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공지

순간을 소중히, 를 배우는 여행

런던 2일 차

by 채민씨

프롤로그 000

영국 [런던]

001 인천-도하-런던 첫날

002 런던 둘째 날

프랑스 [파리]

포르투갈 [포르투]

포르투갈 [리스본]

스페인 [세비야]

스페인 [바르셀로나]

에필로그 100




하루 종일 빡세게 걸어서였을까 꿀잠 잤다. 시차 적응 끝. 알람 없이 8시 기상했다. 씻고 나갈 준비 한다. 아직 캐리어 안에 짐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이 안 되니 계속 꺼냈다 넣었다 하느라 준비에 한 시간을 썼다. 날이 좋아 선글라스를 낄 수 있을 것 같아 렌즈 끼기로 한다. 어제 너무 추레하게 다녀서 사진 찍힐 맛이 안 났다. 오늘은 깔끔히 챙겨 입었다. 선글라스도 가방에 넣고 출전 준비 완료.


어제 샤워하고 자서 다시 샤워할 필요가 없었다. 여긴 한국에서 쓰는 샤워 호스가 없고 샤워 부스 안에 해바라기 샤워기만 있다.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샤워실 열어두고 머리 감아야 했다. 물 안 튀기고 한다고 하는데 포즈가 뭔가 살짝 민폐 끼치는 느낌. 감고 오니 아직 몇 명 자고 있다. 드라이기 언제 쓰나 기다리다 다 일어날 즈음에 썼다. 소리가 큰 드라이기라... 머리 말리고 렌즈 끼러 왔다. 세면대 바닥과 거울 사이가 멀어 처음엔 잘 못 꼈다. 그래도 연습한 덕에 이제 익숙해졌나 보다. 전보다 금방 낀다. 출발!


다시 보니 회색빛 가득했구나


DSC00508.JPG 영국와서 처음 본 자전거 거치대, 핸들과 안장을 기댈 수 있어 안정적이다
가게마다 사진 찍는데 갑자기 손 흔들어준 이, 고맙다


일단 먼저 쓰리심 가기로 했다. 쓰리심에서 심카드를 사야 동선대로 검색해서 움직일 수 있으니. 쓰리심 가고 근처 카페에 가서 브런치 먹으며 계획 짜기로 한다.


걸어 다니며 느낀 건데 자전거 헬멧 착용률이 굉장히 높다. 법으로 정한 건가? 자발적으로 착용하는 건가? 날이 좋아서일까 벤치에 앉아 책 읽는 사람도 제법 보인다. 내 나이 근처로 보이는 노숙인?도 자주 본다. 신호등이 없는 곳에선 보행자 먼저 지나가게 차들이 바로 멈춰준다.


지나가다 발견한 서점. 자기 색이 있는 서점은 언제나 기분 좋다. 하나 사서 읽고 싶다. 페미니즘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고 나서, 오기 직전에 한국에 여러 일들이 있었다. 보고 생각하면서 공부가 능사는 아니지만 공부해야만 할 것 같단 생각이 든 분야였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발견한 책. 다시 보니 1+1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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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0520.JPG 드디어 발견한 쓰리심 매장. 심카드 사서 장착하고 근처 카페를 둘러본다.


DSC00521.JPG 라떼와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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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겸할 수 있는 데로. 한 빵집을 발견했다. 주문하고 먹고 나오는 동안 한국인이 한 명도 안 옴. 로컬 카페인가. 건너 자리에 꼬마가 앉았는데 다 묻히며 먹는 모습이 졸귀.. 여기도 물티슈가 필요하구나! 할머니랑 같이 온 아이였다. 하도 귀여워서 계속 보고 있었다. 할머니도 보는 걸 느끼셨는지 가벼운 인사까지 하고 아이에게 인사하라고 하셨지만 부끄러워해서 못 했다. 뭔가 여유를 느낀다. 여유 가득! 빵, 커피 둘 다 짱맛이었다. 한국에 있을 땐 집 주변에 프랜차이즈만 있어서 맛있는 빵을 잘 못 먹었는데. 책 가지고 다녀도 되겠다 싶었다. 일찍 일어난 덕인가!


