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2일 차
프롤로그 000
001 인천-도하-런던 첫날
002 런던 둘째 날
003 런던 셋째 날
004 런던 넷째 날
005 런던 다섯째 날
006 런던 여섯째 날
007 파리 첫째 날
008 파리 둘째 날
포르투갈 [포르투]
포르투갈 [리스본]
스페인 [세비야]
스페인 [바르셀로나]
에필로그 100
어제 피곤했는지 10시 넘어 일어난다. 푹 잤다. 중간에 깨긴 했다. 아주 잠깐. 다들 준비하는 통에 소란스러워서. 여러 꿈을 꿨는데 기억이 안 난다. 이제 누나랑 둘만 방에 있다. 다소 어색함을 풀려고 누나가 이야기를 한다. 마치고 그냥 준비한다. 내 폰에서 사진 옮기고. 지운다. 침대에 충전기와 멀티탭, 탭까지 두고 잤다. 충전하려고. 앞으로 멜 가방 말고 에코백을 챙겼다. 그렇게 위험할 것 같진 않아서.
누나 사진도 옮기려는데 워낙 많고 가져간 태블릿도 느려서 끝내 못 옮기고 나온다. 중간에 나와야 할 거 같았지만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다. 먼저 말하길 기다렸다. 사진 비우는 건 사진 찍기 위함이니 그걸 방해하면 안 될 테니깐.
나와서 걷는데 카메라 충전기를 놓고 왔다. 제길. 뛰어서 가져왔다. 죄인이다. 내가 죄인이다. 아침 코스 이야기해주는데, 늦게 일어나서 라는 단서를 붙인다. 결국 내 잘못이다로 끝난다. 돈도 카메라도 가져갔다. 위치도 자기가 찾았다. 내가 할 일이 없다. 느낌이 좋지 않다. 많은 생각을 한다. 들러리란 생각.
이제 무슨 시장으로 간다. 오늘 하루 12시간 남았다. 얼마 남지 않은 아쉬움과 버틸 시간이 줄어드니 기쁨이 같이 온다. 좋은 사진을 남기려면 좋은 카메라, 좋은 복장, 때와 장소에 맞는 옷, 구도, 노출 잡는 센스, 모델과의 교감 등이 필요하다. 이걸 단기간에 대충 혼나면서 키울 수 없고 자라길 바랄 수 없다. 난 키워지고 자라지고 있다.
서로 맞춰가기 어렵다면 한쪽이 얼른 맞춰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정황이 내가 은택을 얻은 입장일수록 더욱. 생각을 빼고 하라는 대로만 하면서 동시에 내 할 일을 찾는 주체성도 필요했. 주체적 일수 없다면 혼나도 무탈히 넘길 넉넉함을 가져야 할까. 군대 같구나.
파리는 일단 멋이 있다. 멋있는 도시. 옷들 잘 입고. 예술이 느껴지고 다들 흥 있고. 파리는 오토바이를 많이 탄다. 대개 인상 쓰고 있다. 태양 빛이 세서 그런가 싶다. 12시 밥 먹을 쯤에 분위기 다시 누그러진다. Merci란 곳 근처에서 밥 먹음. 런던보다 무단 횡단이 적다. 무단횡단을 할 수 없게 차들이 빨리 다닌다. 서로 작은 법들을 쿨하게 어기는 느낌.
이렇게 치고받고 그래도 둘이 다닐 때 장점이 있다. 둘이 다닐 때 좋은 점은 서로 남겨주는 사진과 여러 메뉴를 먹어볼 수 있단 것. 전자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후자는 진짜 중요하다. 혼자 2인분 시켜 먹다 남길 만큼 호사롭지 않으니.
런던과 파리에서 느낀 건 시선의 농도가 다르다. 타인의 복장에 관해 쳐다보는 방식이 다르다. 한국에선 짧게 입거나 파이거나 몸매가 좋으면 달라붙는 시선들이 있다. 나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관찰해본 나는 그런 시선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유럽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 한국만큼은 아니다. 바라보는 의도가 다르기에 농도가 다르단 생각이 든다. 그냥 쳐다보는 것과, 어떤 마음을 갖고 보는 것의 차이.
파리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많이 마신다. 에스프레소도 테이크 아웃하는구나. 거의 테이블마다 나와 있다. 여기 와서 테라스에서 많이 먹는다. 나중에 한국 와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영감 얻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봤다. 그는 내가 있던 몽마르뜨에 산다고 한다. 테라스가 있는 식당에서 에스프레서 마시며 책을 읽더라. 내가 있던 날에 있었을 지도. 와 있는 2일 동안 날씨는 최고다. 비 온다는 전망이 있었지만 틀려서 다행이다. 당 떨어지면 먹으려고 챙겨 온 킨더 초콜릿이 다 녹았다. 10시간 남음.
