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aeminc/ 에 여행 사진 한 장에 짧은 글을 실어 올린 걸 엮었습니다. 노팅힐 시리즈 다음으로 런던 '플라워 마켓' 시리즈를 엮어 보았습니다. 여행지 자체에 대한 소개보단 제가 이곳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에 담긴 순간을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https://brunch.co.kr/@chaeminc/407
플라워 마켓까지 걸어가는 길.
다섯 명이 걷는 모습이 다 다르다. 각자 성향이 묻어나는 것 같다. 여행에도 일상에도 걷는 걸 좋아한다. 걸으며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걸으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걸으며 이야기하면 희한하게 상대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날이 풀린다면 동네 공원에서 걸으며 소중한 이와 대화하고 싶다. 혼자 산책도 더 하고 싶다. 런던의 거리도 거닐고 싶다. 다음에 간다면 한껏 맘껏 산책해야지.
그리운 일상. 런던에 관한 글을 쭉 쓰다 보면 그때 일상이 생각날 때가 있다. 여행지도 여행지지만 그냥 그곳에 소소한 일상이. 아직 어색한 차 방향 배려해주는 Look left에 고마워하고, 신호등을 건너고, 천천히 거니는 모습이. 서울에서도 이런 그리운, 그리울 일상은 언제든 가질 수 있다. 그럴 마음이 있다면. 그럴 사람이 있다면 더욱 쉽게.
런던 플라워 마켓은 일요일에 열린다. 우리도 그렇지만 이 날엔 사람이 모일 곳만 우글우글하고 주택가는 한적하다. 마켓으로 가기 몇 블록 전은 (내가 보기에) 주택가인데 따뜻하게 한적했다.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는 여정이다. 통과하는 이들이 마치 동료 같다. 이 한적한 여유를 다시금 누리고 싶다.
밖에 있을 때는 카페 속 한가로운 일상이, 안에 있을 때는 거리 위 생기로운 일상이 부러울 때가 있다. 어디에 있든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누구와 있든 그 사람을 온전히 대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래도 오늘처럼 쌀쌀한 날엔 따땃한 카페에서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한 마디가 더해질수록 더 알고 싶은 이와 한껏 대화하고 싶다. 플라워마켓 가는 길에서.
런던 플라워마켓 가는 길에 만난 버스커. 아직 연주하기 전에 튜닝하는 중이었다. 얼핏 봐도 뮤지션이란 느낌이 물씬 든다. 가는 길에 본 거라 연주를 듣진 못 했다. 다시 사진을 정리하며 새롭게 보게 된 게 있다
그의 왼편에 적힌 문구.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묘하게 그의 모습, 삶 자체가 그 답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잘하는 일, 재밌는 일, 꿈, 비전, 소명, 미래 등등. 무엇이 답이건 간에 그는 자신만의 답대로 사는 것 같다.
런던에 버스커가 많다는 건 자주 말했다. 돌아다닌 유럽 전반에 많단 느낌. 그리고 그다음으로 많다고 느낀 건 카메라가 자기 쪽이면 포즈를 취해주는 것. 이 사진은 버스커를 찍으려 한 사진이었고 내 눈엔 버스커만 있었다. 누나가 안 말해줬으면 몰랐을 상황. 누난 결국 저 둘과 함께 찍었다. 언어와 시간이 됐다면 유쾌한 친구 둘을 얻었을 텐데
사연 있는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사진 속 버스커의 연주는 기억 안 나고 같이 찍은 저 둘과의 사진만 기억에 남는다. 인상 깊은 옷과 연주보다 인상에 깊게 새겨지는 건 사람 자체인 듯하다.
