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5일 차
프롤로그 000
영국 [런던]
001 인천-도하-런던 첫날
002 런던 둘째 날
003 런던 셋째 날
004 런던 넷째 날
005 런던 다섯째 날
프랑스 [파리]
포르투갈 [포르투]
포르투갈 [리스본]
스페인 [세비야]
스페인 [바르셀로나]
에필로그 100
오늘은 여덟 시쯤 기상했다. 옆 침대 친구들은 다 일찍 나갔다. 나도 준비해야지. 해어드라이기 쓸 곳이 마땅치 않다. 내일은 방에서 해야 할 듯싶다. 아침부터 카페테리아 같은 곳에서 하기엔 사람이 많다. 당 떨어지면 안 되니 킨더 초콜릿 준비하고. 어제 산 검은 져지 입고! 렌즈도 끼고 마! 다 했다! 이게 아니라.. 다시 노팅힐로 갈 준비를 한다.
가기 전에 숙소 왔을 때부터 여기서 브런치 먹어야지 했던 숙소 앞 카페에 드디어 갔다. 거기서 아몬드 크로와상이랑 chorizo tortilla와 카푸치노 먹는데ㄷㄷ. 이제 지하철을 탄다. 오늘 사진 많이 찍을 각오 해야지.
노팅힐 시장에 도착했다. 사람 짱 많다. 어제 와서 다행이다 진짜. 어제 찍은 사진은 오늘 찍을 수 없을 테다. 어제 텅 빈 거리 대비 오늘은 꽉 차 있다.
쭉 돌며 이곳저곳 사진 많이 찍는다. 버스킹 하는데 흥 많은 아는 누나가 생각나는 흥 많은 흑인 여성분과 색소포니스트의 즉흥 공연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찍었다. 이 동네는 골목마다 버스킹 하는 듯싶다.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 찍다 보니 나도 누군가의 풍경이 되는 데에 여유를 가질 필요를 느낀다. 한국에 있을 때 외국인들이 이곳저곳 찍을 때 거부감을 가졌던 기억이 났다. 그들에겐 다시 못 올 풍경을 찍은 걸 텐데.
시장 끝쯤에 있는 카페에 갔다. 힙한 곳인 듯싶다. 동네 사람들, 패피들이 모인 듯하다. 우리 오고 나서 줄 서기 시작한다. 아이스 라떼 마신다. 왠지 살살 배가 아프다. 그 덕에 사진 찍기 쉽지 않았고, 누나도 그걸 느꼈다. 뭔가 서로 안 좋아질 기미가 보였지만 잘 넘어갔다.
나와서 다시 걸어와 버스 타려고 했는데 지도가 잘 안 잡힌다. 또 잘못 탈 듯해서 안전하게 튜브 타러 갔다. 가는 길에 세쥬릭에게 인사하려 했는데 없다.
자연사 박물관에 왔다. 어릴 때 많이 좋아했던 공룡..! 티라노..! 이구아돈.! 트리케라톱스..! 등이 있지만 기억 속 미세한 끌림의 잔해 말고는 이젠 공룡에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스윽 돌다가 나온다. 옆에 있는 과학박물관. 체험 거리가 많다고 했는데 그다지 끌리는 게 없어서 여기도 스윽 돌다 나온다.
하이드 파크에 왔다. 사람 많다. 한적하면서도 경쾌한 곳이다. 에너지가 있다. 평온함과 역동성이 느껴진다. 자전거는 벨도 안 울린다. 크럭션도 안 울리는 이들이다. 끝에 바짝 붙어서 탄다. 사람이 먼저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사람들이 무단 횡단은 쉽게 하지만 차의 신호는 철저히 지킨다. 잔디에 앉으려 했지만 벌레가 있어서 의자에 앉는다. 쉰다. 노팅힐에서 산 애플파이 먹고 그제 산 진저비어를 먹는다. 내 스타일은 진저에일인 듯. 마시고 근처 호수 가서 오리, 거위, 백조 보며 거닐고 온다. 이제 테이트 모던 가는 중. 졸리고 배고프다.
밀레니엄 브릿지에 도착한다. 세인트 폴 성당은 그냥 지나가다 걸렸는데 ㄷㄷ 크다. 테이트 모던. 사로잡는 그림들이 있다. 설명 듣지 않아도 압도당하는 그림이. 피카소 그림이 그랬다. 원래는 이게 무슨 그림인가 했었는데 오늘은 빨려 들어갔다.
6층 바에 가서 사이다랑 맥주랑 시킨다. 뷰 좋은데 앉으려고 노력해서 성공. 오징어랑 갈릭마요 소스 맛나게 먹는다. 이래저래 이야기하다 갑자기 논쟁이 시작된다. 누나가 지나가는 말로 한 표현에 내가 심각하게 반응해서 일이 꼬여버린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 나온 불똥에 다 헝클어졌다.
이때는 진짜 불행했다. 이전에도 불행감을 느꼈다. 누나도 그랬겠지만. 조금씩 쌓인 회의와 불만의 폭탄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서로 다른 가치관에 부딪힘을 계속 느껴야 한다니. 누나에겐 순간을 담기는 게 중요했고 나는 그 순간의 찰나를 즐기는 게 중요했다. 나는 맛있는 커피가 식기 전에 마셔야 하니 얼른 찍고 마시는 편이고, 누나는 다시 못 올 곳이니 조금 식더라도 멋지게 남겨야 하는 편이었다. 한국이었다면 그냥 좀 기다리고 말면 될 것을 여기선 내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게 됐다. 서로 그 순간이 굉장히 중요했으니깐.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 찍고 그냥 눈으로 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한 달이 길어진다.
다시 어떻게든 풀어내니 기분은 내려온 반대로 좋아진다. 함께함의 즐거움과 유익이 있다!(태세 전환!) 밀레니엄 브릿지에서 런던아이까지 걷는다. 날이 풀리니 걷기 좋다. 진짜 짱이다. 나중에 한강을 이렇게 천천히 걸어도 좋겠다. 하루 날 잡아서. 마침 노을 골든 타임이라 뷰가 ㄷㄷ. 런던 아이 이쁘다. 천천히 돈다. 빅벤을 보니 압도적인 느낌이 있다.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압도된다.
홍콩에서 온 친구가 사진 찍어달라 했다. 첨에 한국인이냐고 묻길래 한국인줄 알고 한국인끼리 영어로 대화하기 뭐해서 한국어 썼더니 국적을 먼저 밝힌다. 친구들이랑 왔다고 한다. 누나 홍콩 좋아한다고 이야기해줘서 잠깐 같이 이야기. 친구들이랑 왔는데 친구들은 피곤해서 쉬고 혼자 있다고 한다. 해외에선 헤어질 때 악수하는 걸 배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내일 가야지. 셀카는 진짜 많이 찍어봐야 잘 나오는구나 싶다. 여기 풍경을 배경으로 찍어보려 했는데 도통 안 찍어 본 거라 어렵다.
러셀 스퀘어 역 앞 테스코라는 슈퍼에서 샌드위치 사 먹음. 싼 데 서비스는 없다(사람이). 돌아와서 씻는데 피곤해서 정신없이 놓고 온 게 많아서 여러 번 왔다 갔다 한다. 문 옆에 콘센트 찾아서 거기서 말리려 했는데 전기 안 들어온다. 내일 일어나서 말려야 할 듯하다. 졸리니 다 귀찮다. 얼른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