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민See the World
이 글의 목적은 여행지 정보 제공이 아닙니다. 저는 제가 멈춰 서서 찍은 장면들을 보며 몇몇 생각들을 했습니다. 여행할 때 정보만큼이나 '시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제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숨은 의도는 각자의 '시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권하는 글입니다.
런던 노팅힐 역에서 내려 걸어오다 만난 센스 있는 입간판. 한국에서도 종종 입간판으로 유명한 곳이 있던 게 생각났다. 대충 해석하자면 '똑똑한 사람도 종종 바보처럼 취할 시간을 안 가질 수 없다' 또는 누구나 취할 시간이 필요하다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당연히 이 간판은 펍 앞에 있었다. 간판은 이 가게에 나와서 봤다. 들어갔을 때 느낌이 무척 좋은 곳이었다. 보고 들어갔다면 더 좋았겠다.
주로 식사하러 들어간 펍이지만 영국 사람들을 보니 주로 혼자나 둘이 와서 안주 없이 그냥 맥주만 서서 마시다 가더라. 신기한 모습이었다. 한국은 요새야 방송에서 언급되며 조금씩 퍼지는 느낌인데, 여기는 이미 혼술 문화가 정착해있다. 취하지 않을 정도로 딱 절제해서 마시는 모습.
여행 중에 하루 종일 오가다 보면 어디 앉거나 누워 한 숨 자고 싶을 때가 있다. 바쁘고 바쁜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 그 복잡한 곳 사이에 한가한 자리를 찾아 여유를 누리는 모습이 부럽다. 한 숨의 잠이 한 켠에 있는 피로를 전부 사라지게 해주길.
오늘 하루 종일 쌓인 다양한 마음의 짐들이 많다. 여러 모임, 만남, 마음이 복잡하게 엉켰다. 저녁 먹은 뒤로부턴 엉클어진 마음이 쉽사리 풀어지지도 가라앉지도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당장 쓰리고 아픈 것은 견뎌야 한다. 이 밤, 한 숨 자고 나면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까.
매주 이 시장엔 사람이 그득하다. 각기 다른 국적과 성격의 사람들이 모인다(한 번 왔지만 매주 그럴 거란 예상이 어렵진 않다). 한국에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 중에서도 특이한 이들이 많은데 여긴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현지인 뿐 아니라 수많은 세계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 생기는 내공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툭툭 묻고 스쳐 지나치는 와중에도 위트와 친절을 잃지 않던 분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지에선 때때로 한 명소보다 한 사람이 더 그곳을 아름답게 기억하게 한다.
하루 종일 걷고 찍다 보면 지치기 쉽다. 중간중간 잘 쉬어줘야 한다. 런던 노팅힐 마켓을 쭉 오가다 보면 지치기 쉽다. 볼 것도 많고 사람도 많아 신경쓸 것도 많다. 시장이 끝나는 골목 어딘가에 느낌 있는 카페를 발견해 들어갔다.
노팅힐 마켓을 더 돌다 보면 힙한 느낌이 드는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커피 마시며 쉬며 사람들을 보다 보면 괜시리 나도 이곳 문화에 녹아든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오늘 같은 날씨엔 이렇게 밖에서 마시며 생각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런 날씨도 얼마 안 남았다(이 글을 썼을 땐 포근한 가을 날씨였다).
이왕 쉴 때 좋은 곳에 가서 쉬자. 카페를 간다면 안락한 의자, 적절한 음악, 조곤조곤한 대화들, 멋진 라떼 아트가 담긴 따뜻한 커피와 잠깐의 허기와 당을 채워줄 쿠키의 센스가 있는. 한 모금 쉬고 나면 다시 힘내서 돌아볼 수 있다. 이 쉼도 여행의 일부이며 조력자이다.
정신없이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지친 요새 같은 날엔 딱 저곳에 가서 저 따뜻한 라떼를 손에 쥐고 마시며 몸과 맘을 녹이고 싶다. 문자 그대로 쉬고 싶은 것도 있지만, 여러 의미로 쉬고 싶다. 쉴 곳이 필요하다.
노팅힐 서점에서 발견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커버가 진짜 대박이다. 집에 있는 채식주의자 책 커버를 이걸사다가 바꾸고 싶을 정도다. 영어 원서로 읽을까 하는 뽐뿌가 샘솟았지만 여행 회계님께 승인받을 리도 없고 다 읽을 리도 없다는 걸 안다. 한국어판도 얼른 이렇게 감각적인 커버로 개정했으면 좋겠다.
노팅힐 서점은 지나가다 가볼 만은 한데, 영화 노팅힐 팬이 아니라면 싱거울 수도 있다. 팬이라면 그 동선 하나하나 생각나며 재밌을 듯.
시장을 갈 때면 상인 분들이 파는 것도 궁금하지만 난 그 분들의 일상이 더 궁금하곤 한다. 식사는 언제 하시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가시는지, 짐은 언제 꾸리시는지 등. 노팅힐에 열리는 시장은 길고 크고 많고 활기차다. 길 위에 양 쪽으로 쭉 펼쳐진 매대를 한 번 씩만 둘러봐도 시간은 훅 날아간다. 이쪽저쪽 돌아본 뒤 사람으로 꽉 찬 길을 피해 뒷 길로 가면 상인 분들의 일상을 조금 볼 수 있다. 그리고 어깨를 보며 그분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니트 색을 보며 평소의 위트를 지레짐작해본다.
