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던 대로 못 간다 해도.
여행 사진에 대한 코멘터리 방식의 글입니다. 세세한 여행 정보가 담긴 글은 아닙니다. 사진과 글을 통해 제가 느낀 싱가포르, 여행의 느낌들을 같이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은 싱가포르 여행 2일 차 기록입니다.
1일 : https://brunch.co.kr/@chaeminc/428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aeminc/ 에 여행 사진 한 장에 짧은 글을 올리는 중입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여행기를 담은 제 책 <여행을 일상으로, 담다 Vol 1>을 아래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책 쓰기 수업을 듣고 소량으로 초판을 낸 것이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혼자 쓰고 담고 편집한 거라 부족한 부분이 제법 있긴 합니다. 그래서 다음 판은 개정해서 내려고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다 팔리면 얼른 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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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첫 조식. 사실 누나 그릇이고 나는 정갈하게 담지 못 한다. 밖에 나가서 먹는 게 낫지 않을까 했지만 우리 모두 각자 세 그릇 이상 씩 먹었다. 그중 나는 훈제 연어를 좋아해서 자주 먹었다. 버터 발라 구운 토스트에 카야 잼을 바르고 훈제 연어를 올려 먹으면 천상의 종소리가 울린다.
밥 다 먹고 커피 한 잔 뽑아서 19층에 있는 수영장을 구경했다. 어젯밤 누나가 먼저 가서 좋다는 건 알았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여기에 누워 책 읽고 수영하는 날을 가졌을 텐데. 장기 숙박하는 이들은 아마 한껏 누릴 수 있을 테다.
렌즈가 도무지 눈에 안 맞아 그냥 안경을 끼기로 했다. 덕분에 싱가포르 내내 선글라스를 끼지 못 했다. 서머셋 역에서 첫 목적지까지 가는 길. 싱가프로 에스컬레이터는 꽤 빠르다. 무심코 타면 엇! 하며 뒤로 넘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하철은 쾌적한 편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다.
자리 양 끝은 임산부석인데 지키자는 캠페인 광고가 있는 거로 봐선 잘 안 지켜지나 보다.
내려서 걸어가는 길에 발견한 경전철 LRT. 탈 동선이 없어서 눈에만 담았다. 귀엽게 생겼다. 무인 운전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에 오면 유명한 장소보다 이곳에 사는 이들의 일상이 가장 궁금하다.
회색 건물과 울창한 나무, 내가 느낀 싱가포르 다운 거리.
빨래를 많이 널더라. 이 건물은 아예 건물 한가운데에서 다 같이 빨래 널 수 있게 지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이렇게 떨어지기도 한다 (...). 분위기 있게 떨어졌다.
오늘 첫 일정은 교회 가는 거였다. 근처에 갈 만한 교회를 찾다 알게 됐다. 셔틀버스가 있는지 물어보려 전화했는데 부킷 판장으로 오라고 하셔서 한국말 못하시는 건가, 중국말인가 했다. 내릴 지하철역 이름이 Bukit Panjang...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큰 교회였다. 여기만 본다면 한국이라 해도 다를 게 없는 느낌을 받은 유일한 공간. 완전 한국화. 런던에서 교회 갔을 땐 런던 교회 건물을 빌린 상태라 아무래도 한국 느낌이 덜 들었는데.
평일이라면 결코 안 왔을 동네를 교회 온 덕에 볼 수 있다. 싱가포르의 주말 오후 풍경. 가족 식사하러 나온 걸까.
싱가포르는 집에서 나무를 많이 기른단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새도 많이 키운다는 느낌이.
아파트 근처에 사는 길냥이인가 보다. 살짝 더운 날씨에 냥실신.
싱가포르는 초록과 회색이 주색이란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원색들을 건물에 잘 사용한다. 그게 또 어색하지 않고 어울린다.
싱가포르도 학구열이 높은가 싶었다.
싱가포르 버스는 꼭 충전해서 타야 한다. 일정량 이하의 거스름돈은 아예 주지 않는다...
기분 탓일 수 있지만 싱가포르에서 모든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은 거의 백인이었다.
꼭 잘 알려진 데에서만 먹기보단 우연찮게 발견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이런 곳에서 이들과 식사하는 게 진짜 일상을 경험해보는 건 아닐까 싶었다.
트래블라인 앱에서도 본 유명한 카페에 갔다. 주문하고 커피와 음료가 나올 때까지 과정을 볼 수 있게 했다. 다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받아가면 된다. 플랫 화이트와 더치커피를 시켰다. 원래 질소 커피를 시키려 했는데 질소가 없다고 했던가.
커피는 무난히 맛있었다. 더치커피 병이 이뻐서 가져왔다.