이 여유를 누리기 전에 살짝 마찰이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누나랑 자주 밖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 음식이 나오면 나는 한 두 컷 정도 찍는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누나는 이왕 잘 나오게 찍으려고 나보단 더 찍는다. 한국에 있을 땐 별 생각 안 들었는데 여기 와선 뭔가 걸렸다.


실제 시간이 오래 걸린 게 아닌데도 갑자기 음식 사진을 너무 오래 찍는단 생각이 들었다. 먹을 음식을 나도 찍기 때문에 찍는 행위 자체는 공감한다. 동시에 나는 어떤 음식이 나올 때 먹어야만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커피도 마찬가지. 뜨거울 때부터 식을 때까지 달라지는 맛이 있다. 요리사가 조리된 음식은 겉이 식은 걸 내어주지 않는다. 먹기 좋은 온도와 때가 있으니깐. 그때를 놓치면서 까지 담아야 한다면 이건 밥 먹으러 온 건지 밥 찍으러 온 건가 고민했다.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해서인지, 다른 가치관이 부딪혀서인지 내가 뭔가 꽁해 있었다. 누난 누나대로 그런 내 모습에 눈치 보며 찍느라 스트레스받고. 누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왕 이렇게 왔는데 좋은 모습으로 담아서 추억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싶었다. 납득할 만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찍는 거에 여유를 갖고, 누난 전보다 조금 덜 찍는 정도로 조율한다. 이왕 온 거 추억을 담을 수 있게 시간을 쓰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이 부분은 우리 여행 전반에서 꽤 오랫동안 중요한 마찰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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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0623.JPG 영국 개그

다 먹고 나온다.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가기로 했다. 앞에 가니 가방 검사를 한다! 오... 보안이 철저하네! 막상 보안 검사하는 곳에서 가방 열어서 보는 것까지 하는데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웃으며 보내준다. 그냥 의례적으로 보는 건가 싶다. 들어가자마자 크다, 꽤 넓다는 느낌. 좋아하는 이집트 문명이랑 고대 문명 쪽 본다. 한국 쪽 보러 갔는데 별 거 없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도슨트 하며 들어야 제대로 누릴 거 같긴 한데 그러면 하루를 다 써야 할 테니 패스. 그래도 이곳저곳 구석구석 기념품 가게까지 알차게 본다. 나와서 소호로 가기로 한다.


거리 사람들도 다 주목했던, 간지 폭풍 할아버지
차이나타운
DSC00721.JPG 안에는 흑염ㄹ..아니 두리안이 잠들어 있다
DSC00723.JPG 두리안은 밖에 두어야만 하는 악마(냄새)의 열매
육개장 비주얼

가는 거리거리가 이쁘다. 느낌이 좋다. 연남동의 유럽 버전? 혹은 이게 전형적인 유럽풍인가? 이곳 저것 돌아다니며 사진 찍는다. 차이나 타운 쪽 가기 전에 쌀쌀하기도 하고 출출하기도 해서 끼니 때울 것을 찾는다. 똠양꿍 치킨을 길거리에서 먹는다. 신기하게 맛남. 먹고. 차이나 타운 쪽 가는데 다리가 슬슬 한계. 얼마 못 버티는구나ㅠ 다시 플랫 화이트 와서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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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다시 일어나 중국 슈퍼에 왔다. 다른 데도 마찬 가지지만 중국은 중국스러움을 아주 잘 표현한다. 차이나 타운에 오니 거리 공연이 보인다. 댄스팀이 강남스타일 노래를 틀고 추지만 이미 한 물 간 노래란 느낌이 든다. 사람들 반응이 하나도 없다. 춤도 그냥 그렇고. 그 옆엔 허술한 소녀가 전자피아노와 마이크를 두고 연주하며 노래한다. 음정은 흔들리고 연주는 무너지기 직전이다. 용기와 풋풋한 귀여움에 사람들이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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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앤엠 매장에 왔다. 얼마나 브랜드화가 잘 됐으면 초콜릿 브랜드 건물이 다 있나. 어렸을 때 먹은 '비틀즈'와 달리 이 초콜릿은 색깔 별로 맛이 다르지 않다. 나는 그냥 그랬지만 모르긴 해도 그래도 인기가 많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엠앤엠 크리스피를 먹었는데 신세계. 둘러보니 엄청 잘 꾸몄다. 연구실도 있고, 시식도 아주 즐겁게 하게 해준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거이 구경할 만하다. 거기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wake me up이 흘러나와서 음악에 취해.. 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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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푸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같은 데랄까. 이마트보단 작지만 슈퍼보단 크다. 필요한 물건은 대개 여기서 구할 수 있고 편의점 등이 잘 없는 런던에선 여기가 만물상이라 할 만하다. 쉴 수도 있고 먹을 것도 많다. 둘러보면 의외의 보물들이 있다.


