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이 말하는 대로 여행한다면
싱가포르 여행 3일 차
여행 사진에 대한 코멘터리 방식의 글입니다. 세세한 여행 정보가 담긴 글은 아닙니다. 사진과 글을 통해 제가 느낀 싱가포르, 여행의 느낌들을 같이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은 싱가포르 여행 3일 차 기록입니다.
1일 : https://brunch.co.kr/@chaeminc/428
2일 : https://brunch.co.kr/@chaeminc/429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aeminc/ 에 여행 사진 한 장에 짧은 글을 올리는 중입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여행기를 담은 제 책 <여행을 일상으로, 담다 Vol 1>을 아래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책 쓰기 수업을 듣고 소량으로 초판을 낸 것이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혼자 쓰고 담고 편집한 거라 부족한 부분이 제법 있긴 합니다. 그래서 다음 판은 개정해서 내려고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다 팔리면 얼른 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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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보이는 풍경. 보자마자 맘에 들었던 보드 탈 수 있는 작은 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멀리서 볼 때면 가까이 다가가 각자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 저곳에 온 사람들은 어쩌다 왔을까.
버스 방향이 안 맞을 때면 걷기도 했다. 심심할 법도 한 걷는 길도 싱가포르 만의 색감 있는 건물들이 나타나 심심함을 덜어준다.
어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골목 담벼락에 있던 그림. 이런 붓으로 그린 벽화는 처음 본 것 같다. 한 번 삐끗하면 수정하기 어려운 벽화 같은 걸 잘 그리는 걸 보면 신기하다.
트래블 라인 앱과 여러 추천에 나온 보타닉 가든을 왔다. 가 잠시 들르기 전에 근처 카페를 들르기로 한다. 제법 걸었다. 보타닉 가든을 굳이 안 가도 될 정도로(안 가봐서 하는 말이지만) 숲을 많이 만났다.
재잘재잘 비글비글한 소리가 나서 보니 주인공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나이 때 축 처진 아이는 잘 못 본 것 같다. 아이들의 특성일까? 어른이 되면 각자 특성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데. 나는 아이였을 때와 지금 얼마나 어떻게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왜 달라졌을까. 지금 내 성격도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 느끼고 배운 것들을 통해 선택한 것일 텐데.
쌉쌀한 플랫 화이트와 진짜 달달하고 찐득하고 꾸덕한 초콜릿 케이크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국에서 나오는 케이크 한 조각 정도로 생각한 우리의 오산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케이크들 중에서 큼직하게 한 조각 잘라주는 거였다. 나오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려서 왜 이리 오래 걸리나 했더니 이런 케이크를 한 번에 만들어서 주는 거였나 보다.
이 장소에 이런 의자라니. 우리 집 마당이 이런 느낌이면 어떨까. 하루 한 시간 점심 먹고 볕 좋을 때 나와서 커피 한 잔하고, 책 읽으면서 한 숨 자기도 하고.
차이나타운으로 왔다. 기분 탓인지 다른 싱가포르 지역보다 백인 비율이 훨씬 많아 보였다. 백인들에게 유명한 관광지인지, 그들에겐 싱가포르 내에 차이나타운이 흥미로운 곳인지. 우리 같이 앉아서 중식을 먹는 순간이 재밌었다.
돌아다니다 출출해질 무렵 알아보기도 귀찮아서 눈에 들어온 식당에 들어왔다. 양념 탕수육? 완자 같은 것과 볶음밥 시켰는데 싱가포르 와서 먹은 볶음밥은 진짜 다 맛있었다. 한껏 먹었다. 끌리는 곳 들어오는 게 정답이다.
혼밥혼맥. Cheers.
다음 코스로 가는 중에 폭우를 만났다. 일단 비 피할 곳으로 내려야 했다. 비가 너무 쏟아져서 움직일 수 없었다. 오늘도 코스가 좌절되는 건가 싶었다. 이럴 땐 무엇이 최선일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비 피할 수 있게 아무 데나 들어가자 이게 내 선택이었다. 바로 눈에 보인 한 입구. 끌렸다. 작은 건물일 거라 생각하고 들어갔다.
세련된 쇼핑몰 근처가 숙소이다 보니 우리나라 동대문 느낌이 나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쇼핑 단지는 없을까 싶었는데 만났다. 그 느낌 그대로. 비 안 왔다면 이런 곳이 있을 줄 결코 몰랐을 텐데. 같이 간 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보타닉 가든 안 간 것보다 이곳은 안 갔으면 느꼈을 아쉬움이 더 크다.