연어샐러드, 햄치즈오믈렛 먹었다. 음식 먹는 예절로 한 소리 들었다. 분명 필요한 도움인데, 막상 들을 때 좋을 리 없는 게 좋은 잔소리다. 내가 느끼기에 어떤 예절에 관한 이야기는 남들이 어떻게 보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어떻게 보이는가가 소명이면 곤란하다. 자존이 없다. 남들의 인정이 자신의 존재를 만든다. SNS의 위험도 그렇다. 남들의 찬사와 이쁜 사진을 인정받는 그땐 기쁠지 모르지만 행복함은 어떨지 알 수 없다. 추억할 사진은 있지만 행복한 기억은 있을지.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담기 위해 맛있게 먹을 때를 포기해야 한다. 나중에 기껏해야 한 두 번 볼 사진 한 장을 위해. 찍으러 온 걸까 담으러 온 걸까. 여행의 본질은 무얼까. 이 부분이 계속 부딪혔다. 이런 작은 치찰음이 계속 갈등의 소리를 만든다.
메르시에 왔다. 괜찮은 편집숍이다. 오이수박향 캔들 샀다. 향을 맡자마자 내 거란 생각을 했다. 아이폰 케이블이 인식이 잘 안 되어 사고 팠는데 가격대가 있다. 조금은 분위기가 나아졌다.
걸어서 보쥬 공원? 에 왔다. 이쁘구나. 잠시 앉아서 잤다. 허리가 다시 아파온다. 약효가 끝나버렸다. 약은 얼마 없는데. 밤까지 있으려면 숙소 가서 약을 먹고 가져와야겠다. 이게 낫게 하는 게 아니라 고통만 가리는 것뿐이라는 게 걸린다. 중요한 건 나아져야 하는데. 아픈 상태를 참게 하고 더 지속되게 하는 게 앞으로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다.
공원에서 나와 루브르 가는 길. 파리 지하철은 엄청 빠르다. 가속 밟으시는 듯. 여긴 스크린 도어도 없는데. 6시간 남았다. 프랑스엔 아이스커피를 안 판다고 한다. 해봐야 스타벅스 정도. 대부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이유가 있었... 프랑스 커피랑 빵은 언제 먹어보나.
역사에 비둘기가 있다. 힘들어 기어 오면서라도 잠깐 숙소에 들른다. 약 먹자마자 괜찮아졌다. 한 달 내 면역 생기지 않겠지. 중요한 건 포르투에서 약을 구할 수 있냔 건데. 파리에서 사는 게 나을 수 있다. 나오면서 젤라또를 먹었다. 망고 딸기 커피맛. 세 가지 색으로 시키니. 꽃 모양 만들어준다. 맛있는데 빨리 녹아서 음미할 시간이 없다.
루브르 잠깐 찍고 샹들리제 공원 갔다가 개선문. 갔다가 다시 루브르 야경까지 가보자! 시티맵퍼, 구글맵 없었으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헤매고 다닌 수많은 길들이 아찔하다. 문명의 도움이 고맙다. 어설프게 있는 그대로 불어 읽지 말고 영어로 그냥 말하자. 그게 낫다. 안 그럼 못 알아듣는다. 루브르 가는 오페라 역.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 폭발. 책 읽고 싶다. 지하철에서!
루브르 멋있다. 그 유명한 루브르. 때마침 날씨가 진짜 좋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름에서 빛내림까지 있었다. 실컷 찍다가. 누나 찍고 있는데 물을 살짝 맞았다. 분수에서 나온 물인가 했는데 소나기 비스무리였다. 확 쏟아지면 어쩌나 하고 튀려다 그냥 찍었다. 다행히 얼마 안 내렸다.
나오면서 루브르 건물 쪽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렀다. 루브르 보이는 곳에 앉으려 요청했는데 아예 안 보이는 데로 데려다줬다. 우리 오기 직전에 할머니분들이 화내면서 나가셨다. 우리 안내 한 핑크 옷 서버가 그들과 우릴 화나게 한 거다.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세주릭이 말한 무례가 이건가! 이거 말곤 다른 건 다 좋았는데! 다른 매장은 프랑스인이 아니라 그런 건가!
그냥 나와서 샹델리제로 간다. 거리 좋더라. 개선문 쩐다. 가면서 찍고 중간에 밥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다 우리에게 살갑게 대한 아랍계 서버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제 먹은 파스타와 치킨 피자와 물을 먹었다. 둘 다 맛있는데 양이 많아서 남겼다. 서비스가 인상 깊어 사진도 살짝 찍었다. 물이 9유로였다. 콜라가 8 유로라 안 먹었는데. 먹고 나와서 개선문 찍고 입성.
개선문을 오르는 계단 길은 2-3분 정도 걸린다. 생각보다 빡세진 않다. 사람 많으면 아마 꽤 오래 걸릴 듯싶다. 술술 올라갔다. 올라갔을 때 9-10시였고 해가 지고 있었다. 뷰가 와우. 보고 에펠탑 보이는 쪽에서 잘 나올 때까지 계속 찍었다. 결국 도로에 불이 들어오고 에펠탑 이벤트 하는 것까지 찍고. 폐장해서야 내려왔다. 내려와서 뒷 문으로 개선문 찍는데 경찰의 제지. 알겠다고 하는데도 민다. 아오.
이제 다시 루브르 가는 길. 야경 이쁘다. 실컷 찍고 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목마르다. 커피라도 마시고프지만 없다ㅠ 지하철 자판기에서 탄산수 먹으려 지만 동전 인식이 안되어서 그냥 물 마신다. 그거라도 어디인가.. 숙소로 가자! 와서 씻고 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