피카델리에서 러셀로 가는 지하철. 책 읽는 비율이 높다. 혹은 신문이든 뭐든 읽는다. 같은 스마트폰을 쓰는데 쓰는 양태가 다른 이유는 뭘까? 다리가 길다. 구조가 다르단 생각이 든다.


근처 큰 슈퍼 와서 저녁거리 사가려는데 뭐 사갈지 고민한다. 여유롭지 않기에 가성비가 좋아야 한다. 샌드위치 사려고 집는데 한 흑인 여성분이 이따 20분 후에 사면 세일한다고 꿀팁을 줬다. 세상에. 한 바퀴 다 돌고 오니 3파운드 샌드위치가 0.45 페니로! ㄷㄷ. 신나게 사옴. 인사하려 했는데 벌써 가신 것 같다. 슈웹스 진저에일을 처음 봐서 샀는데 맛난다. 커피우유 덕후로서 하나 샀는데 비싸고 걸쭉하다.

방에 돌아와 이제야 쉰다. 다리가 진짜 아프다. 행군할 때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 행군과 다른 의미로 굉장히 힘들다. 사진용으로 고른 신발이었는데 사진 안 찍고 그냥 걷기 편한 러닝화 가져올 걸 싶었다.


누나랑 사진 관련으로 많이 다툰다. 여행은 서로의 가치관의 재발견이란 생각을 했다. 극명히 드러나기에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전에 알 수 없는 부분들이다. 일상을 살면서 결코 마주하거나 마주칠 일이 없는.


한국에 있을 땐 그냥 지나가던 먹는 시간들이 여행에 왔을 땐 소중히 머물게 된다


여행 초기라 여행 경비 운영 때문에 먹고 싶은 걸 다 먹어보긴 어렵다. 가성비 좋은 것들 위주로 먹어야 했다. 하루 종일 걷는 만큼 은근 출출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여행에서 먹는 곳과 묵는 곳은 여행의 질을 결정하는 큰 요소 중 하나라 생각한다. 어떤 면에선 먹방 여행이 여행의 한 축일지 모른다. 누군간 사진을 남기기 위해, 누군간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간다지만 그들도 먹는 자체를 포기하진 못 한다.


오늘 거창한 음식을 먹진 않았다. 빵과 초콜릿, 똠양꿍과 샌드위치 등을 먹었지만 이 날이란 시간과 런던이란 장소와 누나와 함께라는 사람이 어우러져 유일한 경험으로 남았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모든 순간에 값을 매기기 어려운 가치들이 새겨진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땐 그냥 지나가던 먹는 시간들이 여행에 왔을 땐 소중히 머물게 된다.

그런 면에서 누구와 무엇을 먹는가도 중요하고 어떻게 먹느냐도 중요하다. 살기 위해 먹는다. 살기 위해 여행을 한다. 산다와 먹는다, 산다와 여행한다 앞에 무엇을, 어떻게에 따라 각자의 삶처럼 결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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