잠깐의 끌림은 작은 소리지만 분명하다. 여행에서 이 소리에 응답해서 실패한 기억이 거의 없다. 도리어 이 소리를 듣지 않아서 생긴 문제가 있었겠지.
비는 다시 금방 그쳤다. 다시 새로운 코스를 정해 갔다. 트래블라인에 나온 편집샵과 누나가 찾은 서점 등을 보러 갔다. 현지 느낌이 나는 동네에 있어 기분 좋았다.
신기하게도 서점 옆에 미스터리 북을 자판기에서 팔았다. 어떤 책인지 알 수 없다. 복불복. 한글이거나 내가 영어로 된 책을 쉽게 읽으면 샀을 텐데. 서점은 오늘 하지 않았다. 언제 하는지 알아보고 가는 것도 지혜...
발상이 미스터리해서 좋다.
내가 느끼는 싱가포르의 모습.
내가 느끼는 싱가포르가 화장한 표면의 모습. 그 유명한 마리아나 베이 안으로 왔다. 인천공항 면세점을 럭셔리하게 모아두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작정하고 명품 거리를 만들었단 생각.
분수가 아닌 위에서 물을 쏟아 내리는 형태. 싱가포르 감성일까.
TWG! 잎차 잘 안 마셨는데 여기서 시향 해보니 혹 하는 향이 많았다. 그렇게 달콤살콤한 향이라니. 차 덕후들에겐 신날 만한 장소.
저녁 먹을 시간 없어서 편의점에서 가든스 바이더 베이 쇼 하는 동안 먹을 식량을 준비하러 갔다.
기다리며 눈에 들어온 동생과 놀고 있는 오빠의 모습. 응팔의 정봉이 닮았다.
가든스 바이더 베이. 멀리서 보니 이걸 도대체 왜 보는 걸까 했다. 가까이서 보니 깨달음(!) 이건 무조건 가까이서 봐야 하는 것이었다!
아래에서 보니 압도적이었다(높은 건물 아래에서 보면 대개 다 그렇긴..).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아름다움으로 압도했다면 마리아나 베이는 크기와 형태로 위압한다는 느낌이랄까. 건물 위에 배 같은 걸 올려놓는단 발상이 대단하다. 그 유명한 수영장을 생각해본다. 보통 배 밖에 물이 있다면, 하늘 배엔 안에 물이 있다는 식인가.
1박만 해도 비싼 곳이지만 야경과 분위기를 누리기 위해 1박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다음에 올 땐 갈 수 있기를.
내가 묵는 호텔도 나쁘지 않다. 마리아나 호텔 수영장에는 인생샷 건지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단 말을 들었다(대부분이 한국인인 것 같단 이야기도). 여긴 사람이 없다(...).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내겐 여기서 안정감을 느낀다. 수영복과 시간이 없어 누리진 못 했지만 밤마다 잠시 와서 바람을 쐬곤 했다.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여행을 돌아보는 시간은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딱이었다.
이제 여행이 막바지에 와간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어떤 여행이 내게 맞을까. 함께 가는 여행, 혼자 가는 여행 혹은. 여행하며 중요한 것은 하루 종일 들리는 수많은 관계의 소음, 상황이 만드는 치찰음 속에서 내 내면의 이야기를 듣는 것. 내가 바라고 원하는 걸 듣는 것. 귀가 멍멍해지다 보면 나조차 나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시간과 장소에 조용히 혼자 나와서 자신과의 대화를 해봐야만 명확히 나를 들을 수 있다. 나를 듣는 이 시간이 내겐 매일 빼뜨리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다.
오늘 하루 여행의 수확은 끌림이 부르는 곳으로 가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보다도 어쩌다 가게 된 시장이, 그냥 끌려서 간 중식당이 오늘 가장 큰 만족을 주었다.
끌림이 말하는 대로만 여행한다면 어떨까. 계획하고 가는 여행은 많은 이들이 좋게 여긴 곳에 가는 것이기에 중박을 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그만큼 기대가 높아져서 쉽게 만족하기 어려울지도.
끌리는 대로 여행한다면 기대하지 않은 곳에 가는 거니, 중박인 곳을 발견해도 대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의외성의 힘은 의외로 놀라우니.
다만 삶이 그렇듯 항상 깨닫고 나면 끝난다. 끝날 때에야 깨닫는 걸까. 얄궂게도.
본 포스트는 싱가포르관광청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지원받았습니다.
