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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Sep 25. 2016

많이 읽기를 넘어 깊이 읽기로

많은 지식을 섭렵해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불분명해지고, 양적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문장론 인용.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저 중


책도 삶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오래 살고 많은 활동을 해도, 내 것이 되지 못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그 누적된 양에 의미가 없진 않겠지만. 책을 100권 읽어도 1년에 기억에 남는 책이 거의 없다면, 심지어 기억나는 가르침도 적다면, 적은 것 중에 실제로 해보고 내 삶에 남긴 게 적다면 무슨 의미일까.

요샌 무작정 많이 읽기 보단, 정말 읽고 싶은 책 하나를 골라 천천히 읽는다. 다 읽고 다시 한 챕터씩 돌아보고 있다. <다시, 책은 도끼다>는 그 첫 번째 과정이다.

책 정리도 비슷하다. 예전엔 시험 보듯 일단 밑줄 쳤던 모든 문장을 옮겨 적었다. 시험 땐 다시 보겠지만 독서는 시험이 아니니 다시 보질 않는다. 밑줄 친 문장을 보며 왜 밑줄 쳤는지, 그땐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돌아볼 땐 밑줄 친 모든 문장을 정리하지 않기로 한다. 읽을 땐 잠깐 사고의 일렁임을 주긴 했지만 출렁임까진 아닌 건 넘어가기로 했다. 내 사고와 감정을 출렁이게 할 문장들을 꼽아 생각을 담기로 했다.


'호학심사 심지기의,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안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우리에게는 심사, 깊이 생각함이 빠져 있는 듯합니다. 많이 읽는 게 제일이잖아요. 1년에 100권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심사할 시간이 없죠. 결국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양적으로는 많이 읽었을지 몰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책 속의 지식이 진짜 내 것이 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올해 읽었던 책들을 쭉 적고 평을 달아둔 글들은 그냥 읽은 후 단상에 불과하다. 그 단상을 풀어 사고

에 녹여내거나 삶에 담아본 경험이 드물었다. 그 책들은 스쳐 지나갔을 뿐, 또 내 서재와 도서관에 꽂혀 있을 뿐 내 삶엔 남아 있지 않았다.

성과는 내려두고 성숙을 위한 숙성을 


1년에 100권 정도 읽는다는 말은 좋아 보이는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읽어낸 책만큼 살아가고 있는가'란 마음 속 질문에 답하지 못하니 그 100권이 버거워졌다. 100권을 읽었다는데 달라진 건 말밖에 없었다. 어느새 양을 채우는 성과에 시달리게 됐다. 이제 성과는 내려두고 성숙을 위해 숙성을 해야 겠다. 내가 제대로 읽은 책이 뭔지 모르는 것보다 차라리 10권을 읽는 게 낫겠다 싶다. 또 누군가 내 삶을 볼 때 그 10권의 가르침들이 겹쳐 보이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읽는 책, 내가 보내는 하루도 그랬으면 좋겠다. 많은 걸 읽진 못해도, 많은 활동을 하진 못해도 천천히 읽어가며 느긋이 지내가며. 깊이 읽게 읽어내 내 삶에 서서히 스며들게. 물들어간 속도처럼 내 삶에 여유가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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