런던 노팅힐 마켓을 쭉 걷다 보면 벽에 그림이 걸린 골목을 지나게 된다. 느낌 있는 그림을 그린 작가는 누구일까 궁금했다. 내 마음대로 그 앞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 추측해봤다. 각자 파는 물건을 보고 성격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누가 그렸든 간에 배경이 되는 그림은 빈티지한 물건을 파는 상인 분과 어울린다. 원래 그렇게 있어온 것처럼. 노팅힐 시장다움이 그림과 상인 모두에게 있다. 이번 주도 다음 주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갈 때도 있었으면.
유럽은 버스킹이 굉장히 흔하다. 언제 어디서나 본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나라와 차이점을 몇 개 느꼈다. 하나는 버스커의 연령대가 생각보다 높다. 우리 나란 젊은이들이 거의 대부분인데 여긴 중, 노년도 많이 보인다.
그게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생계 유지가 가능한가 아닌가에 있다고 본다. 한국에선 버스커가 생업인 경우가 많지 않을 거다. 생업일 만큼 돈이 들어오지도 않고 다양한 장소에서 할 수도 없다. 상대적으로 투잡을 하기 용이한 젊은 층이 아닌 본업을 유지해야 하는 중년 이상의 계층의 접근이 어렵다.
여기서도 어느 정도 유동인구가 필요하긴 하지만 유동인구가 있다면 어디서나 하는 느낌이다. 시장통, 지하철역, 공원, 다리 위 등등. 무엇보다 차이가 큰 이유는 문화다. 여긴 연주할 수 있으면 누구나 버스킹을 한다. 버스킹일란 문화 자체가 잘 정착돼있다.
또 그에 맞춰 돈을 내는 문화도 정착이 잘 되어있다. 그 정착된 문화가 계승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자녀와 함께 한 가족들이 버스킹을 볼 때면 돈은 아이들이 낼 때가 많다. 좋은 공연을 즐긴 후엔 그 값을 치루는 게 당연하다는 걸 자연스레 교육시킨다. 이런 문화의 다양한 복합 안에서 적정 수준 이상의 버스커는 생계 유지가 가능한 만큼 벌 수 있다고 본다.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양질의 음악을 라이브로 듣는다. 항상 뮤직비디오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버스커는 청중들의 답례 덕에 계속 연주할 수 있게 되고, 청중들은 자녀들을 교육하며 선순환이 이뤄진다.
나도 여기 자녀들이 배우는 걸 보고 배운다. 쭈뼛쭈뼛 가서 돈을 처음 내보고 고맙다고 말도 건넨다. 나의 자녀에게도 계승해줄 작은 문화적 씨앗을 하나 얻어간다.
음악을 연주하는 버스커와 연주 중에 이야기하긴 어렵다. 물론 연주 중이 아니어도 대화는 어렵지만(영알못..). 연주가 끝날 때면 박수를 치거나 동전을 건네며 눈인사를 하고, 서로 짧게 감사를 표하긴 한다. 상대는 돈을 주어, 마음을 표현해주어 고맙다고, 나는 이런 연주를 들려주어, 멋진 순간을 선물해주어 고맙다고.
그 결말이 오기 까지 있는 감상의 시간이 있다. 연주하는 쪽과 듣는 쪽 모두 같이 즐기는 시간. 이땐 다른 말은 없어도 된다. 그저 그들의 연주를 귀로, 눈으로, 몸과 맘으로 듣는 시간. 그때 마주치는 시선의 해석은 오로지 각자의 몫. 모르긴 몰라도 교감한단 생각을 한다.
런던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을 들렀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아마도) 색소포니스트의 연주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연주는 지나가던 우리를 멈출만큼 매혹적이었고 흔들거릴만큼 리듬감 있었다. 한창 듣는 중에 흥에 취한 여성 분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눈에 확 들어오는 호피 무늬 외투를 걸친 채 귀에 확 들어오는 재즈 음악에 몸을 맡겼다.
처음엔 합이 안 맞았지만 조금씩 연주와 춤이 같은 결에 올라탔다. 연주의 기승전결에 맞춰 춤도 그 음을 몸으로 표현해냈다. 연주가 절정일 때 색소포니스트도 음악에 몸이 따라가기 시작했고 춤추는 이도 흥이 최고조로 올라갔다. 그 마지막 격정엔 지금 본 사람들은 둘이 한 팀이구나 싶었을 정도로 존재만으로 앙상블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자유롭단 생각을 했다. 그 자유로움을 갖고 싶다. 꼭 그게 춤이 아니어도. 내 마음, 내 열정에 따라가는 것과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것.
모든 래퍼토리가 끝난 뒤 댄서 분은 가운데 손가락(...)을 인사로 날리며 색소포니스트와 헤어졌고 한참 뒤에 봤
을 땐 거하게 취하신 상태였다. 춤이 끝났을 때의 모습도 이미 취하시긴 했지만...�
여행 사진 한 장에 짧은 글을 실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노팅힐에서 찍은 사진 몇 장에 여러 글에 담은 걸 한 글로 엮었습니다. 노팅힐 시리즈는 마무리했고 이제 런던 '플라워 마켓' 시리즈를 올리고 있습니다.
제 글과 사진에 관심 있으시면 방문과 팔로우를 :) 인스타그램에 먼저 올리니 무려 무료 미리 보기 기능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