 일시적인 권력을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권력을 갖게 되고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 설교를 멈추고 상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1.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그 사람들에게 깊고 장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2. 사람은 자기 말에 귀 기울인다고 느끼면 자신도 남의 말을 더 경청하려 한다. 이것은 놀라울 정도로 뻔한 이치지만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이것을 잘 실천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남이 자기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끼지 않으면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활동(가령 경청)에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 조직의 리더라면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특히 중요한데, 이는 경청의 훌륭한 모범 사례를 보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프레즌스>_에이미 커디 저


요새 의견을 나눌 일들이 여럿 있었다. 돌아보니 반복되는 패턴이 있었다. 내 의견이 있는 주제가 나오면 말을 시작했다. 시작하고 나서는 계속 의견을 냈다. 대화의 양을 10으로 두면 상대가 2,3 내가 8,7 비율로 말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말했다'는 작은 성취감 외엔 남는 게 없음을 느꼈다. 상대 의견이 뭔지 기억나지 않았다.


반대로 굳이 '경청'하려 하지 않았지만 (나처럼) 계속 자기주장만 이야기하는 사람과 있을 때도 있었다. 상대가 훨씬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한 적은 이야기만 기억에 남았다. 


우린 서로 말하고 들었다. 상대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내 이야기만 했고 내 이야기만 들었다. 처음엔 난 말하려고만 했고 다음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 주장만 확인하다 끝났다.


왜 그렇게 대화했을까?라는 의문이 채 남아있을 때 <프레즌스>라는 책을 읽었고 의문에 답이 나왔다. 나는 상대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했고 과시하려 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마음을 그대로 묘사했다. 저자는 내가 더 안다고 과시하는 태도론 어떤 힘도 낼 수 없다고 한다. 저자가 말한 경청할 때 일어나는 두 가지 일에 내 경험을 엮어봤다.


경험적으로 그 말을 이해했다. 내 이야기로 누가 설득된 것도 아니고 내게 긴 이야기를 했다고 내가 설득당한 것도 아니었다. 1번을 읽으며 내가 설득당한 경험을 기억해봤다. 한 분은 내 이야기를 쭉 들었다. 몇 마디 툭 던졌다. 내 말에 답이 있었고 그분은 살짝 짚었을 뿐이다. 내가 말했으니 내가 무를 수 없었다. 설득당했지만 '당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탄식의 '아', 침묵의 '...', 깨달음의 '!'가 있었다. 


설득의 힘은 그분의 입이 아니라 귀에서 나왔다. '말하는' 힘보다 '들어주는' 힘이 중요함을 생각했다. 나의 말을 들어주니 둘 사이 '신뢰'가 형성됐다. 신뢰가 있으니 몇 마디에도 힘이 쉽고 더 강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2번도 요새 경험했다. 한 영어 독서 토론 모임을 몇 달 하고 있다. 그러다 알게 된 한 분을 보며 '경청'을 배웠다. 그분은 들을 때 상체를 기울이며, 눈빛은 진심으로 대화에 몰입했고, 상대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위 책 중 줄리앤 무어의 태도를 따왔다). 내가 말할 때는 물론이고 다른 이가 말할 때 보면 정말 집중해서 듣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말할 때 모든 신경을 내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가 말을 할 때 내가 어떻게 딴청을 피울까? 나 또한 그분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해 들었다. 그분의 태도를 보며 '경청'의 살아있는 가르침을 배웠다. 그 후로 나도 진지한 회의에서 사소한 잡담까지 가능한 경청하려고 한다(물론 처음 사례 때는 잊고 있었..). 


내가 만약 처음 사례들에서 경청하려 했다면 대화의 모습은 달라졌을 것이다. 보다 더 서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보다 더 서로의 생각을 알았을 것이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게 대화일 텐데 경청하지 않으면 대화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나와 대화하는 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대화의 본질일뿐더러 소중한 시간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며 상대에 대한 최선의 예의일 것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기쁜 만큼 상대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면 상대도 기쁠 것이다.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면 더 기쁠 테다. '합주'처럼 대화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소소한 일상 이야기부터 합주하듯 서로의 '연주'를 경청하며 맞춰 대화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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