여행에 다음은 없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오지 않을 날이다. 삶이 사실 그렇다. 그래서 여행에서 삶을 배운다. 지금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물론 반복되는 일상에 지내다 보면 어차피 내일도 있을 거란 타성에 젖기 쉽다. 엄밀히 보면 그건 같은 일이 아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과 내일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히 다르다
플라워마켓을 나와 다음 동선으로 가는 중에 발견한 행사. 저기에 누워 공연을 즐기고 싶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걸 볼 것인가 다음 일정을 갈 것인가 선택해야 했다. 다음 일정을 택했다. 다음에 다시 오면 이 행사는 없겠지. 다음엔 일정에 유연함을 좀 더 넣어보자는 마음을 먹을 뿐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여유를 갖긴 쉽지 않구나. 가끔 보는 한국 버스커들을 스쳐 지나가기도 바쁘니. 우선 일상에서부터 여유를 찾자. 밍기적거림을 덜 선택하면 충분할 것이다.
여행을 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걸을 만한, 카메라와 각종 장비들을 들고 다닐 만한, 움직이며 필요한 정보를 찾아 지도를 보고 갈만한, 다소 밥을 못 먹어도 웃음을 잃지 않을 만한, 덥거나 춥거나 졸리거나 해도 여유와 위트를 놓치지 않을 만한 체력.
런던 플라워 마켓은 사람 반 꽃 반이었다. 꽃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데다 사람이 가득한 건 질색하는 나로서는 뇌가 마비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한 부녀의 뒷모습. 아빠의 어깨 위에 올라탄 덕에 딸은 누구보다 위에서 편하게 꽃시장을 둘러본다. 아빠의 어깨 위에 있는 자신의 무게와 책임감 등의 무게를 언젠간 알겠지. 여행에서 딸을 목마 태워 둘러본다는 낭만의 현실이 쉽지 않다는 것도.
처음 열거한 체력은 아직 부모가 아닐 때 갖출 체력이겠다. 더 미래를 생각한다면 적어둔 체력 위에 자녀를 데리고 다닐 체력이 필요하겠다. 열심히 운동하고 잘 먹어야겠네. 잘 먹긴 하니 운동만 하면...
이 시공간에 오직 나와 상대방만이 있는 것 같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며. 그런 대화는 존재만으로 충만하다. 힙한 카페엔 힙한 사람들이 모인다. 플라워마켓을 돌고 쉬려 들어온 카페. 한 숨 자기도 했다.
사람이 잔뜩 있는 플라워 마켓 주위는 사람 수만큼 시끌벅적하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거리를 좁혀야 한다. 내가 가거나 상대가 오거나 같이 붙거나. 그 사람 많은 곳을 걸으면서 눈에 훅 들어온 장면. 저렇게 대화할 수도 있구나를 배웠다. 저 순간 저곳, 저 둘에겐 오직 저 둘만 존재하는 것 같다
어려운 부분이지만 대화할 때 노력하려는 건(안 되는 부분이기에 더욱) 집중하기, 시선 맞추기, 판단하지 않기, 요구받지 않은 정답 말하지 않기, 가르치려 들지 않기, 감정 헤아리기
서로 이해하기 위해 시선을 맞추기 위해 같이 노력하며 몰입하게 되는 대화는 얼마나 소중한지. 이런 대화를 하고 싶다.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서야 난 다 알 것 같은데 - '이제서야' 김동률
여행은 언제나 다녀오고 나면, 다시 가면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곡인 '이제서야'. 헤어지고 나면 문제가 보이고, 다시 만나면 해결하고 더 잘할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문제로 같은 방식으로 다시 헤어질 때가 있다. 그 문제가 둘의 바뀔 수 없는 본질이라면
여행도 비슷하겠지. 그때 힘들었던 이유가 경험한 덕에 다음에 능숙해질 거라면 다시 가면 잘할 것이고, 본성적인 어려움이라면 같은 고생을 할 테고. 플라워마켓 주변에서.
플라워마켓다운 분.