출출한 배를 채우려 주문한 음식들. 치즈 올라간 감자튀김은 진리 조합이었고 소시지 등은 싱가포르 특유의 향인지 신기한 향이 났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싶었다.
여행에서 항상 업된 상태일 수 없지만 다운일 조짐이 보이면 쉬고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보충은 정말 중요하다.
다 먹고 쉬는 중에 폭우가 쏟아졌다. 살짝 자리가 찰 무렵이었는데 우린 우산이 없었다. 자리 비는 거 없는지 둘러보는 직원 눈빛에 남은 음식을 조금씩 뜯어먹었다. 이렇게 앉아 비 구경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도 좋았다. 한 1시간 내외로 확 쏟아붓고 그치는 느낌이다.
관광지가 아닌 실제 삶이 느껴지는 곳을 좋아한다.
각 나라의 큰 마트에 가면 뭔가 그 나라의 취향을 얼핏 느끼곤 한다. 정확히 어떤 건지 말로 표현은 못 해도.
여행 가서 신기한 음료수 있으면 사 마셔보는데 콜라 바닐라가 있었다. 바닐라 향이 딱히 나진 않았다.
지나가다 있길래 들렀다. 유명한 빵집인가 보다. 오른쪽에 보이는 빵이 100만 개 넘게 팔렸다고 한다. 고기 들어간 빵인데 그렇게 팔릴 만하단 생각.
센토사 가려고 했다. 센토사는 결국 못 갔다. 우산 들고 갈만한 비가 아니었다. 센토사 모든 일정을 다 접고 돌아가기로 했다. 트래블라인 앱에 현지 여행자들의 실시간 톡이 있는데 어젠 날씨 괜찮았다는데.
얼핏 고속터미널 역이 생각났다. 관광객이 더 많은 느낌적인 느낌.
언제든 어디든 그 자리가 예술의 시작일 수 있음을. 만원 지하철에서도. 환경에 따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 선택을 환경에 관철시키는.
여행도 마찬가지일텐데.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못해도 내가 즐겁기를, 행복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을 어떤 환경에도 관철시킬 수 있다면.
여긴 신기한 곳이다. 한국 스타일로 10달러, 10분 헤어컷, 10시부터 10시까지. 10 덕후(...) 이신가 온통 10 숫자로 채워졌다. 거기에 뭔가 머리 자르고 당첨되면 서울로 보내준다니.
다시 호텔로 돌아올 쯤엔 해가 지고 있었다. 일정을 접게 한 비 덕분에 선선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음악으로 버스킹 하는 사람보다 춤이나 어떤 연기 등으로 버스킹 하는 이들을 더 자주 봤다. 이분은 자리 탓인지 하시는 퍼포먼스의 매력 때문인지 사람들이 지나치기만 했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모습이 눈에 남았다.
뭔진 몰라도 기인 느낌이 물씬 났던 할아버지. 그 느낌을 나만 받는 건 아니었는지 여러 신문에도 나셨나 보다. 인상 깊은 목걸이를 파시는 듯하다.
3박 5일 일정은 정해졌고 유동적으로 옮기기 쉽지 않았다. 센토사는 오늘 못 가면 못 가는 거였다. 어쩌겠나. 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갔어도 다시 비가 또 올 지는 모르는 거니. 카메라가 젖으면 큰 타격이니깐. 우산이 있으면 괜찮을 비면 갔겠지만. 흐를 수 있는 대로 흘러온 하루였다.
모든 게 순탄할 순 없다는 걸 머리로만 아는 것과 실제로 인정할 수 있는 건 다르다. 여행은 인정하게 한다. 내 계획이 순조롭게 안 풀릴 수도, 항상 안 좋을 리도 없다는 것도 때때론 더할 나위 없이 좋기만 할 때도 있다고.
상황을 바꿀 순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황에 대한 해석이다. 해석의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 일정이 다 꼬이면서 든 생각이 있다. '행복을 선택하자'.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
여행은 여기서 행복한 건 내 선택임을 배우게 한다. 장소가 좋아서, 시기가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행복할 수 있다. 동시에 그렇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다. 큰 물줄기 방향을 바꿀 순 없지만 고개를 돌려 내가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다. 내가 보는 게 무엇이든 즐겁게 볼 수도 있다. 해석과 선택의 문제다. 나는 행복을 선택하기로 했다.
우리는 호텔 아래에서 중국 요리 먹고 슈퍼에서 처음 보는 싱가포르 음식들을 사왔다. 한껏 신나게 먹고 대화하고 쉬었다. 오늘은 그거면 됐다.
본 포스트는 싱가포르관광청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