플라워 로드를 돌아다니다 알게 된 유명한 베이글 집. 안 그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유독 여기엔 사람들이 모여 줄을 선다. 딱히 식사하러 갈 동선이 안 나와 여기서 먹기로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에 가게 건물까지도 익숙해진 느낌. 사람은 예상보다 금방 빠진다. 훅훅 주문하고 숙숙 나온다.
그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위트를 잃지 않는다. 잊지 않는다. 처음 온 관광객들이 헤맬 때도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해준다. 잘 되는 곳은 잘 될 이유가 있는 건가. 나도 가능한 한 위트를 잃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배고파 당이 떨어졌을 때도, 잠을 못 자 머리가 앞뒤로 휘날릴 때도
위트가 있다면 힘든 상황도, 울적한 기분도 뒤집을 수 있으니깐. 물론 과도한 위트 욕이 좋은 상황을 뒤집기도 하지만.
앞 가게에서 산 베이글. 솔트비프베이글과 크림치즈연어 베이글을 먹었다. 연어 덕후인 나에겐 연어가 역시 더 낫다. 이 베이글과 플랫 피치를 들고 쇼디치 근처 벤치에 앉아 런던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일요일 점심을 보냈다
런던 플라워마켓에 가면 체감상 광화문 광장보다 조금 긴 거리에 꽃과 사람이 가득했다. 꽃반 사람반이라 해도 틀리진 않겠다. 길고 긴 꽃의 터널을 지나 가끔 숨통을 트는 길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재밌는 장면을 봤다.
차 위에 올라간 아이들이 책을 팔고 있었다. 자기들이 읽은 책으로 보이는 것부터 부모님이 본 것 같은 책까지. 장사는 잘 됐고, 돈을 주고받으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책 이야기를 한 건지 흥정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하는 것 같다. 부모님이 데려와주셨겠지만 근처에 부모님으로 보이는 분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지켜보거나 믿고 보낸 거겠지
나는 그 나이 때 이런 거 할 생각을 못 했다. 이런 문화도 거의 없고. 궁금했다. 커서 이 아이들에게 이 경험이 어떤 의미와 가능성이 될지. 다음에 갈 땐 많이 컸겠지. 그땐 이 친구들에게 책 한 권 사야지.
플라워마켓을 거닐 때 눈에 들어오는 한 쌍이 있었다. 사랑하면 닮는다던가. 주인에게 아우라가 느껴지니 반려견도 그 아우라를 풍긴다.
나는 큰 개를 무서워하는 편이다. 한국 개들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아 막 따라오거나 짖거나 하는 느낌. 런던은 그렇지 않다. 목줄 착용은 필수. 개들도 뭔가 젠틀하달까. 유럽 와서 바뀐 것 중 하나가 개에 대한 인식이다.
두 마음의 선을 위에서 볼 때면 교차할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실제로 옆에서 보면 둘은 결코 맞닿을 수 없는 영원한 평행선일 때가 있다. 서로의 마음이 닿으리라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달려가지만, 만나야 할 때 만나지 못하고 지나치기만 할 뿐이다.
애초에 두 마음의 접점이 생기는 건 희박한 확률이다. 평행선이 만날 수는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길이 있다. 꺾으면 된다. 자기 마음을 꺾어 상대에게로 가야만 만날 수 있다. 자신을 꺾을 만큼 마음이 있다면. 그럴 용기와 희생의 각오가 있다면. 결국 마음의 순도와 크기의 문제다.
음악도 비슷하다. 각자 하고 싶은 연주가 아니라 같이 만들고 싶은 소리를 위해 마음을 꺾고 손을 움직이며 숨을 들이키고 내쉰다.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호흡의 조화를 들을 수 있다. 이 조화로운 호흡에 우린 몸을 맡기기도 소름이 돋기도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여행 전체에서 가장 취향 저격이었던 플라워 로드 버스커 팀. 세팅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지켜봤다. 금쪽같은 시간을 기꺼이 한 움큼 낼만큼 금 같은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